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강사 성폭행 살해 후 성형수술…무인도로 간 '페이스오프' 20대
스스로 코 꿰매고 눈썹 바꾸며 961일간 23곳 전전 [사건 속 오늘]
사진 공개되자 "미남" 팬클럽까지, 일본 흥분…자서전 베스트셀러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9년 11월 11일, 일본 방송들은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페이스 오프(Face off) 살해범 검거'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이 영국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2년 7개월 보름, 장장 961일간 뒤를 쫓던 이치하시 다쓰야(1979년생)를 전날 밤 시민의 제보로 체포했다는 것.
이치하시는 체포를 피하기 위해 여러차례 성형수술을 하고, 무인도에서 혼자 지내는 등 007, 할리우드 영화,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도주극을 펼쳐 일본 열도를 이상한 의미에서 흥분케 만들었다.
이치하시는 2007년 3월 25일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시에 거주하던 영국인 영어강사 린제이 호커(22)를 성폭행한 후 살해했다.
3월 26일 실종신고를 받은 일본 경찰은 호커의 집에서 메모지에 그녀의 캐리커처와 함께 적혀 있던 남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경찰은 메모지에 남겨진 전화번호를 근거로 이치하시 집을 찾아갔다.
경찰이 오자 이치하시는 맨발로 집을 뛰쳐나가 그 길로 사라졌다.
경찰은 이치하시 주변을 살폈지만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그의 부모 모두 의사로 풍족하게 지냈고 여자 친구도 있었으며 호커를 살해하기 전날 밤에도 여친과 데이트를 즐기는 등 돈을 탐내거나 성적 동기도 아니었기 때문.
더 이상한 건 일본.
이치하시가 '페이스오프 살인자'라며 체포 전부터 폭발적 관심을 끌었고 그의 체포 사진이 공개되자 '잘생겼다'며 팬클럽까지 생겨났다.
여기에 이치하시가 체포 두 달 보름 만에 자신의 도주 생활을 담은 자필수기(체포될 때까지-2년 7개월의 기록)를 발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치하시 체포 뒤 일본 언론들은 흥미위주의 보도를 쏟아냈다.
언론들은 △ 이렇게 얼굴을 바꿨다 △ 그 남자가 살아남은 방법 △ 경찰을 농락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 일본판 캐스터 어웨이 등등 나오는 기사마다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일부 방송은 이치하시가 경찰 문을 피해 숨어지낸 일본 최남도 오키나와의 무인도 '오하시마'에 기자를 보내 텐트를 치고 1박 2일간 직접 '체험 도피 생활'을 하는 모습까지 내보냈다.
0.37㎢(약 1만 1200평)의 작은 섬 오하시마는 일본판 캐스터 어웨이(톰 행크스 주연의 2000년 영화·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 톰 행크스의 1500일간 무인도 생활을 그림)로 일약 유명해져 관광코스로 개발됐다.
이치하시 다쓰야의 도주극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기에 그를 모티브로 요시다 슈이치가 소설 '분노'를 발표했다.
2016년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 분노가 제작돼 일본 박스 오피스 집계 16억 1000만 엔의 수입을 올려 당시로선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 하나가 됐다.
이치하시가 도망칠 때 가진 것이라곤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3만 엔뿐이었다.
맨발로 빠져나온 이치하시는 "이 얼굴로 돌아다니면 들킨다"고 생각, 편의점에서 바느질 세트와 화장품점에서 여성용 쌍꺼풀 테이프를 구입한 뒤 인근 병원으로 달려갔다.
출입이 뜸한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간 이치사하시는 특징이었던 코 평수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코를 꿰맸다.
또 쌍꺼풀 테이프를 눈에 붙인 뒤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이치하시는 자기 입술이 남들보다 두껍다고 생각, 가위로 아랫입술을 잘랐다.
편의점에서 산 일회용 거즈와 반창고, 연고로 상처를 마무리한 결과 이치하시 입술엔 큰 흉터가 남게 됐다.
2007년 6월 전국에 지명 수배전단이 뿌려지자 위기감을 느낀 이치하시는 낚싯대를 짊어지고 오하시마로 들어갔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이치하시는 낚시로 고기를 낚아 요기하려 했지만 파도가 치는 바람에 실패, 뱀과 달팽이, 해초류 등 닥치는 대로 잡고 끌어모아 수프를 끓여 배를 채웠다고 했다.
이치하시는 '얼굴을 완전히 바꿔야 안 잡힌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초조함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치하시는 육지로 나가 건설 현장 잡부로 일하면서 모은 60만 엔을 갖고 2009년 11월 초 나고야의 한 성형외과를 찾았다.
그는 콧대를 낮춰주고 위로 치켜뜬 이른바 장비눈썹을 일자눈썹으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이치하시 지명수배' 전단을 본 기억이 있던 병원 관계자는 수술에 필요하다며 성형 전후 사진 촬영을 요구, 허락을 받아낸 뒤 사진을 찍었다.
이 관계자는 곧장 경찰에 사진을 보냈다.
일본 경찰은 병원 측이 제공한 사진을 바탕으로 '성형 전후' 사진을 집어넣은 지명수배 전단을 뿌렸다.
여기에 현상금을 1000만 엔으로 올렸다. 당시 우리 돈으로 1억 26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성형수술을 마친 이치하시는 다시 오키나와로 들어가기 위해 2009년 11월 10일 배를 타러 부두를 찾았다.
이때 그를 알아본 선박회사 직원이 경찰에 신고, 즉시 출동한 경찰이 그를 체포해 사건 발생지인 지바현 이치카와시로 압송했다.
경찰에서 이치하시는 961일간 23곳을 전전하며 경찰 눈을 피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치하시는 2011년 7월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아 지금도 옥살이하고 있다.
2010년 2월 1심 재판 도중 이치하시는 베스트셀러가 된 자필 수기 인세를 유족에게 사죄의 의미로 모두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우리를 우롱하는 짓'이라며 분노와 함께 단호히 거절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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