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길어지면 힘없는 환자들만 고생…심장이 파르르 떨린다"(종합)

전공의 사직 나흘째 대학병원 현장…환자들 고통 커져
남은 의료진 피로 누적…"의사들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여"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4.2.23/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김민수 기자 = "일산과 파주 쪽 응급실에서 거절당해 결국 서울까지 왔어요."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30대 부부(파주 거주)는 전날 밤 딸의 골절상으로 응급실을 찾아 헤맸다면서 이같이 하소연했다.

이들은 "집 주변 병원 응급실의 경우 마비 상태"라며 "(세브란스) 의사들의 경우 회의를 통해 소아청소년과 환자는 웬만하면 진료를 보고 수술을 하는 쪽으로 합의했다고 하더라"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공의 집단 이탈 나흘째인 이날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사태의 여파를 여실히 체감 중이었다.

40대 딸이 최근 암 수술을 받았다는 60대 후반 남성 이 모 씨는 "수술은 지난 20일에 끝났고, 보통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에서 전공의가 없다면서 퇴원하라더라"고 토로했다.

강원도에서 거주 중인 이 씨는 "일주일에 월요일과 목요일, 2번을 치료받으러 딸을 데리고 서울까지 와야 한다"면서 "사태가 길어지면서 결국 힘없는 환자들만 더 고생하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어머니가 유방암 수술을 받고 퇴원을 앞두고 있다는 여성 A 씨는 현재 불편한 점은 없지만 "회진 때는 의사 선생님들이 협진이 잘 안된다고 말씀하시더라"며 "결국 사태가 길어지면 피해를 보는 건 환자"라고 우려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이른바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대형 병원에 가려던 환자들이 중소형 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응급 환자수도 30% 급증했다. 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2.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전문의와 전임의 등 나머지 의료 인력이 공백을 채우고 있지만, 환자들 사이에서는 사태가 길어질 경우 병원 운영이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는 분위기였다.

세브란스병원에 80대 남편을 데리고 온 여성 B 씨는 길어지고 있는 사태에 "심장이 파르르 떨린다"라고 분노했다.

B 씨는 "남편이 최근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고 당뇨도 있다"면서 "갑자기 또 남편이 쓰러졌는데 응급실에서 안 받아주면 어떡할지 걱정된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서울대병원에 자녀가 수술을 받고 입원 중인 70대 여성 C 씨는 "주치의 선생님이 지난 20일부터 안 보이고 대신 교수님이 매일 아침에 회진을 돌고 있더라"며 "많이 피곤해 보이시던데 마음이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흉부외과에서 아버지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박 모 씨(40)는 "(사태가 길어지면) 아무래도 보호자들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게 다 연봉 올려달라고 이러는 것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다.

응급실 앞에서 CT 검사를 위해 대기하던 한 남성 환자도 "의사들 속사정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보기엔 그냥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인다"고 비판했다.

다만 의사들은 집단행동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의료수가의 정상화로 건강보험료 재정 건전성을 해결하자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수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면서 "정부에서 수가를 조정하겠다는 것은 다른 과의 수가를 깎아서 필요한 과에 보전해 주겠다는 논리"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를 늘려서 급여가 낮아지더라도 수가가 그대로면 대학병원의 수익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며 "현재도 전공의와 전임의 월급도 겨우 주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2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로비에 의대정원 증원 규탄 포스터가 붙어 있다. 2024.2.23/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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