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은 우리 이어주는 '공동체'"…화력 최강 '시니어 팬덤'

[팬덤보고서]③"팬덤, 시니어에게 사회 활동 매개체"
콘서트·굿즈 늘 매진…봉사 활동·기부 이어져

편집자주 ...대중문화 팬덤이 '10대의 고유문화'라는 것은 옛말이다. 내년 서른 살이 되는 직장인 여성은 자신보다 어린 아이돌 그룹 사인회의 입장권을 얻고자 앨범을 200만 원어치 산다. 가수 임영웅의 팬덤은 주로 중장년층으로 소문난 '고액 기부자'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열광하게 하고, 지갑을 열게 했을까. 한때 자신도 팬덤에 속했다는 남해인 기자가 사회 현상으로 주목받는 팬덤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해부해 보도한다.

임영웅 서울월드컵경기장 콘서트(물고기뮤직 제공) ⓒ News1 황미현 기자

(서울=뉴스1) 남해인 기자 = 가수 임영웅 팬덤 '영웅시대' 회원 신 모 씨(63)는 지역 팬덤 활동을 하다 처음 만난 지역 회원들과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모임을 가진다. 임영웅 노래 차트 순위와 '스밍'(스트리밍·음원을 틀어놓는 것) 실적으로 시작된 대화는 자녀의 회사 생활, 건강으로까지 이어지며 끝날 줄을 모른다.

신 씨는 "임영웅은 우리 삶의 활력이면서도 우리를 이어주는 고마운 가수"라며 "모처럼 많이 대화하고 많이 웃는데 임영웅이 오랜 시간 행복하게 활동해 주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김 모 씨(68)는 친구들과 함께 지난 6월 열린 가수 이찬원 콘서트를 가기 위해 귀국했다. 한국에 온 지 3년 만이다.

김 씨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여고 동창 6명이 모여 이찬원 얘기를 하면서 오랜만에 하나가 됐다"며 "가족들도 모두 미국에 있어 한국에 올 일이 거의 없는데 이찬원 덕분에 친구들도 보고, 한국에 여행하러 온 기분이 들어 좋았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10대 팬보다 화력 센 '시니어 팬덤'

10대 '또래 문화'로 여겨졌던 팬덤 활동에는 이제 나이가 없어졌다.

특히 인기 트로트 가수 팬덤은 50대·60대, 그 이상 연령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콘서트와 음악 방송 등 현장 활동은 여느 10대 팬들보다 화력이 세다. 콘서트에 가면 거의 모든 관객이 가수 '굿즈'(팬 활동을 위한 자체 제작 상품)로 판매되는 옷을 챙겨입고 응원봉을 들고올 정도로 충성도가 엄청나다.

늘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콘서트 티케팅 전후에는 전국의 '효자', '효녀'들의 티케팅 팁을 공유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이 여럿 올라온다.

50대 이상 '시니어 팬덤' 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팬덤이 팬 활동을 위해 모인 모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대부분 직장에서 은퇴를 하거나 전업주부로 살아오다 자녀들도 가정의 울타리를 떠난 이들에게 팬덤은 소속감과 새로운 삶의 의미를 주는 '커뮤니티', '공동체'와 같다.

가수 영탁이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열린 ‘제32회 롯데면세점 패밀리 콘서트’(이하 ‘롯데 콘서트’)에서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아이돌 팬덤과 다르게 지역마다 지부 단위로 쪼개져 있는 시니어 팬덤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가수의 이름과 사진이 있는 현수막을 내걸고 지역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모금 활동을 벌여 가수의 이름으로 구호 단체에 기부한다.

영웅시대 서울 지역 팬클럽은 최근 임영웅의 데뷔 8주년을 기념해 1050만 원을, 강원 지역 팬클럽은 노인복지관에 선풍기 100대를 기부했다. 이외에도 지역 팬클럽들은 연말 김장철이면 김장 봉사를 하며 김치를 취약계층에 기부하기도 한다.

가수의 이름을 드높이면서도 봉사와 활기도 얻을 수 있어 이들에겐 일석이조다.

영탁 팬덤 활동을 하며 김장 봉사에 참여했던 이 모 씨(60대)는 "내가 할 줄 아는 일로 봉사도 하고, 같은 관심사로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사는 얘기도 하니 모임에 다녀오면 뿌듯하다"며 "기회가 있다면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 "팬덤, 시니어에게 사회 활동 매개체"

전문가들은 시니어 팬덤이 크게 활성화된 건 팬덤이 사회 활동의 매개체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젊은 시절 취미 활동을 할 겨를이 없었던 중년 세대에게 새로운 취미가 돼주기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중년에게 팬덤이라는 조직은 연예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고, 나아가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모르는 사람들끼리 콘서트에서 떼창을 하고, 팬 활동을 위해 힘을 모으다 보면 집단성이 발휘되고 이로써 크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년 세대들은 지금까지 먹고살기 바빠 취미 활동을 열심히 해본 적이 별로 없다"며 "새로운 세계인 팬덤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조직의 생동감을 느끼며 활력을 얻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hi_na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