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복역→연쇄살인…고작 15년형 흉악범, 더 큰 비극 만들다

2명 더 죽인 권재찬, 사형→무기징역 감형[사건속 오늘]
지인 살해 후 시체유기 공범 만들어 뒤집어씌우기 시도

50대 남녀를 연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권재찬이 2021년 12월 14일 검찰 송치를 위해 인천 미추홀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1.12.14/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2022년 6월 23일 인천지법 제15형사부(재판장 이규훈)는 강도살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재찬(당시 53세)에 대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1969년생인 권재찬은 1985년 주거침입죄 등으로 비행을 저질러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이후, 성인이 된 1987년 특수절도 등으로 징역 8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1991년부터는 그 범행이 강간, 강도살해죄 등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1991년에는 한 빌라에 거주하는 여성의 집에 침입한 뒤 강취할 금품이 보이지 않자 강간하고, 잠복 경찰에 검거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97년에는 잠기지 않은 집에 침입해 260만 원을 강취하고, 피해자를 강제추행했으며, 재차 같은 주거지에 침입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이후 이 사건 범행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출소 후 2003년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 소재 전당포 업주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살해하고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3월 만기 출소한 권재찬은 불과 3년 8개월 만에 또다시 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 지인 여성 살해 후 시신 유기 공범 만들어 완전범죄 꿈꿨다

2018년 출소 후 지역의 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던 권재찬. 그는 이 모임에서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던 50대 여성 A 씨를 알게 됐다. 또 50대 남성 B 씨와도 친분을 쌓았다.

출소 후 건설 현장에 취직했으나 도박장을 다니다가 9000만 원의 채무를 진 권재찬은 2021년 12월 4일 인천 미추홀구의 한 건물에서 A 씨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여 그를 살해했다. 권재찬은 A 씨가 착용하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챙기고, 살해 전 A 씨를 폭행해 미리 파악해 둔 A 씨의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통해 수백만 원을 인출했다.

그는 곧 B 씨에게 대가를 약속한 뒤 A 씨 시신유기 범행에 B 씨를 가담하게 했다. 권재찬은 B 씨와 함께 A 씨의 시신을 A 씨 차 트렁크로 옮겼고, 인하대역 인근에 시신이 실린 차를 유기했다. 이어 B 씨를 중구 을왕리 인근으로 유인한 권재찬은 B 씨를 살해해 그의 시신도 인근에 유기했다.

권재찬은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으나 경찰은 A 씨의 시신에서 약물이 검출된 점 등에 비춰 금품을 노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임을 밝혀냈다. 또 B 씨를 살해하기 전 A 씨의 현금을 인출하도록 시켜 B 씨에게 범행을 뒤집어씌우고자 시도한 정황도 확인했다.

경찰은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인 점 등을 고려해 권재찬의 신상공개를 추진했고, 2021년 12월 9일 3명을 살해한 흉악범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인천경찰청은 2021년 12월 9일 청사에서 열린 신상 정보 공개위원회에서 강도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권재찬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인천경찰청 제공)2021.12.9/뉴스1 ⓒ News1

◇ 앞선 '전당포 업주 살인'서 판사는 왜 '무기→15년' 감형했나

"전당포에서 강도살인 범행을 한 것은 공범들입니다. 저는 밖에서 망을 봤을 뿐이에요."

2003년 인천지법 제4형사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권재찬의 말이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에 '사실오인 및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권재찬은 당시 2003년 1월 14일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 소재 전당포에서 홀로 있던 업주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숨지게 하고, 전당포에 보관 중인 32만 원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권재찬이 주장한 공범 2명의 신원은 항소심 선고공판에 이르러서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당시 재판부는 그의 사실오인 주장과 관련해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범들의 신원이 불명확하고, 그 공범들이 범행을 실행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취지다. 또 설사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공범으로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못했다. 당시 사건 기록상 목격자 증언 및 CCTV에 권재찬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2명의 남성이 목격되면서다. 재판부는 권재찬의 주장대로 그가 밖에서 망을 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여겨 원심 판단대로 무기징역 선고를 주저하고, 형량을 감경해 15년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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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심 사형→2심 무기징역→대법원 무기징역 확정

50대 남녀를 연쇄살해한 권재찬에 대해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후회나 죄책감도 부족하고, 인명경시, 공감능력 결여가 보이며 재차 살인 범행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 교화의 가능성이 없고, 인간성 회복도 기대할 수 없다"며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권재찬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계획해 범행을 했다고는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는 권재찬의 범행 수법이 대법원 양형기준에 비춰볼 때 '극단적 인명경시의 살인'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기에 사형 선고는 지나친 형벌이라고도 판단했다.

이 같은 판결에 유족 측은 "왜 그런 판단이 섰는지 판사들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물론 (피고인에게) 억울함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사람을 3명이나 죽였다"며 탄식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양형에 관한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현재 실효가 없이 존치돼 있는 '사형' 제도가 재판부의 소극적인 판단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3개월 후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syk1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