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제다이는 낯설다?"…PC적 요소가 중요한 걸까[체크리스트]

문화계 '정치적 올바름' 요소 두고 첨예한 논쟁
PC 억지로 끼워 넣기보다 '작품성'을 고려해야

배우 이정재가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디즈니+ 웹드라마 '애콜라이트'(감독 레슬리 헤드랜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6.5/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애콜라이트'(The Acolyte)에 한국 배우 이정재 씨가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콜라이트 예고편이 공개된 후 해외 팬 중 일부는 '동양인 제다이가 낯설다'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발 더 나아가 '또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웠다'는 식의 반응이 나옵니다.

최근에 이와 같은 각종 콘텐츠 속에 녹아든 PC 주의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주의해야 하지만, 창작자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하기보다는 PC적 요소를 끼워 넣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억지스럽다'와 '다양성' 사이에서

애콜라이트에서 이정재가 맡은 배역은 마스터 제다이입니다. 마스터 제다이 역에 동양인이 캐스팅된 것은 최초이죠. 그러나 지난 3월 애콜라이트 예고편 영상에는 '디즈니가 제다이를 죽이고 있다'라는 식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다양성'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혐오'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우주 활극 스타워즈에서 인종이 무슨 상관이냐는 거죠.

애콜라이트의 감독인 레슬리 헤드랜드 또한 뉴욕타임스(NYT)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편견과 인종주의, 혐오 발언과 관련된 사람을 스타워즈 팬으로 여기지 않는다"라며 일침을 놓기도 했죠.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PC 논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근 유비소프트가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어쌔신크리드 섀도우'의 예고편을 공개했는데, 여기서 등장한 흑인 사무라이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두 명의 주인공 중 남성 캐릭터인 '야스케'가 일본 전국시대의 흑인 사무라이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부 누리꾼은 "시리즈 최초 동아시아 배경인데 아시아인이 아닌 흑인을 주인공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냐"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야스케가 실존 인물에 기반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캐릭터 변주는 괜찮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의 경우 비슷한 논란에 휩싸이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주인공 아리엘 역을 맡자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의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드러운 이미지인 원작 만화의 에리얼과 비교해 할리 베일리의 이미지는 강인해 보인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실망한 팬들은 영화에 등을 돌렸고, 2000억 원대 손실의 흥행 참패로 이어졌습니다.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애리얼역을 맡은 가수 할리 베일리가 지난달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5.8.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결국 대중은 완성도 높은 콘텐츠에 지갑 열 수밖에 없다인어공주의 흥행 참패 원인은 'PC 요소'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결국 콘텐츠의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거죠.

주인공 역을 원작 이미지와 다르게 그려내기로 했다면, 새롭고 매력적인 스토리나 탄탄한 개연성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러나 '왕자와 사랑에 빠져야만 마녀의 저주가 풀린다'는 서사는 크게 바뀌지 않는 등 여전히 진부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영화의 CG 장면도 어색하고, 인어들의 분장이나 디테일 등도 떨어진다는 평도 있었고요.

작품의 완성도도 낮은데 캐릭터도 매력이 없으니,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죠.

일각에서는 인어공주의 사례처럼 창작자들이 무리하게 PC적 요소를 가미하려다가 정작 작품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PC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은 '명작 콘텐츠'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2'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서부 시대의 황혼기(1890년대)를 그려낸 이 작품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치는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또 해당 작품의 주인공인 아서 모건이 속한 갱단 '반더린드' 조직에는 당시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흑인, 인디언과 흑인의 혼혈, 여성, 노인, 어린아이, 과부, 성소수자 등이 등장합니다.

게이머는 각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면서 이들의 서사에 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이디 애들러라는 캐릭터는 초기에는 남편이 살해당한 여성으로 등장해 주인공에게 구조됩니다. 게임에서 이 캐릭터는 수동적이기보다는 갱단에서 뛰어난 사격술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주요 조직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집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2는 이렇듯 매력적인 캐릭터와 높은 게임성 덕분에 '명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2024년 2월 기준 6100만 장이 팔렸습니다.

대중들은 결국 완성도 높은 콘텐츠에 지갑을 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화 산업도 세계적인 트렌드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다만 시장의 논리로 PC적 요소를 작품에 녹여내기보다는 배우나 캐릭터가 작품 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잘 녹아들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정재 씨가 출연한 '애콜라이트'는 현재 8회 중 2회가 공개된 상태입니다. 전체 회차가 공개된 후 평가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대중에겐 '배우의 인종과 성별'보다는 '콘텐츠가 얼마나 재밌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게임 '레드 데드 리뎀션2' 속 한 장면(출처 : 락스타게임즈)

kxmxs410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