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속 학습지 여교사 알몸 시신"…빨간 차, 같은 동네 여성만 더 노렸다
"집으로 간다" 강원 동해서 학습지 여교사 실종[사건 속 오늘]
3개월 새 40대 여성 2명 더 당할 뻔…범인 18년째 오리무중
- 소봄이 기자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06년 3월 14일, 강원도 동해시의 한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실종 신고된 학습지 여교사 김모 씨(당시 24)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사건은 6일 전인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후 9시 40분, 김 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당시 김 씨는 동해시 부곡동의 한 주택에서 학습지 가정방문 교육을 마치고 직장 상사에게 "집으로 갑니다"라고 통화한 뒤 귀가하다 연락이 끊겼다.
일주일 뒤, 동해시 심곡동 약천마을 이웃 주민이 갈증을 느껴 우물을 찾았다가 평소보다 물줄기가 약한 것이 이상해 뚜껑을 열고 깜짝 놀랐다. 우물에서 발견된 건 알몸으로 웅크린 여성 시신, 바로 김 씨였다.
김 씨의 머리카락 일부가 물이 나오는 파이프를 틀어막고 있어 물줄기가 약해진 것이다. 약천우물의 깊이는 60㎝밖에 되지 않아 성인 여성이 익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앞서 김 씨는 우물에서부터 6㎞ 떨어진 시내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됐고, 부검 결과 김 씨의 위장 내용물에는 마지막 수업을 한 학생의 어머니가 대접한 음식물이 고스란히 검출됐다. 실종 당일 살해된 살인사건이었다.
◇성폭행 실패하자 우물에 유기…흔적 없이 사라진 범인
김 씨의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였다. 김 씨는 음부 쪽에만 경미한 흔적이 있고 큰 외상 없이 알몸으로 발견된 것을 미루어봤을 때, 누군가가 그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한 뒤 살해하고 약천마을 우물에 유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시신 발견 다음 날, 김 씨의 차량 빨간색 마티즈는 동해체육관 앞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차 안에 실종 당일 김 씨가 입고 나간 옷과 소지품 일부가 나왔으나, 범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범인이 차량 내·외부를 물로 닦아 흔적을 없애 어떠한 단서도 추적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경찰이 즉시 이동 경로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자, 문제의 빨간 마티즈가 마을 인근 산불감시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러나 늦은 밤인 데다가 해상도가 떨어져 범인의 인상착의를 식별하기는 어려웠다.
아울러 시골이다 보니 목격자도 없어 수사는 난항에 빠지게 됐다. 이때 김 씨가 살해되고 석 달 쯤 흐른 2006년 6월 1일 밤,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빨간 마티즈 여성만 노렸나…"차 문 열고 들어와 폭행"
이번엔 부곡동 인근에서 40대 여성 B 씨가 자신의 승용차 타려고 했을 때, 낯선 남성이 밀고 들어오면서 B 씨를 폭행한 뒤 납치한 것이다. 남성은 반항하는 B 씨의 목을 졸랐고, B 씨가 축 늘어지자 사망했다고 판단해 승용차와 함께 도로변에 버리고 도주했다.
이곳은 김 씨의 시신이 발견된 약천마을 인근이었다. 김 씨 사건과 이번 사건의 범인이 동일범일 가능성이 컸지만, 이번에도 B 씨의 승용차에서 범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울러 B 씨도 한밤중 폭행당하고 정신을 잃은 탓에 범인의 인상착의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이를 미루어 보아 경찰은 B 씨가 아는 사람이었다면 확인 사살을 했을 거라고 판단, 범인은 B 씨와 일면식 없는 남성이라고 추정했다.
3주 뒤인 6월 23일 저녁, 유사한 사건이 재차 발생했다. 남편과 저녁을 먹고 함께 승용차를 타고 부곡동 아파트 집에 온 40대 여성 C 씨는 "친정 식구와 통화할 게 있다"면서 남편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이때 어떤 남성이 차 문을 확 열고 들어와서 C 씨를 마구 폭행했다. C 씨가 저항하며 소리 지르니까 남성은 재빨리 인근 골목으로 달아났다. 당시 같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던 현역 군인이 C 씨의 비명을 듣고 뛰쳐나와 범인을 추격했지만 놓쳤다.
경찰은 C 씨와 범인이 몸싸움을 벌인 승용차를 정밀 감식한 끝에 룸미러에 끼어있던 머리카락 한 올을 확보했다.
◇아파트 단지 안, 체구 작은 여성, 흉기는 없었다…범행 패턴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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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건은 범행 시간, 장소, 패턴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을 보였다. 먼저 김 씨를 비롯해 B 씨, C 씨 모두 빨간색 승용차를 타고 있었다. 범행 시기도 비슷했으며 시간대 역시 오후 8시~10시 사이였다.
장소 역시 부곡동 아파트 단지 안에서 발생했으며, 세 장소는 모두 반경 150m 안에 위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늦은 저녁 혼자서 승용차를 타려던 여성을 공격해 납치를 시도한 점 등이 동일했다.
또 피해 여성 모두 체구가 작았고, 범인은 별도의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 완력으로 여성들을 제압했다는 점도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것을 뒷받침했다.
경찰은 김 씨 살인사건과 관련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을 대상으로 머리카락에서 얻은 DNA 대조 작업을 벌였으나, 단 1건도 일치하는 사례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CCTV도, 블랙박스도 보편화되기 전 일어난 늦은 밤 범행으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면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천사 같은 선생님, 살인자 꼭 잡히길"
강원지방경찰청은 2019년 3월 이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브레인스토밍' 기법을 도입해 모든 의견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새로운 관점과 접근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미제 사건 전담수사팀부터 프로파일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관 등 20여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강원경찰청 측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범인이 잡혔다는 얘기는 괴소문이다. 현재도 수사를 진행 중이며 미제사건"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 누리꾼은 지난해 김 씨에 대해 "6세 때 학습지 선생님이셨다. 그 어릴 때에도 착한 마음이 느껴져서 제겐 천사 같은 존재였고 너무나 좋아했던 선생님"이라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제사건이라 마음이 아프다. 천사 같은 선생님을 앗아간 살인자가 꼭 잡히길 바란다"고 전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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