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보험료 내주고 수혜자는 자기로…4억 챙기려 '죽마고우' 죽였다

금호강서 절친 살해 20대…독특한 걸음걸이로 덜미[사건 속 오늘]
1심 재판후 '직접증거 없다' 돌연 진술 번복…방송에 "억울" 주장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9년 전 오늘 대구 금호강 둔치에서 20대 남성이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은 미상의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해 다발성 두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범인으로 확신할 만한 물적 증거 없이 '법보행 분석'이 국내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하는 근거로 사용돼 범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첫 사례다.

◇ 퇴근 후 사라진 청년 가장, 18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

피해자 윤용필 씨(당시 29세)는 2015년 4월 23일 금호강 둔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피해자의 머리에는 17군데의 상처와 골절이 발견됐다. 시신에는 방어와 저항했던 흔적이 없었다.

윤 씨는 4년 전 어머니를 여의고 노인성 치매를 앓는 시각장애인 아버지의 요양병원 입원비를 대는 성실한 청년 가장이었다. 그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18일 전인 5일 오전 5시쯤 약속이 있다며 평소보다 3시간 일찍 퇴근한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이 확보한 금호강 인근 CCTV에는 오전 5시 50분쯤 윤 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한 남성과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10분 후 CCTV에는 남성이 홀로 걸어 나오고 있는 장면이 담겼다.

남성은 곧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CCTV로는 남성의 얼굴을 판별할 수 없었다. 경찰은 알리바이가 확실한 윤 씨 지인들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지인들은 1초의 망설임 없이 '박 모 씨'를 지목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 범인 걸음걸이서 3가지 특이점…절친 박 씨와 일치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박 씨는 윤 씨의 죽마고우였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두 사람은 사건 2개월 전까지 함께 살았고, 동업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 비록 사업은 실패했지만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본인은 윤 씨 실종 당일 거창 집에 있었다고 진술했다. 통화 내역에는 오전 1시 50분과 오전 8시 50분 거창 집에서 통화한 기록이 확인됐다. 박 씨는 7시간의 공백에 대해서는 집에서 잠을 잤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박 씨가 거주하는 거창과 대구는 편도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5일 오전 1시부터 오전 9시까지 시간대에 거창 시내 전역에 있는 방범 CCTV에 찍힌 차 8000여 대 중에서 택시 한 대가 (대구에) 왔다가 (거창에) 간 사실을 확인했다.

택시 기사는 자신이 태웠던 손님을 똑똑히 기억했다. 손님은 "제가 목이 아파서 말을 못 한다. 대구 본리 네 거리까지 얼마 받습니까?"라고 적힌 메모를 보여줬다.

경찰은 택시에 올라탄 남성을 피의자 박 씨로 추정했다. 박 씨는 범인의 체형과 걸음걸이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누명을 썼다고 억울해했다. 하지만 얼굴이 나오지 않은 CCTV를 보고도 친구들은 택시에 오른 남성이 100% 박 씨일 것이라 직감했다. 기사가 진술한 손님 인상착의도 박 씨와 일치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경찰은 따로 촬영해 놓은 영상을 전문가에게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박 씨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흔히 O다리라 부르는 내반슬 보행과 걸을 때 발이 바깥 방향을 향하며 내딛는 팔자걸음인 외족지 보행, 걸을 때 좌측 다리가 회전을 그리면서 걷는 형태였다. CCTV에 찍힌 남성에게도 이 같은 특징이 동시에 확인됐다.

◇ 윤·박 씨, 3개월 전 '서로 수혜' 사망보험 동시 가입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3개월 전 두 사람이 4억 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사망보험에 동시에 가입했고 서로가 서로를 수혜자로 지정한 사실을 파악했다. 박 씨의 사망보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험료 미납으로 해약됐고, 윤 씨의 보험료는 박 씨가 계속 납부하고 있었던 걸로 확인됐다.

박 씨는 수천만 원의 빚이 있는 데다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고 있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경찰은 박 씨가 친구의 사망을 노리고 보험료를 납부한 것이라 봤지만, 어디까지나 정황 증거일 뿐이었다. 경찰은 CCTV 영상 외 박 씨가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물적 증거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박 씨를 체포한 후 증거가 있다며 압박했고, 결국 박 씨는 사건 당일 새벽 거창에서 택시를 타고 대구로 이동한 뒤 윤 씨를 죽였다고 자백했다.

◇ 현장 검증서 범행 정확히 묘사한 박 씨, 살인죄 기소

현장 검증에 나선 박 씨는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상황들을 정확히 묘사했다.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현수막도 모두 기억했다. 경찰은 박 씨를 살인죄로 기소했다.

2015년 11월 1심 재판이 열렸다. 당시 박 씨는 "제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나타난다면 그때는 정말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검찰은 박 씨가 범인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법보행 분석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세웠다. 전문가들은 독특한 걸음걸이 특성 3개가 한 사람에게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영상 속 남성과 박 씨가 같은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증거로 채택됐고 재판부는 박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 씨는 1심 이후 돌연 진술을 번복했다. 강압 수사로 자백을 강요받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것. 하지만 박 씨의 진술 과정이 담긴 녹취록에는 강압적인 수사 정황은 전혀 없었다. 급기야 박 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본인이 누명을 쓰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016년 5월 열린 항소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CCTV 분석 결과와 피고인 친구 진술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 범행이 명백하게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며 원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박 씨는 현재까지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ro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