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의사' 믿어야 사는 여자들…SNS 5분이면 미프진 불법 거래
[1㎝ 약 삼킨 여자들]②답장 8분, 주문 5분, 배송 4일
의사 행세하며 복약지도…"미프진 도입 지연에 암거래만 활개"
- 장성희 기자, 홍유진 기자, 서상혁 기자,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장성희 홍유진 서상혁 김예원 기자 = 5분. 자정이 훌쩍 넘은 오전 2시쯤, 미프진(임신 중지 약물) 거래 성사까지 걸린 시간이다. 야심한 새벽, 판매자는 미프진 구매 문의에 8분 만에 답했다. 미프진 사이트에 나온 상담 시간은 오후 6시까지다. 그러나 판매자의 손님 응대는 불야성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4일. 주문 후 미프진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미프진 판매자는 프랑스에서 미프진을 직수입해 국제 우편 서비스로 발송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편물에 적힌 발송지는 '동두천'. 이 약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의사 행세를 하는 판매자의 "안심해도 된다"는 말, 믿어도 되는 걸까?
◇믿고, 상담하고, 도박처럼 거래
"직구로 받은 미프진 양도합니다" "미프진 급하게 구합니다"
미프진 거래 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령처럼 떠돈다. 임신 중단이 간절한 여성들은 그 실체가 불분명한 광고 글을 믿고, 상담하고, 도박처럼 거래한다. 텔레그램 오픈 채팅창과 X(구 트위터) 등 SNS에서 만난 판매자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직접 미프진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미프진 판매 전문 사이트에서도 미프진은 거래되고 있다. 흰 가운을 걸친 금발의 외국인이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경화면이지만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다. 미프진 구매를 신청하는 10여 개의 글이 이곳에 매일 올라온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두 가지 약으로 구성된 콤비팩이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작용을 차단하고, 미소프로스톨은 자궁 수축을 유도한다. 두 약물을 함께 복용했을 때 임신중지 성공률은 95% 이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안전한 임신 중지 방법으로 권고하고 있다. 세계 70여 개국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미프진의 안전성은 인정받았다.
그러나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식약처의 품목허가 문턱을 넘지 못해 국내의 모든 미프진 거래는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다. SNS와 불법 사이트 등 음지에서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는 배경이다. 온라인상 약물 판매는 약사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만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처벌 조항은 없다.
◇상담사이자 판매자…의사 행세까지 하는 '꾼들'
미프진 구매 자체는 간단하다. 해당 사이트에서 임신 주차를 선택한 뒤 판매자가 문자로 발송하는 계좌번호로 돈을 입금하면 끝이다. SNS상 개인 간 거래도 마찬가지다. 주문부터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분이다. 임신 1~7주 차 여성은 대개 30만~35만 원, 7~10주 차가 45만~55만 원을 지불해 미프진을 구매한다. '음지'에선 미프진 시세 형성이 끝난 상태다.
SNS에서는 미프진을 팔아 먹고사는 '꾼'들도 생겨났다. X의 미프진 판매자는 <뉴스1>에 "우연한 기회로 미프진 양도 글을 올렸는데 구하는 사람이 많아 해외에서 따로 구매해 재판매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1년간 사이트를 운영했다는 한 전문 판매업자도 "매일 20~30건의 미프진이 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도 미프진을 직접 주문해 봤다. 임신 7주 차라고 하자, '꾼'이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준 뒤 35만 원을 이체하라고 했다. 예금주 이름은 'JIN HAIYU'. 수상해 보였지만 믿고 돈을 부쳤다.
이후 나흘 뒤 실제로 미프진이 도착했다. 발송지는 '동두천'이었다. 택배 상자를 열자 충격 완화비닐로 칭칭 감긴 투명 지퍼백 2개가 나왔다. 동그랗고 하얀 민무늬의 미프진이 보였다. 미소프로스톨 6정, 미페프리스톤 3정이었다.
택배 상자를 뒤적였지만 설명서는 없었다. 알약 9알이 전부였다. 조그마한 약상자는 고사하고 유통기한 표시도 없었다.
'짝퉁 미프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22년 중국산 가짜 약 5만 7000여 정(시가 약 23억)을 정품 미프진으로 둔갑해 재판매한 일당이 검거된 바 있다. 이 제품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복용 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제조사 묻자 얼버무리는 '가짜 의사'
"제조사가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정품인지 불안해서요."
미프진을 판매한 J 씨에게 물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제조된 미프진이 프랑스를 거쳐 온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제조사를 재차 질문하자 그는 "구글이나 온라인에 검색해 보세요. 정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알약만 배송되고 있어 정품 확인 방법은 따로 없다"며 얼버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신 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꾼들'의 미프진을 믿어야 사는 현실에 내몰렸다. 유일하게 믿어야 하는 사람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꾼들이었다. 기자와 접촉한 꾼은 "중절 수술은 가격도 비싸고 자궁 내벽이 얇아진다"며 미프진을 권유했다.
미프진 구매 여성들은 "꾼들이 의사 같았다"고 말했다. '가짜 의사'인 셈이다. "지금 제대로 되고 있느냐"고 물으면 이들은 "수정체가 맞는다"며 안심시킨다. 약 복용 후 흘러나온 응혈 사진을 찍어 전송하면 임신 중지 성공 여부까지 판단하며 '의사 노릇'을 자처한다.
그러나 꾼들이 판매한 미프진은 복용량부터 복용 방법까지 검증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들이 말하는 '약물 용량'조차 제각각이었다. 임신 7주 차 기준으로 문의했을 때 8명 중 3명은 미프진 9정을, 5명은 5정을 복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페프리스톤(200㎎) 1정과 미소프로스톨(200㎎) 4정을 복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J 씨가 안내한 복용량과 한참 차이가 있다.
주의사항을 물어도 일치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판매자 2명은 "약을 선구매해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5명은 "사이트나 첨부한 사진을 참고하라"고 했다. 나머지 1명은 "별도 주의사항이 없다"고 했다.
◇뒷짐 진 채 관망하는 국회·정부…'꾼들' 전성시대
국회에서는 한때 미프진 도입을 논의했지만 공회전이었다. 저출생 논의에 치여 임신 중지 논의는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선 권인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약물을 활용한 임신 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대약품은 앞서 2021년 '미프지미소정'(성분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품목허가를 식약처에 신청했지만 자료 보완 문제로 자진 취하했다. 지난해 3월 다시 허가를 신청해 재심사가 진행됐지만 같은해 7월 식약처는 또다시 보완을 요청했다. 미프진의 국내 도입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미프진의 효과성과 안전성은 공인됐는데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속 심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와 정부가 뒷짐 진 채 관망하는 동안 미프진 암거래 '꾼들'은 활개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한 임신중지 약물 불법 판매 게시글은 491건에 달한다. X와 대학생활 플랫폼, 여성 커뮤니티, 텔레그램 등 각종 채널에 관련 게시글이 매일 올라오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암거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만19~44세 여성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 내 임신중지 경험자 602명 중 189명이 약물을 선택했다. 임신 중지를 선택한 여성 3명 중 1명은 미프진을 복용한 셈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에서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미프진 도입을 미루고 있지만 여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미프진을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미프진 도입을 미룰수록 암시장 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위험성만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cym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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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서 임신 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과연 그럴까. 의료계는 여전히 임신 중지 수술에 소극적이며, 일부는 진료조차 거부한다. 각자도생에 내몰린 여성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체불명의 판매자를 만나 임신 중단 약물 '미프진'을 구매한다. 가짜 약인지, 진짜 약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지름 1㎝의 알약을 입안에 털어 꾸역꾸역 삼킨다. 정부와 국회는 뒷짐 진 채 여성들의 '목숨 건 임신 중단'을 관망 중이다. 뉴스1은 지난 2개월간 전국 산부인과 300여 곳을 전수 조사하고, 전국 곳곳에 있는 미프진 판매자들과 구매자 여성들을 직접 만나 대한민국 임신 중지 실태를 심층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