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보려면 제주로 와라" 전 남편 펜션 유인 토막 살해

시신은 바다 등 여기저기 버려 끝내 못찾고 재판 [사건속 오늘]
"난 성폭행당할 뻔한 피해자" 뻔뻔 거짓말…의붓아들도 의문사

전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된 고유정(36)이 2019년 6월 7일 제주시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일 신상공개위원회 회의를 열어 범죄수법이 잔인하고 결과가 중대해 국민의 알권리 존중 및 강력범죄예방 차원에서 고씨에 대한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영상캡쳐)2019.6.7/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19년 5월 25일 전 남편을 토막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고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고유정(1983년 2월생)은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다.

33년 만의 여성 연쇄 살해 혐의자, 무표정, 거짓말, 토막살해범이라는 특이점 외 시신 없는 여성 살해범이라는 점은 고유정 외 다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2023년 5월 26일 또래 과외 여교사를 살해해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이 고유정 사건에 비유한 까닭은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행동, 무표정, 범행의 유사성, 같은 이름 등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1986년 10월부터 1988년 8월까지 5명을 죽인 한국 여성 연쇄 살인범 1호 김선자, 보험금을 타 내기 위해 전남편, 현 남편, 지인의 남편을 죽이고 친어머니와 친정 오빠 등 5명을 실명케 한 엄여인 엄인숙 정도만이 고유정 악행에 견줄만하다는 평가가 나왔을까.

◇ 법원에 '아들 보여 달라'며 소송 낸 전남편에게 분노…아들 만나고 싶으면 제주로 오라 유인

고유정 사건은 5년 전인 2019년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무인 펜션에서 고유정이 전남편 A 씨(당시 36세)를 살해 후 토막 내 바다 등지에 뿌린 범행을 말한다.

고유정이 A 씨를 죽인 이유는 어처구니없다. 이혼하면 그만이지 왜 아들을 만나려 하느냐는 것.

제주 재력가 집안에서 태어난 고유정은 제주에서 만난 캠퍼스 커플 A 씨와 2013년 6월 결혼, 아들(2014년생)을 뒀지만 성격 차이로 2017년 6월 이혼했다.

이혼 당시 양육권을 차지한 고유정은 A 씨가 아들에 대한 면접 교섭을 요구하며 소송을 낸 것에 불만을 갖던 중 2017년 11월 청주에 살고 있는 B 씨(1982년생)와 재혼하면서 아들은 제주 친정에 맡겼다.

고유정은 2019년 5월 9일 법원이 '2주마다 아들을 볼 수 있도록 하라, 1차 면접 장소는 고유정 거주지인 청주로 정한다'며 A 씨 손을 들어주자 5월 20일 "아들은 지금 제주도에 있다. 보고 싶으면 제주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2019년 6월 10일 제주동부경찰서는 '전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36)이 지난달 28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일부 물품을 환불하고 있는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공개했다. 환불 물품은 표백제, 락스, 테이프 3개, 드라이버 공구세트, 청소용품 등으로 같은달 22일 구입한 물품의 일부다.(제주동부경찰서 제공)2019.6.10/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 전 남편 만나기 전 치밀한 준비…수면제, 흉기, 가방, 쓰레기봉투, 펜션 예약

고유정은 '제주에서 만나자'라는 문자를 보내기 3일 전인 5월 17일 청주의 한 병원에서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수면제(졸피뎀)를 처방받는 한편 조천읍의 펜션을 예약했다.

5월 18일 청주에서 자신의 차량을 몰고 배편으로 제주에 온 뒤 22일엔 흉기, 톱, 베이킹파우더, 표백제, 고무장갑, 세숫대야, 청소용 솔, 여행용 가방 2개, 종량제 봉투 30여장 등을 구입했다.

이어 25일 아침 제주 친정에서 아들을 데리고 나온 고유정은 A 씨를 만나 그날 오후 4시 40분쯤 예약한 조천읍 무인 펜션으로 들어가 졸피뎀을 탄 카레라이스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 살해 후 48시간에 걸쳐 토막, 유기…완도행 여객선 등에서 바다에 뿌려

고유정은 A 씨가 수면제에 취해 잠이 들자 25일 밤 8시에서 9시 16분 사이 살해했다.

A 씨가 숨지자 고유정은 시신을 욕실로 옮긴 뒤 27일 밤 11시 30분 펜션을 완전히 나갈 때까지 시신 토막, 시신 유기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27일 낮 12시 무렵 고유정이 펜션 인근 쓰레기장에 봉투 4개를 버리는 장면이 CCTV에 잡혔으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을 때 봉투는 이미 소각된 뒤였다.

28일 밤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타기 전 범행에 사용하고 남은 물건을 마트에서 환불 처리한 고유정이 그날 밤 9시 30분에서 37분 사이 여행용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바다에 버렸다.

이 장면도 CCTV에 잡혔지만 경찰은 시신 수색에 실패했다.

완도에서 차를 몰고 김포에 있는 친정 가족 명의 아파트로 간 고유정은 거기에서도 A 씨 시신 일부를 쓰레기장에 버렸다. 경찰은 고유정의 진술에 따라 쓰레기 처리장 등을 중심으로 시신 찾기에 나섰으나 역시 실패했다.

2019년 5월 27일 낮 제주의 한 쓰레기 처리장에 전 남편 시신이 담긴 종량제 봉투를 버리는 고유정(왼쪽)과 27일 밤 완도행 여객선에서 남편 시신을 해상에 유기하는 모습이 찍힌 CCTV. (제주 경찰청 제공) ⓒ 뉴스1

◇ 전 남편 동생 '실종 신고'…고유정 "나를 성폭행 하려다 실패, 도망갔다" 거짓말

고유정 사건에 경찰이 나선 건 5월 27일 A 씨 남동생이 "고유정을 만나러 제주에 간 형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하면서부터.

고유정과 통화를 시도한 경찰은 "A 씨가 나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도망쳐 버렸다"는 고유정의 말을 믿고 단순 실종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28일 밤 A 씨 동생이 "형이 펜션에 들어간 장면은 있는데 나가는 장면은 없다"며 펜션 CCTV를 들이밀자 강력사건으로 전환, 펜션을 수색했다.

그 결과 펜션에서 A 씨의 혈흔이 다량 발견되자 경찰은 31일 청주의 고유정 집과 차를 압수수색, 차 트렁크에서 혈흔이 묻은 흉기를 발견했다.

◇ 사건 일주일 뒤 체포된 고유정 "나를 왜? 난 성폭행 당할 뻔한 피해자" 뻔뻔

경찰은 6월 1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고유정이 살고 있는 청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 체포했다.

체포 당시 고유정은 "나를 왜? 난 성폭행 당할 뻔한 피해자일 뿐이다"며 뻔뻔스럽게 거짓말했다.

제주로 압송된 고유정은 살인 혐의를 부인하다가 6월 4일 구속영장이 떨어지자 "수박을 썰고 있는데 남편이 덮치려 해 그만…"이라며 성폭행 피해를 막으려 하다가 저지를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A 씨 혈흔에서 졸피뎀 성분이 찾아낸 경찰은 수면제에 취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며 고유정 진술을 물리쳤다.

2019년 6월 1일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경찰에 긴급체포 될 당시 "내가 왜"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고유정. (경찰 영상 갈무리) ⓒ 뉴스1

◇ 전 남편 살해 84일 전 4살 의붓아들 질식사…고유정, 살해 결론

고유정은 A 씨 살해, 사체손괴죄, 사체은닉죄와 함께 의붓아들 C 군(2014년생)을 살해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고유정이 A 씨 살해 혐의로 체포되자 남편 B 씨는 A 씨 살해 84일 전인 3월 2일 자기 아들 C 군이 질식사한 일도 의심스럽다며 제주지검에 고유정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C 군이 사망하기 전날 고유정이 음료수를 준 점 등이 A 씨 사건과 유사하다며 2019년 9월 25일 고유정에게 C 군 살해 혐의를 추가했다.

◇ 전 남편 살해 유죄 '무기징역', 의붓아들 살해 '증거 불충분하다' 무죄

2020년 2월 20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정봉기)는 "A 씨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로 살해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다"며 고유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의붓아들 C 군 살해 혐의에 대해선 △ C 군이 자다가 B 씨에게 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 고유정이 C 군에게 수면제를 먹였다는 증거가 부족한 점 등 살해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7월 15일 2심인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재판장 왕정옥), 2020년 11월 5일 대법원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전 남편 살인사건 피고인 고유정이 2019년 4월 12일 제주지법에서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로 향하는 도중 성난 시민들에게 머리카락을 잡히고 있다. 2019.8.12/뉴스1 ⓒ News1 고동명 기자

◇ 재력가 집안, 조력자 없었나, 재혼남편 이혼및 위자료 소송 승리

많은 사람은 고유정이 제주의 재력가 집안에서 자랐다는 점,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구의 여성이 180cm의 건장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냈음에도 조력자가 없었는지, 의붓아들 사망에 과연 연관이 없었는지 등을 놓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B 씨는 2020년 말 고유정을 상대로 이혼 소송 및 위자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청주지법은 고유정에게 "이혼과 함께 위자료 30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