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의사 이길 수 없다"…그냥 막말인 줄 알았는데 [기자의 눈]

전공의·의사단체, '시간·여론이 자기 편'인 줄 착각
국민 생명 볼모로 힘겨루기 비쳐…조건없이 대화 시작해야

의대정원 증원을 놓고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28일 오전 서울의 한 병원에서 환자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2024.4.2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2000명 의대증원'이 발표된 뒤 5일이 지난 2월 11일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말이 논란이 됐을 당시엔 정부 방침에 단단히 화가 난 한 의료인의 객기쯤으로 치부됐었다. 하지만 두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정부와 의사들 간 '강 대 강 대치'를 지켜보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니 어쩌면 의료계는 이 말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의대증원 발표 직후 의료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1만 2000여 명에 달하는 전공의 가운데 1만명 가까이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하루만에 수련 중이던 병원을 이탈했다. 집단이탈이 지난 2월 20일부터 시작됐으니까 벌써 70일이 넘었다.

정부의 의대증원 방침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것은 알겠는데, 그다음이 문제다. 정부 방침이 틀렸다면 반대 투쟁을 벌이던가, 아니면 정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반대 목소리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디에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빅5 병원을 비롯해 대형 병원들의 전공의 의존도는 30~40%에 달한다. 병원 운영에 절대적인 전공의들이 다 빠지면서 외래진료, 수술 등이 반토막 났다. 환자들의 불편,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던 의대 교수들도 두 달 넘게 이어지는 격무에 정신적·신체적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은 외래진료도 수술도 하지 않는 이른바 '주 1회 셧다운'을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간신히 버티고는 있지만 이 상태로 더 장기화하면 의료대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공의와 의료계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의사들이 굳이 손에 피 묻혀 가며 정부와 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시간은 자기 편'이라는 걸 의사들은 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난 4·10 총선 직후 의료계 목소리는 더 격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처음엔 의대증원 숫자를 두고 흥정하듯 접근하던 의료계가 이때부터 '원점 재검토' '백지화'를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총선 전까지 의대증원분 '2000명'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정부가 대학 자율모집으로 유연해진 반면 의협, 전공의, 의대 교수, 의사 단체 등 직능별로 제각각이던 의료계는 힘을 합치며 응집력을 높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강경파로 분류되는 임현택 신임 의협 회장이 1일자로 취임하면서 의정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임 회장은 정부와의 대화 전제조건으로 진심어린 사과와 보건복지부 장·차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십상시들의 의견만 반영돼 왔다. 권력 남용으로 의료농단이 촉발됐다. 죽을 각오로 막아내겠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00명을 늘리자고 하는데 그는 현재 의대 정원보다도 500명 내지 1000명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협의체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별위원회에도 의협이나 전공의단체는 불참 방침이다. 의료개혁과 무관한 사람들이 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 회장은 정부와 의협이 '일대일'로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의료개혁이 정부와 의사만의 문제는 아닐진대 오만하다는 국민적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직도 상당수의 의사들이 여론과 시간이 의사들 편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많은 시민들이 환자 곁을 떠났거나, 또 떠나려는 의사들을 욕한다. 하지만 대놓고 하지는 못한다. 나와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몸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어서다. 이걸 무기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정부와 의사들이 힘겨루기로 비쳐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런 오해를 피하려면 양측 모두 모든 걸 내려놓고 일단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는 고소 고발이나 법적·행정적 조치 따위는 철회하자. 물론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도 거둬들여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28일 오전 서울의 한 병원 출입문에 의대정원 이슈와 관련된 진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4.2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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