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 바쳤는데 배신, 또 딴 여자와 관계…12세 연상 직장상사 살해한 여직원

근무 중 숨졌더라도 치정 살인은 '업무상 재해 아냐' [사건속 오늘]
근무 중 스토킹 男에 살해당한 간호사…대법 '업무상 재해' 판결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회사에서 근무 중 사망했을 경우 '업무상 재해'에 따른 장의비와 유족 보상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단서가 있다. 업무와 연관된 일을 하던 중 사망했을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다.

직장에서 일하던 중 사망했다면 대부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만 사적인 심부름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거나 사적 감정에 의한 불의의 습격 등으로 살해당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적 감정에는 불륜, 치정, 사랑, 흠모, 원한 등이 있다.

12년 전 오늘 그 대표적인 판결이 나왔다.

◇ 업무 중 사망했더라도 치정에 의한 살인은 '업무상 재해 아니다'

2012년 3월 2일 전주지법 행정부(재판장 김종춘)는 "치정에 의한 살인은 근무 중이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A 씨 유족이 'A 씨 죽음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불승인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모 기업체 상무 A(42) 씨는 2010년 6월 7일 회사에서 부하 여직원 B(30)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재판부는 "여직원이 살인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상사와 부하직원 간 업무상 갈등이 아닌 배신감과 수치심 등 사적인 감정이었다"며 회사 일이 아닌 사적 감정에 얽혀 살해당한 것이기에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며 보상금 지급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 손을 들어줬다.

◇ 12살 연상 직장 상사와 내연 관계…버림받자 흉기 휘둘러

B 씨는 2008년 5월부터 12살 연상 직장 상사인 A 씨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다.

그러던 중 2010년 3월 A 씨가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한 뒤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한편 또 다른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을 알게 되자 심한 배신감을 느껴 2010년 6월 7일 인근 마트에서 흉기를 구입했다.

이어 저녁 7시30분쯤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자 B 씨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근 뒤 A 씨에게 대화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흉기를 휘둘러 A 씨를 살해했다.

B 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 돼 징역 12년을 확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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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들 "인간관계에 따른 업무상 스트레스가 불러온 살인"

근로복지공단은 유족이 산재 보험금을 신청하자 "회사 일과 관련 없는 일로 일어난 사건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며 장의비와 유족 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반면 A 씨 유족들은 "살인 사건이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업무적 스트레스에 의해 빚어졌다"며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남녀 사이의 사적 감정에 의해 빚어진 일로 회사 업무와 관련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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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 받아주지 않는다' 男에 살해당한 간호사…1심 '업무상 재해'· 2심 '치정관계'· 대법 '재해 맞다'

사적 감정과 '업무상 재해' 놓고 법원도 이따금 엇갈린 판단을 한다.

그중 하나가 야간 당직 근무 중 스토킹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간호사 사건이다.

모 병원 간호사였던 C 씨는 2006년 5월 20일 야간당직 근무 중 강도 짓을 하기 위해 침입한 D 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입원 중 C 씨에게 반해 여러 차례 짝사랑을 고백했지만 C 씨가 만나주지 않아 앙심을 품었다'는 D 씨의 진술을 근거로 "C 씨 사망은 업무와 관계없는 개인적인 치정관계, 사적 감정에 얽힌 살인 사건이다"며 장의비와 유족 수당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자 C 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C 씨가 당직 근무 중 사망했기에 업무상 재해가 맞다"고 했지만 2심은 "사적 감정에 기인한 일로 근로와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며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2008년 8월 29일 "간호사가 외부 침입자에게 흉기에 찔려 숨진 건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실제 발생한 것"이라며 C 씨가 업무 중 사망한 것이 맞고, 일방적 짝사랑까지 치정관계로 보는 건 잘못이라고 파기환송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