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보려면 제주로 와라" 전 남편 펜션 유인 토막 살해
시신은 바다 등 여기저기 버려 끝내 못찾고 재판 [사건속 오늘]
"난 성폭행당할 뻔한 피해자" 뻔뻔 거짓말…의붓아들도 의문사
- 박태훈 선임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9년 5월 25일 전 남편을 토막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고유정(1983년 2월생)은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다.
33년 만의 여성 연쇄 살해 혐의자, 무표정, 거짓말, 토막살해범이라는 특이점 외 시신 없는 여성 살해범이라는 점은 고유정 외 다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2023년 5월 26일 또래 과외 여교사를 살해해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이 고유정 사건에 비유한 까닭은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행동, 무표정, 범행의 유사성, 같은 이름 등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1986년 10월부터 1988년 8월까지 5명을 죽인 한국 여성 연쇄 살인범 1호 김선자,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전남편, 현 남편, 지인의 남편을 죽이고 친어머니와 친정 오빠 등 5명을 실명케 한 엄여인 엄인숙 정도만이 고유정 악행에 견줄만하다는 평가가 나왔을까.
◇ 법원에 '아들 보여 달라'며 소송 낸 전남편에게 분노…아들 만나고 싶으면 제주로 오라 유인
고유정 사건은 5년 전인 2019년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무인 펜션에서 고유정이 전남편 A 씨(당시 36세)를 살해 후 토막 내 바다 등지에 뿌린 범행을 말한다.
고유정이 A 씨를 죽인 이유는 어처구니없다. 이혼하면 그만이지 왜 아들을 만나려 하느냐는 것.
제주 재력가 집안에서 태어난 고유정은 제주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 A 씨와 2013년 6월 결혼, 아들(2014년생)을 뒀지만 성격 차이로 2017년 6월 이혼했다.
이혼 당시 양육권을 차지한 고유정은 A 씨가 아들에 대한 면접 교섭을 요구하며 소송을 낸 것에 불만을 갖던 중 2017년 11월 청주에 살고 있는 B 씨(1982년생)와 재혼하면서 아들은 제주 친정에 맡겼다.
고유정은 2019년 5월 9일 법원이 '2주마다 아들을 볼 수 있도록 하라, 1차 면접 장소는 고유정 거주지인 청주로 정한다'며 A 씨 손을 들어주자 5월 20일 "아들은 지금 제주도에 있다. 보고 싶으면 제주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 전 남편 만나기 전 치밀한 준비…수면제, 흉기, 가방, 쓰레기봉투, 펜션 예약
고유정은 '제주에서 만나자'라는 문자를 보내기 3일 전인 5월 17일 청주의 한 병원에서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수면제(졸피뎀)를 처방받는 한편 조천읍의 펜션을 예약했다.
5월 18일 청주에서 자신의 차량을 몰고 배편으로 제주에 온 뒤 22일엔 흉기, 톱, 베이킹파우더, 표백제, 고무장갑, 세숫대야, 청소용 솔, 여행용 가방 2개, 종량제 봉투 30여장 등을 구입했다.
이어 25일 아침 제주 친정에서 아들을 데리고 나온 고유정은 A 씨를 만나 그날 오후 4시 40분쯤 예약한 조천읍 무인 펜션으로 들어가 졸피뎀을 탄 카레라이스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 살해 후 48시간에 걸쳐 토막, 유기…완도행 여객선 등에서 바다에 뿌려
고유정은 A 씨가 수면제에 취해 잠이 들자 25일 밤 8시에서 9시 16분 사이 살해했다.
A 씨가 숨지자 고유정은 시신을 욕실로 옮긴 뒤 27일 밤 11시 30분 펜션을 완전히 나갈 때까지 시신 토막, 시신 유기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27일 낮 12시 무렵 고유정이 펜션 인근 쓰레기장에 봉투 4개를 버리는 장면이 CCTV에 잡혔으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을 때 봉투는 이미 소각된 뒤였다.
28일 밤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타기 전 범행에 사용하고 남은 물건을 마트에서 환불 처리한 고유정이 그날 밤 9시 30분에서 37분 사이 여행용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바다에 버렸다.
이 장면도 CCTV에 잡혔지만 경찰은 시신 수색에 실패했다.
완도에서 차를 몰고 김포에 있는 친정 가족 명의 아파트로 간 고유정은 거기에서도 A 씨 시신 일부를 쓰레기장에 버렸다. 경찰은 고유정의 진술에 따라 쓰레기 처리장 등을 중심으로 시신 찾기에 나섰으나 역시 실패했다.
◇ 전 남편 동생 '실종 신고'…고유정 "나를 성폭행 하려다 실패, 도망갔다" 거짓말
고유정 사건에 경찰이 나선 건 5월 27일 A 씨 남동생이 "고유정을 만나러 제주에 간 형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하면서부터.
고유정과 통화를 시도한 경찰은 "A 씨가 나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도망쳐 버렸다"는 고유정의 말을 믿고 단순 실종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28일 밤 A 씨 동생이 "형이 펜션에 들어간 장면은 있는데 나가는 장면은 없다"며 펜션 CCTV를 들이밀자 강력사건으로 전환, 펜션을 수색했다.
그 결과 펜션에서 A 씨의 혈흔이 다량 발견되자 경찰은 31일 청주의 고유정 집과 차를 압수수색, 차 트렁크에서 혈흔이 묻은 흉기를 발견했다.
◇ 사건 일주일 뒤 체포된 고유정 "나를 왜? 난 성폭행 당할 뻔한 피해자" 뻔뻔
경찰은 6월 1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고유정이 살고 있는 청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 체포했다.
체포 당시 고유정은 "나를 왜? 난 성폭행 당할 뻔한 피해자일 뿐이다"며 뻔뻔스럽게 거짓말했다.
제주로 압송된 고유정은 살인 혐의를 부인하다가 6월 4일 구속영장이 떨어지자 "수박을 썰고 있는데 남편이 덮치려 해 그만…"이라며 성폭행 피해를 막으려 하다가 저지를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A 씨 혈흔에서 졸피뎀 성분이 찾아낸 경찰은 수면제에 취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며 고유정 진술을 물리쳤다.
◇ 전 남편 살해 84일 전 4살 의붓아들 질식사…고유정, 살해 결론
고유정은 A 씨 살해, 사체손괴죄, 사체은닉죄와 함께 의붓아들 C 군(2014년생)을 살해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고유정이 A 씨 살해 혐의로 체포되자 남편 B 씨는 A 씨 살해 84일 전인 3월 2일 자기 아들 C 군이 질식사한 일도 의심스럽다며 제주지검에 고유정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C 군이 사망하기 전날 고유정이 음료수를 준 점 등이 A 씨 사건과 유사하다며 2019년 9월 25일 고유정에게 C 군 살해 혐의를 추가했다.
◇ 전 남편 살해 유죄 '무기징역', 의붓아들 살해 '증거 불충분하다' 무죄
2020년 2월 20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정봉기)는 "A 씨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로 살해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며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의붓아들 C 군 살해 혐의에 대해선 △ C 군이 자다가 B 씨에게 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 고유정이 C 군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증거가 부족한 점 등 살해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7월 15일 2심인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왕정옥), 2020년 11월 5일 대법원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 재력가 집안, 조력자 없었나, 재혼남편 이혼및 위자료 소송 승리
많은 사람은 고유정이 제주의 재력가 집안에서 자랐다는 점,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구의 여성이 180cm의 건장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냈음에도 조력자가 없었는지, 의붓아들 사망에 과연 연관이 없었는지 등을 놓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B 씨는 2020년 말 고유정을 상대로 이혼 소송 및 위자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청주지법은 고유정에게 "이혼과 함께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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