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와 살고 싶다"…아이까지 납치 '가짜 임신' 돌려막기
"임신했다"며 5살 연하에 결혼 약속 받아낸 유부녀[사건속 오늘]
아기 입양 어렵자 심부름센터에 청부 의뢰 결국 '친모 살해'까지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05년 8월 24일 조간신문에는 서울고법 형사2부(전수안 부장판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평택 영아 납치 및 친모 살해사건과 관련해 1심과 같은 판단을 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재판부는 납치 및 친모를 살해한 A (36), B(40)에게 무기징역형, 영아 납치를 사주한 김 모 씨(38)와 김 씨의 부탁을 받고 처남 A와 친구 B에게 납치를 지시한 심부름센터 대표 C(40)에게 각각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 나이트서 5살 연하남 만난 30대 유부녀…임신했다 거짓말로 결혼 약속 받아내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이기택 부장판사가 2005년 4월 21일 "가치관이 전도된 여자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인간성이 마비된 남자의 비극적 만남이 아기를 출산한 기쁨으로 가득한 한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어머니와 아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패륜적 납치와 살인을 불러왔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선고할만큼 충격적인 이 사건은 김 씨가 뿌린 씨앗에서 출발했다.
1990년 남편과 결혼 1남(1990년생) 1녀(1993년생)을 둔 김 씨는 남편과 불화를 겪다가 2003년 서울시 중랑구 중화동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트럭을 몰던 5살 연하남 D를 만났다.
김 씨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가 아님에도 D가 호남형인 데다 집에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미국 교포로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접근, "아이를 임신했다"며 결혼 약속을 받아냈다.
◇ 신부 측 하객, 심부름센터 통해 동원…가짜 결혼식
김 씨는 2003년 11월 D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당시 김 씨는 C의 심부름센터에 의뢰, 일당 5만 원씩을 주고 신부 측 하객 수십명을 동원했다.
둘째 출산 후 임신이 불가능했던 김 씨는 "미국 친정으로 가 아이를 낳고 돌아오겠다"고 거짓말한 뒤 2004년 2월 말 집을 나와 천호동 친구의 집으로 갔다.
◇ 7000만 원 주면서 "신생아 구해달라"…70일 된 아이 안고 가던 21살 엄마 납치
김 씨는 친구 집에서 머물며 아이를 낳은 것처럼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았다.
우선 미혼모 보호시설과 접촉, 아이 입양을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김 씨는 2004년 3월초 하객동원을 의뢰했던 심부름센터를 다시 찾아가 C에게 착수금 4000만 원을 주면서 "아이를 구해주면 3000만 원을 성공사례로 더 주겠다"고 제의했다.
사업부진 등으로 빚에 쪼들렸던 C는 처남과 친구를 끌어들여 '영아 납치'를 지시했다.
A와 B는 2004년 5월 24일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의 한 거리에서 생후 70일된 아들을 안고 가던 K 씨(여)를 발견, 차량으로 납치했다.
◇ 아이 넘긴 납치범들 "아이 돌려달라" 애원하는 엄마 살해 후 암매장
천호동 친구 집에서 한 달간 머문 김 씨는 2005년 3월 20일 "신생아는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혼자 왔다. 곧 아기도 입국한다"며 거짓말, D의 집으로 들어갔다.
독촉에 독촉을 거듭하던 김 씨는 2004년 5월 25일, '아이를 구했다'는 답을 들었다.
A와 B는 경기도 광주에서 김 씨와 만나 아이를 넘겨준 뒤 이 사실을 C에게 통보, 성공사례 3000만 원을 추가로 받도록 했다.
차량에 감금된 K 씨는 아들을 안고 나간 납치법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아기를 돌려 달라"며 애원했다.
납치사실이 들통나면 곤란하다고 판단한 A와 B는 5월 25일 K 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강원도 고성군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
◇ 살해 20일 뒤 도로공사 도중 시신 발견…盧 탄핵 등 굵직한 뉴스에 파묻혀
억울한 죽임을 당한 K 씨의 시신은 살해 20일 뒤인 2004년 6월 15일, 미시령 도로확장공사를 위해 임야 벌목에 나선 작업반에 의해 발견됐다.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들어 있었던 엽기적 살인사건이었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라크 현지 한국인 통역사(김선일) 납치 사건 등 굵직한 뉴스에 파묻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 아들과 아내 찾아 헤맸지만…뺑소니 수배차량 검거 과정서 들통
아들과 아내의 행방을 찾아 헤맸던 K 씨 남편은 아내의 주검 앞에 통곡하면서 '아들만은 찾아내겠다'고 결심했지만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해결됐다.
K 씨 납치에 사용한 승합차는 C의 소유로 납치 보름여 전인 2004년 5월 충남 천안에서 오토바이를 친 뒤 달아나 '뺑소니 사고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다.
이 사실을 모른 C는 2005년 1월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을 지나가던 중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순찰차가 앞서가던 차량 번호를 조회, 뺑소니 수배차량임을 확인해 세운 것.
깜짝 놀란 일당은 추운 겨출날 식은땀을 흘리면서 경찰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다가 그대로 달아났다.
◇ 경찰 추격끝에 차량 세워…피해자 휴대전화 발견
경찰은 3km 추격끝에 C의 차량을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차량 안을 살피던 경찰은 배터리가 없는 휴대폰을 발견 "누구 것이냐"고 추궁했지만 C 등은 "길에서 주웠다"라며 변명을 했다.
이에 경찰은 휴대폰에 맞는 배터리를 구해, 마지막 통화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 전화 받은 여성 "7개월 전 시신으로 발견된 내 친구가 어떻게 전화를…"
경찰이 건 전화를 받은 여성은 "7개월전 시신으로 발견된 내 친구 전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당신 누구냐"며 따져 물었다.
경찰은 여성으로부터 죽은 친구가 K 씨임을 확인, C 등을 살인용의자로 특정, 체포했다.
C는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아니냐"라는 경찰 설득에 "내가 죽이지 않았다"며 엉겹결에 A, B가 살해범임을 실토하고 말았다.
◇ 납치한 아이 호적에 올리고 유야용품 명품으로…경찰 급습에 "왜 내 애를 뺏어"저항
경찰은 아이를 친아버지에게 돌려주는 한편 김 씨를 체포하기 위해 가능한 조용히 김 씨 거주지를 덮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 2005년 1월 25일 새벽에 김 씨의 집을 급습했다.
경찰이 들이닥치자 김 씨는 "왜 내 아들을 뺏어가냐, 당신들 뭐냐"며 거세게 저항했다.
당시 김 씨의 집은 명품 유아용품으로 가득찼고 김 씨는 아이를 D의 호적에 올리는 한편 유아 예방접종도 빠지지 않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 "그 사람과 살고 싶었다"는 납치 청부女, 7000만 원 더 뜯겨…친부, 8개월만에 아들 찾아
경찰에서 김 씨는 "그 사람과 살고 싶었다"며 "미혼모가 낳은 버려진 아이를 원했을 뿐 이런 일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A,B,C도 "죽일 의도는 없었다. 너무 격렬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당황해 우발적으로 목을 졸랐다"며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경찰에 알리겠다"고 김 씨를 협박, 7000여만 원을 더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8개월여 동안 생업을 팽개치다시피 하며 아들을 찾아 다녔던 아버지는 아들을 돌려받은 기쁨, 원통하게 죽임을 당한 아내 생각에 오열했다.
김 씨와 C는 2009년 만기출소했으며 아이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어엿한 성인으로 잘 큰 것으로 알려졌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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