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밀어넣었다" vs "스스로 들어갔다"…동생은 죽고 형은 40억 챙겼다

6살 어린이 지능 동생, 왕숙천 데려가 수면제 먹인 형 [사건속 오늘]
살인 무죄, 유기치사죄 10년형…형이 고스란히 거액 상속 독차지

지적장애 2급 동생 익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살인죄로 기소한 40대 남성에 대해 법원은 '결정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 부모가 남긴 거액의 상속금 모두 형에게 돌아갔다. (JTBC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형사법의 대원칙 중 하나가 '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누가 봐도 범인인 듯하지만 결정적 증거 1%가 부족할 경우 '심정은 가나 물증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하곤 한다.

◇ 물에 빠뜨리는 장면만 없을 뿐, 이리저리 봐도 형이 동생을…

2023년 3월 8일 서울고검은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 씨(당시 46세)에 대해 '살인혐의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7부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사건 전후 정황만으로 A 씨의 살해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살인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0년형을 내린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A 씨가 지적장애 2급인 동생 B 씨(사망 당시 38세)를 두고 갈 경우 물에 빠질 수 있는 등 위험을 인식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B 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유기치사 혐의 등을 유죄로 판단, 징역 10년형을 내렸다.

반면 검찰은 "B 씨가 술과 수면제로 인해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진정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감정의견서가 있다"며 술과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B 씨 스스로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 A 씨가 고의로 동생을 강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상고 이유서를 작성했다.

◇ 6살 어린아이 수준의 지적 장애 2급 동생, 돌보던 형…부모 유산 탕진

서울 명동에서 큰 식당을 운영해 부를 축적한 A 씨의 부모는 34억 원의 유산을 A 씨와 B 씨에게 남긴 채 2017년 사망했다.

B 씨는 6~8세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IQ 35~40)을 가진 지적장애 2급으로 주위의 도움이 없으면 사회생활을 하기가 어려워 부모 사망 뒤 작은아버지가 후견인 노릇을 했다.

평소 동생을 돌봐왔던 A 씨는 부모가 숨지자 물 쓰듯 돈을 써 자기 몫의 유산을 거의 탕진하고 동생 몫까지 넘보려 했다. 이를 본 작은아버지는 조카 A 씨를 상대로 상속재산 분할 및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6월 28일 지적장애 2급 동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형의 신고에 따라 경찰은 '실종 전단'을 만들어 돌렸다. (SNS 갈무리) ⓒ 뉴스1

◇ 술 못하는 동생 데리고 구리 강가로 가 위스키 먹이고 수면제까지

2021년 6월 28일 새벽 2시 50분 A 씨는 "영화 보러 간다며 자전거를 타고 나간 동생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112에 실종 신고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착한 형의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강동대교 밑에서 B 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A 씨는 착한 형에서 '재산을 독차지하려 어린아이와 같은 동생을 죽인 나쁜 형'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동생이 집을 나간 후 보지 못했다'는 A 씨 말과 달리 6월 27일 저녁 내내 동네 마트 등에서 동생과 함께 있는 A 씨 모습이 CCTV에 담겼다.

또 시신 부검 결과 술을 못한다는 B 씨 몸에서 알코올 성분(혈중 알코올 농도 0.038%)과 함께 다량의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 수면제, 렌터카 구입한 뒤 동생과 한밤중에 구리 왕숙천으로

경찰 수사 결과 아는 이들을 이용해 다량의 수면제(라제팜)를 구입한 A 씨는 6월 17일 밤 렌터카에 B 씨를 태워 구리 왕숙천으로 갔다.

인적이 뜸한 곳까지 이동한 A 씨는 평소 술을 하지 못하는 동생에게 위스키를 먹여 몸을 가누지 못하게 한 뒤 새벽 1시 무렵, 수면제까지 먹였다.

이에 대해 A 씨는 '동생이 생떼를 부려 진정시키려 수면제를 먹였을 뿐'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경찰 수사 내용과 A 씨 말은 대체로 일치한다.

2021년 6월 29일 강동대교 부근에서 실종신고된 지적장애 30대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SBS 갈무리) ⓒ 뉴스1

◇ 경찰 '형이 동생을 물에 빠뜨렸다' vs 형 '동생이 잠들어 두고 왔을 뿐'

하지만 결정적 장면에선 경찰과 A 씨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경찰은 유산을 노린 A 씨가 동생에게 술과 수면제를 먹인 뒤 물속에 빠뜨려 살해했다고 한 반면 A 씨는 "잠든 동생을 흔들어 깨웠지만 일어날 생각을 안 해 두고 왔을 뿐이다"고 맞섰다.

검찰과 경찰은 △ A 씨가 6월 27일 밤 11시쯤 '콜라를 먹고 싶다'는 동생에게 콜라(500mL)와 위스키(200mL)를 얼음에 섞어 술을 주고 △ 6월 28일 새벽 1시 무렵 미리 준비한 수면제를 '약이다'고 속여 먹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뒤 △ 강으로 데려가 집어넣었다며 살인 혐의 등으로 A 씨를 구속기소 했다.

◇ 1심 살인 유죄 징역 30년→ 2심 '결정적 증거 없다' 살인 무죄→ 대법 살인 무죄 확정

2022년 7월 21일 1심은 A 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30년 형을 내렸다.

1심과 달리 2023년 1월 27일 항소심은 △ 정황 사실만 존재할 뿐 A 씨가 동생을 물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 A 씨가 잠든 동생을 유기하고 현장을 이탈한 후 동생이 어느 시점에 깨어나 실족 등으로 스스로 물에 빠졌을 가능성도 있다 △ A 씨에게 살인 동기나 범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동생을 두고 갈 경우 강물에 빠질 수 있음을 알고도 아무런 보호조치를 하지 않아 동생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은 인정된다"며 예비적 공소사실인 유기치사죄를 유죄로 보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6월 5일 대법원도 "2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살인죄 무죄, 유기치사죄 유죄를 확정했다.

지적장애 2급 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형. (SBS 갈무리) ⓒ 뉴스1

◇ 살인 상속 결격 사유, 유기치사 상속 가능…동생 몫 등 상속 34억 원, 사망보험금 3억 5000만원 모두 형에게

대법원이 '살인 무죄'를 확정함에 따라 A 씨는 부모가 남긴 상속 34억 원 전부와 동생 B 씨의 사망보험금 3억 5000만 원 등 40억 원에 이르는 돈을 모두 챙기게 됐다.

만약 A 씨에게 살인 혐의 유죄가 떨어졌다면 민법 규정(고의로 직계존속 또는 상속의 같은 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자, 고의로 직계존속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상속인 자격 상실)에 따라 A 씨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B 씨가 남긴 상속분은 A 씨가 아닌 작은 아버지 등 후순위 상속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유기치사죄는 민법상 상속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A 씨는 40억 원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해 A 씨 지인은 방송 인터뷰에서 "죽은 동생은 말이 없고 A 씨는 출소하고 나도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다"며 "10년만 살고 나오면 되기에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