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개 좀 돌봐줘"…동네 아저씨 따라간 여학생 2명 토막 주검으로
호매실 나들목, 군자8교 부근서 시신 발견 [사건 속 오늘]
초등생 데려가 유사강간 추정…범인 PC에 아동성착취물 가득
- 김송이 기자
(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모르는 사람 절대 따라가면 안 돼."
으레 부모가 어린아이들을 교육할 때면 꼭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동 대상 범죄, 특히 성과 관련된 범죄는 면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세 4학년 이혜진 양과 8세 2학년 우예슬 양도 그랬다. 2007년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오후 4시께 안양문예회관 앞 CCTV에 두 아이가 야외 공연장을 지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회관 인근 시장 상인들은 이날 오후 5시께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봤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이 양과 우 양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 실종 77일 만에 발견된 토막 시신…드러난 연쇄 살인범의 흔적
2008년 3월 11일 오후 4시 45분쯤 수원 호매실 나들목 인근 야산에서 향토방위훈련 중이던 예비군 송 모 씨가 암매장된 여자아이의 토막 시신을 발견했다. 머리 부위의 긴 머리카락이 드러났던 것. 국립과학수사연구소 DNA 대조 결과 숨진 아이는 실종된 이 양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실종된 아이들의 집 주변에 사는 면식범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또 시신 유기에 차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렌터카 이용 기록에 대해서도 수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경찰은 이 양의 집과 불과 13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혼자 사는 대리운전기사 정성현(당시 38세)이 아이들 실종 당일 오후 안양 동안구 관양동의 한 렌터카 회사에서 차를 빌리고 다음날 반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크리스마스에 집에만 있었다" 오리발…시신 유기 장소 거짓 진술로 수사 방해도
경찰에 붙잡힌 정성현은 크리스마스 당일 집에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렌터카 이용 기록을 들이밀자, 정성현은 빌린 렌터카로 대리운전을 했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리운전 사무실을 통해 실종 당일 정성현이 출근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루미놀 시약으로 정성현의 집 화장실과 렌터카 트렁크에서 두 아이의 혈흔을 찾아냈다. 그렇게 경찰은 계속 오리발을 내밀던 정성현에게서 17일 오전 겨우 자백을 받아냈고, 경기 시흥 정왕동 군자8교에서 우 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정성현은 시신 유기 장소에 대해 여러 군데를 지목하며 끝까지 경찰 수사를 방해했다.
◇ "우리 집 강아지가 아파…너네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니?"
정성현은 아이들과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동네 이웃으로 인사 정도는 하고 지냈다. 범행 당일 담배를 사러나갔다가 아이들을 마주친 정성현은 동정심을 이용했다.
반려견이 아프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동네 아저씨를 아이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성현은 자신을 따라온 아이들의 입과 코를 막아 차례로 살해하고, 화장실에서 톱으로 시신을 훼손했다.
◇ '소아성기호증' 범죄자…첫 살인도 아니었다
경찰은 정성현이 아이들을 살해하기 전 유사강간을 시도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이 덮쳤을 때 정성현의 PC에서는 잔혹한 폭력, 고문, 살인 장면을 담은 '스너프 필름'이 약 70편 발견됐다. 또 700편 정도의 음란 동영상도 있었는데, 어린이 성폭행 관련 영상이 상당수였다.
정성현은 아이들을 살해하기 3년 전인 2004년에도 경기 군포시의 한 전화방을 통해 만난 40대 여성 정 모 씨를 살해했다. 당시에도 정성현은 아이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 씨의 시신을 훼손해 야산에 암매장했다.
정성현은 '화대 문제로 다툼을 하다 주먹으로 때렸는데 정 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망한 피해자의 진술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는 부분으로, 정성현은 여성에게 가학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폭력적으로 돌변했을 가능성도 크다.
◇ "대리운전 회사 일지 확인했더라면 안양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정성현은 정 씨 사건에서 '상해치사죄'를 적용받았다. 경찰은 피해자 정 씨와 마지막 통화를 했던 정성현의 행적에 대해 수사했으나, 당시 정성현은 대리운전 기사라는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가 허술했던 부분도 있다. 정성현은 정 씨에게 대리운전을 해줬기 때문에 통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때 경찰은 대리운전 회사에서 정성현의 자세한 운전 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이 정성현에게 거짓말 탐지기까지 사용해 '거짓' 반응을 얻어냈으나 더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한국범죄학연구소 김복준 연구위원은 매우 아쉬워하며 "정성현이 살인으로 기소됐다면 안양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004년 사건에 대한 성의 없는 수사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대해서는 경찰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반성은커녕…미집행 사형수로 복역하면서도 고소·고발 남발
정성현은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되자, 범행 당시 술과 본드를 해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변명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면수심의 정성현은 사형 선고에 항소했으나 2심과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정성현은 언론사들을 상대로 수차례 소송을 걸기도 했다. 자신은 성추행하지 않았고 범행은 우발적이었는데 기사에 '납치, 살해'라고 쓴 것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었다.
이후 정성현은 자신을 기소한 검사에게도, 담당 형사에게도, 국가를 상대로도 '묻지 마 소송'을 남발했다. 정성현은 이어지는 패소 판결에도 이제는 자신이 두 아이를 죽였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면서 아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syk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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