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검토했지만"…슈가, 포토라인에 선 진짜 이유[기자의눈]
피의자 인권·국민 알 권리 사이 '뜨거운 감자' 포토라인
- 남해인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2분. BTS(방탄소년단)의 슈가(본명 민윤기·31)가 지난 23일 오후 7시 44분 서울 용산경찰서 출석 전 포토 라인 앞에 서서 발언한 시간이다. 슈가는 전동스쿠터 음주 운전 혐의를 받고 있다. 50㎝ 남짓한 포토 라인 앞에서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죄송하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은 애초 슈가에 대한 비공개 조사 원칙을 검토했다고 한다. '소환, 조사, 압수수색, 체포, 구속 등의 수사 과정이 언론이나 그 밖의 사람들에게 촬영·녹화·중계방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13조'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오전부터 용산서 앞엔 수십 명의 취재진이 진을 쳤다. 슈가의 출석 가능성이 이미 기자들에게 퍼졌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용산서의 구조상 차를 타고 온 피의자는 지상 주차장에서 내려 건물로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 주차장 통로 등 취재진을 따돌릴 방편이 없다는 의미다.
결국 경찰은 안전사고 우려를 이유로 현장 취재 상황을 통제하고 관리했다. 이 과정에서 포토 라인이 생겼다. 포토 라인이 경찰의 의지냐 언론의 의지냐와는 별개로 출석 사실이 알려진 만큼 슈가는 '포토 라인'을 피할 수 없었다.
포토 라인은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 있는 뜨거운 감자다. '마약 투약 혐의'를 받던 배우 이선균 씨(48)가 숨지기 나흘 전 비공개 소환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거부하고 포토 라인 앞에 이 씨를 세웠다가 거센 논란으로 번졌다.
슈가의 포토 라인도 '망신 주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혐의에 비해 과도한 관심과 비난이 슈가에게 쏟아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슈가의 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포토 라인 앞에서 팬들에게 사과와 해명하는 것이 슈가의 도리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경찰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면 조사 장소와 일정 등을 알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관련 정보를 입수해 취재하는 언론을 현실적으로 막기 어렵다. 또 피의자의 요구로 취재진을 피할 수 있게 협조한다면 특혜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석 달 전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출석 후 조사가 끝났는데도 취재진이 있다며 귀가를 거부하는 김 씨를 6시간 넘게 방치했다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조지호 당시 서울경찰청장(현 경찰청장)이 강남서를 질책해 김호중은 정문으로 나와야 했다. 애초 공식 포토 라인은 없었으나 김 씨는 이른바 '뻗치기'(대기)하는 취재진이 만든 비공식 포토 라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연예인이 공인이냐 아니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자유 영혼'을 지닌 예술가에게 공인에 준하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은 계속 나온다.
다만 아이돌은 '우상'이란 뜻이다. 특히 BTS는 유엔 총회에 세계 청년 대표로 참석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아이돌 그룹이다. 슈가는 '왜 아이돌이 유엔 총회에 참석하느냐'는 비판에 "SDG(지속발전가능목표) 관련 홍보를 위해, 스피커가 돼서 많이 알리기 위해 참석했다"며 소신을 보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슈가가 만일 아무도 모르게 비공개 조사를 받고 귀가했으면 어땠을까. 사건 발생 17일 만에 소환돼 포토 라인 앞에서 '죄송하다'고 밝힌 2분의 시간마저 없었다면, 그는 팬과 대중에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일 기회까지 놓쳤을지 모른다. 슈가에게 의혹을 묻고 입장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포토 라인이었기 때문이다.
hi_na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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