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금 5억" 내걸자 제보자 등장…남편 살해범 그렇게 잡았다

고기동 부부 피습, 남편만 사망…전기충격기 유일 단서 [사건속 오늘]
건네준 녹취록에 범인 목소리…잡힌 살인교사범 무기형, 복역중 사망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12년 8월 21일 오후 9시 20분쯤,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한 전원주택에서 50대 부부 피습 사건이 발생했다.

괴한에게 공격당한 남편 유 모 씨(당시 56)는 뇌사 상태로 이송돼 사건 발생 13일 후인 9월 2일, 결국 숨을 거뒀다. 아내 현 모 씨(당시 53)는 살아남았으나 이 사건으로 실어증을 앓게 됐다.

무려 현상금 5억 원이 걸린 이 사건의 범인과 공범은 3년 만에 모두 잡히면서 유족들의 한(恨)을 풀었다.

ⓒ News1

◇"저승길 동행하자"…부동산업 뛰어든 남편, 괴한 습격에 사망

장맛비가 내리던 이날, 유 씨가 사업차 찻집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아내 현 씨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만나 함께 귀가했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유 씨가 먼저 집으로 들어갔고, 현 씨가 장바구니를 챙겨 집으로 향하는 순간 '찌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비를 뒤집어쓴 남성 2명이 유 씨를 전기충격기로 공격한 뒤 둔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현 씨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괴한이 전기충격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현 씨는 짐을 집어 던지고 얼른 차에 올라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 괴한이 조수석 창문을 깨려고 시도하자, 현 씨는 곧장 액셀을 밟아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괴한들은 사라졌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구타당한 유 씨는 병원에 실려 갔으나 사망했다.

경찰은 괴한들이 지리를 알고 인근에 주차한 뒤 부부의 귀가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던 점, 집 안에 도난당한 물품이 없는 점 등을 미루어 청부 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현 씨에 따르면 유 씨가 건설회사 퇴직 후 부동산업에 뛰어들면서 이해 당사자 간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현 씨는 "남편에게 원한 살만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근데 남편을 공격한 괴한들을 정확하게 못 봤지만, 직접적으로 원한이 있는 사람들 얼굴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유 씨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 온 일기 속에도 그런 다툼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고. 사건이 있기 얼마 전부터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보이는 일들도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번 일이 안 되면 죽여버리겠다"라거나 "나 혼자 죽진 않는다. 저승길에 동행하자"는 등 협박 전화가 걸려 오는가 하면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귀가하는 유 씨의 차를 가로막고 위협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 씨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도 끔찍하게 죽은 채 발견됐다.

◇다섯 명의 용의자…범인이 남기고 간 단서 '전기충격기'

경찰은 현 씨의 증언과 유 씨 일기를 토대로 용의자를 5명으로 추렸다. 첫 번째 용의자는 옆집 이웃으로, 진입로 문제로 유 씨 부부와 법정 다툼 중이었다. 두 번째는 옆집 이웃의 법정 대리인으로, 부부와 몸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땅 투자 건으로 얽힌 상대였다. 유 씨가 이 사람으로부터 땅을 소개받고 1억 9000만원을 투자했으나, 땅도 돈도 모두 돌려받지 못해 소송 중인 상황이었다. 네 번째 용의자는 세 번째 용의자의 아들이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용의자는 동업자로, 유 씨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해 준 박 모 씨(당시 51)다. 유 씨한테 땅을 산 박 씨가 잔금을 주지 않고 제멋대로 그 땅을 공사하자, 유 씨가 공사를 강제 중단하는 등 서로 감정이 악화한 상태라는 게 아내 현 씨의 설명이다.

이때 괴한들이 범행 현장에 버리고 간 전기충격기 건전지와 덮개가 발견됐다. 전기충격기는 호신용이어도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함에 따라 시리얼넘버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용의선상에 오른 남성들은 현장에 있던 괴한과 일치하지 않았고, 이들 모두 현장에서 발견된 전기충격기 모델을 구매한 이력도 없었다.

이에 경찰은 같은 모델의 전기충격기를 허가받은 명단을 뽑아 용의자 5명과 연결고리가 있는지 수사했다. 그중 박 씨와 연락한 A 씨와 B 씨를 수사 대상에 올렸다.

먼저 A 씨는 3개의 주점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박 씨는 가게 단골손님이었다. A 씨의 주점, 차량 등을 압수수색 해 전기충격기를 확보했으나 최근 사용한 흔적이나 DNA,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 또 A 씨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도 명확했다.

그다음 B 씨는 박 씨 운전기사의 친구로, 두 사람은 사건이 발생한 8월에만 스무 번 정도 통화를 했다. 또 사건 발생 다음 날엔 4번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B 씨의 주거지, 근무지, 차량 등을 압수수색 했지만 전기충격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B 씨는 "3년 전에 이사하다가 다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면서 거짓말탐지기 조사에도 불응했다.

경찰의 끈질긴 설득과 추궁 끝에, B 씨는 "박 씨에게 동생이 있다. 2년 전 그 동생한테 내 전기충격기를 줬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현상금 5억' 내걸자 "내가 제보하겠다"…녹취록에 담긴 범인 목소리

더딘 수사에 분하고 원통했던 현 씨와 유족들은 "고기동 살인 사건 해결에 결정적 제보를 주신 분께 현상금 5억 원을 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이는 건국 이래 역대 최고 금액의 현상금이었다.

그러자 이때 유족 측에 "정말 5억 주는 거냐? 현상금 어떻게 지급할 거냐?"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유족 측이 "계좌이체도 되고 현금도 된다"고 하자, 의문의 남성은 "그럼 내가 제보하겠다. 경찰한테 가서 자세히 얘기하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알고 보니 전화를 건 남성은 당초 진술을 거부했던 박씨 운전기사의 친구인 B 씨였다. B 씨 역시 유 씨와 감정이 안 좋았던 박 씨 형제가 빌려 간 전기충격기로 무슨 짓을 저지른 게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B 씨는 사건 이후 박 씨 운전기사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고, 당시 운전기사는 "휴대전화 가져오지 말고 차도 끌고 오지 말고 전철 타고 오라"고 지시했다.

이에 B 씨가 몰래 녹음기를 들고 약속된 장소에 나갔으나, 이곳에서는 박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박 씨는 "야 너 날 위해서 인생을 좀 걸어라. 경찰이 뭐라 해도 우리한테 전기충격기 넘겼다고 하면, 난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라. 너 어디 갈 때도 수표 말고 현금만 사용하라"며 도망 다닐 것을 요구했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장마가 지나 물이 빠진 현장 주변을 수색했다. 여기서 범행 도구로 추정되는 손도끼와 전기충격기 본체를 발견했고, 전기충격기 소유자를 조사하자마자 같은 해 10월 8일 박 씨와 그의 동생, 운전기사를 모두 체포했다.

박 씨의 동생은 "난 그저 친구 B 씨한테 받은 전기충격기를 형한테 준 것밖에 없다"며 범행과 관련 없다고 부인했다.

운전기사 또한 "B 씨가 경찰 조사받은 것을 박 씨에게 말하자, B 씨가 약속 날짜를 잡아달라고 해서 잡아준 것뿐"이라고 억울해했다.

ⓒ News1 DB

◇사기 전과범·살인예비 전과범의 합작…"죽이라곤 안 했다" 뻔뻔

사기 등 전과 13범이었던 박 씨는 "유 씨하고 갈등은 있었지만, 동생이 나한테 준 전자충격기는 잃어버렸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이에 경찰이 찾은 범행에 쓰인 전기충격기를 내놓자, 그는 용인시 고기동과 동천동 일대 전원주택 토지소유권과 1억 5000만원가량의 부동산 매매대금 상황 문제 등으로 유 씨와 갈등을 빚었다며 자백했다.

이후 박 씨는 심 모 씨(당시 46)에게 "(유 씨의) 다리나 어깨를 좀 부러뜨려라. 최소 전치 12주 이상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만 "죽이라고는 안 했다"고 강조했다.

10월 9일 오전 8시, 경찰은 서초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심 씨를 긴급 체포했다. 심 씨도 살인 예비 등 전과 5범이었다.

심 씨는 오리발을 내밀다가 "후배 김 모 씨(당시 44)에게 '친구 하나 같이 데리고 가서 유 씨를 죽여달라'고 말했다"며 살인을 교사했다고 밝혔다.

심 씨는 박 씨에게 1억 원을 빌려줬고, 용인에 납골당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업자인 박 씨의 도움이 필요해 범행에 응했다고 진술했다. 심 씨는 "그 일(유 씨를 살해하는 일)을 해 주면 납골당 허가도 내주고 빌려 간 1억도 갚는다길래 후배 두 명을 불러 범행시켰다"고 부연했다.

박 씨와 심 씨는 10월 16일 공범 김 씨와 조 모 씨를 시켜 살인 교사한 혐의로 구속됐다. 박 씨는 유 씨가 숨진 뒤 뻔뻔하게 장례식장에 조화를 보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김 씨와 조 씨는 주범 두 사람이 검거되는 걸 보고 도주했다. 이에 경찰은 즉시 살인사건 용의자로 수배 내렸다.

◇교사범·공범 '무기징역' 결말…3년만 유족 '한' 풀었다

박 씨는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심 씨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1억 원을 공탁한 점이 참작돼 13년으로 감형됐다. 2014년 2월, 대법원에서 박 씨의 무기징역과 심 씨의 징역 13년을 확정했다.

김 씨는 도피 9개월 만인 2013년 5월, 역삼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조 씨는 김 씨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조 씨까지 2015년 7월 검거되면서 사건 발생 3년 만에 수사가 마무리됐다. 다만 그는 수감 중 범인이 아니라고 호소하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억울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편지를 전달한 동기는 "원래 자신이 저지른 일을 좀 은폐하고 축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그런 사람들과 많이 달라 보인다. 그는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이 편지를 나한테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 씨는 검거되는 순간에도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그의 지인들은 "조 씨가 살인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변호했다. 하지만 조 씨 역시 공범으로 인정돼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한편 박 씨는 2016년 1월, 목포교도소에서 목을 매 극단 선택했다. 당시 목포교도소에 근무했던 교도관들과 복역했던 재소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 씨는 무기수 복역 생활과 신변 비관 문제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