아내·두 아들 살해한 가장, 사형 구형하자 "다들 수고 많다" 검사 격려
실직 후 가정불화…"가족이 날 무시" 수백번 흉기질[사건속 오늘]
검사 "수많은 살인 다뤘지만 이건 정말"…범인 "깔끔하게 죽여달라"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2년 11월 17일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2부(김재혁 부장검사)가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한 A 씨(45)는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해 9월 25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 자기 집에서 아내 B 씨(당시 42세)와 중학생 큰아들(15세), 초등학생 둘째 아들(10세)을 살해한 A에 대해 오죽하면 검사가 "수많은 살인 사건을 다뤘지만 이건 정말 잔인했다"며 살인 외 다른 처벌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무엇이 A를 자기 말처럼 "생물로서도 가치 없게" 만들었을까.
A는 범행 2년 3개월여 전인 2020년 6월 건강 등을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대책 없이 그만뒀다.
이 일로 생활 형편이 어려워져 부인과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은 살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엄마에게 폭언하고 폭행까지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A와 거리를 뒀다.
A로선 아내와 큰아들 모두 미웠다.
A는 사건 발생 22일 전인 9월 3일 토요일 아내와 이혼 문제로 대판 싸운 뒤 화를 삭이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슬리퍼를 찾았다.
하지만 큰아들이 신고 나갔다는 말에 '나를 사람 취급 안 하고 무시한다'고 생각, 아내와 큰아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A는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우선 범행도구로 머리를 때려도 상처가 나지 않는 둔탁한 재질의 둔기를 골랐다.
A는 △ 가족들이 모두 있는 일요일 밤에 범행→△ 둔기로 아내와 큰아들 머리를 가격해 기절시킴→△ 둔기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버림→△ 밤을 이용해 아내와 큰아들을 1층으로 들고 내려가 15층에서 떨어진 것처럼 위장→△ 경찰이 오면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아내가 아이와 함께 투신했다고 진술한다는 계획표를 짰다.
A는 9월 25일 일요일 저녁, 범행에 들어갔다.
덩치가 자신과 맞먹을 정도로 커진 큰아들을 먼저 해치워야 일이 쉽게 풀릴 것으로 판단, 큰아들을 불러 "그동안 내가 잘못했다. 이제 일자리도 찾는 등 좋은 아빠가 되겠다"며 안심시킨 뒤 자기 방에 들어가 있도록 했다.
A는 오후 7시 50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뒤 아내에게 "돈을 줄 테니 잠시 아파트 앞 상가 쪽으로 내려오라"고 전화했다.
이어 곧장 아파트 1층 쪽문을 통해 다시 들어온 A는 복도를 이용, 15층 집까지 걸어 올라갔다.
이는 내려가는 모습만 엘리베이터 CCTV에 잡히도록 해 나름의 알리바이를 만들겠다는 계산 때문.
A는 아들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로 게임에 정신 팔려 있던 큰아들 머리를 둔기로 때려 정신을 잃게 했다.
잠시 뒤 집으로 들어서는 아내마저 둔기로 가격해 넘어뜨렸다.
이때 10살짜리 둘째 아들이 작은방에서 거실로 나오면서 이 장면을 목격하자 '살려두면 경찰에 분다'며 둔기로 마구 때려 의식불명 상태에 빠뜨렸다.
A는 쓰러진 아내, 큰아들, 작은아들을 1층으로 들고 내려간 뒤 '15층에서 투신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으나 둔기만으로 15층에서 떨어진 상처를 흉내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생각에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A는 주변에 있던 흉기를 들어 아내와 아들들을 마구 찔렀다.
수사당국이 자상이 몇 군데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할 만큼 A는 수백 차례에 걸쳐 흉기를 휘둘렀다.
A는 범행 후 계단을 이용해 아파트를 빠져나가 둔기를 버린 뒤 인근 PC방에서 2시간여 게임을 즐기다가 밤 11시 30분쯤 집으로 들어왔다. 이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A는 119에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가족들이 쓰러져 있다. 누군가 찔렀다"며 울면서 신고했다.
119와 함께 출동한 형사들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범행 현장이 너무 잔인해 A를 최우선 용의선상에 올려놓았다.
경찰은 CCTV와 주변 정황 등을 볼 때 A의 범행으로 결론짓고 집중추궁했다.
여기에 경찰은 결정적 증거까지 확보했다. 바로 큰아들 방에 있던 휴대폰에 범행 당시 장면이 생생하게 녹음돼 있었던 것.
큰아들은 평소 A가 폭언과 폭행이 심하자 뒷일을 생각해 아버지가 있으면 무조건 녹음하는 습관을 지니게 됐다.
그날 아버지가 방문을 여는 순간 큰아들은 녹음 단추를 누른 뒤 다시 게임에 몰두했던 것.
버티던 A는 결국 9월 26일 정오 무렵 "내가 죽였다"고 자백했다.
A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경찰서를 나올 때 "할 말이 있냐"는 기자들 물음에 "제대로 처벌받겠다,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반성하는 듯한 말을 했다.
하지만 재판에 들어가선 엉뚱한 태도를 취했다.
2023년 3월 31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부(부장 남천규)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사가 "두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에게 살해당해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자 최후 진술 기회를 요청한 A는 법정을 둘러본 뒤 "다들 나 때문에 고생 많다"며 검사와 재판부를 격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2023년 4월 28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2부(부장 남천규)는 "통상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성을 보였고 범행 과정에서도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며 무기징역형과 함께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이에 불복한 검찰의 항소로 열린 항소심은 단 한 차례 변론 공판에 이어 선고공판 등 두 번 만에 끝났다.
검사와 변호인 모두 추가 의견 개진이나 증거 제출 등의 절차가 필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19일 항소심 1차 공판에서 검사는 "수많은 살인사건을 다뤄봤지만 이번 사건은 진정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사형을 내릴 줄 것을 청했다. '
최후 진술에 나선 A는 " 검사도 말했지만, (나는)생물로서 가치가 없다. 죽으려고 노력했지만 교도소에서 쉽지 않았다"며 "깔끔하게 죽여달라"고 했다.
수원고법 제2-1 형사부(고법판사 왕정옥 김관용 이상호)는 7월 29일 검사의 항소를 뿌리치고 1심과 같이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무기징역형은 그대로 확정돼 현재 A는 2년 2개월째 옥살이 중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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