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전공의 '업무이탈' D-1…대체 왜 '집단 사표' 내나[이승환의 노캡]

"노동 환경 개선" 요구하면서 '의대 증원' 반발하는 모순
'살인적 노동 시간' 의사 1만 확충으로 해결하면 안 되나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의협 139차 상임위원회가 열린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관계자들이 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시의사회, 대전시의사회 등 11개 시·도 의사회가 각 지역에서 궐기대회를 진행한다. 2024.2.15/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아버지가 60대 중반에 간경화 판정을 받았을 때 필자는 취업준비생이었다. SGOT, SGPT, Y-GTP 등 간기능 관련 수치의 의미를 그때 알게 됐다. 아버지가 입원했던 A종합병원의 교수는 이 전문적인 수치들을 언급하며 "간이식을 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뭇잎처럼 메마르고 바삭거리는 목소리였다.

소중한 사람의 고비를 목격한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별의별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당시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중국에 가면 쉽게 간을 이식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방법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2~3분 말할 기회

아버지를 담당했던 교수와 2~3분 말할 기회가 생겼다. 교수는 미간을 다소 찌푸린 째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환자를 비행기에 태워 쳐들어가듯이 중국으로 가겠다고요?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지실 겁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 건강을 염려해 한 말이었을 것이다. 다만 "'저런 환자가 쳐들어간다'니 말씀이 지나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밤낮없는 간병에 지친 데다 취준생 처지라 내가 너무 예민해졌구나 생각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A병원에서 간이식 가능 사망자가 나왔고 아버지는 수술에 성공해 몇 해를 더 사시고 작고했다. 간이식 후 일상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의학의 기적 같은 힘을 실감했다.

기자 일을 시작한 후 의료계 취재원을 만난 적 있다. '의사와의 일화'를 털어놓자 그는 의료진의 근로 환경 문제를 지적했다.

"종합병원 의사들의 노동 시간을 한번 확인해 보세요. 매일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누적되니 자기도 모르게 '저런 환자' 같은 뾰족한 말을 하는 것이지요."

지난 2022년 3월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 가운데 30.4%가 주당 근무 시간이 80시간 이상이었다. 이른바 '레지던트'로 불리는 전공의의 한주 평균 근무시간도 2022년 기준 77.7시간이나 됐다.

정부가 주 69시간제를 도입하려 해도 젊은 세대의 반발로 해당 근무제를 철회하는 세상이다. 의사들의 노동 현실은 시대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 방법 없을까

누구나 알 만한, 최선의 방안이 있다. 인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경찰에서도, 정부 부처에서도, 필자가 몸담은 언론계에서도 인력의 업무 부담이 가중하면 "사람부터 늘려달라"고 아우성친다.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판단해 보면 어떨까. 정부는 2025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려 2035년까지 의사 1만 명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고령화 시대가 가속하는 상황에서 필수 의료 인력의 붕괴를 막겠다는 취지다.

의료계도 그간 의사 인력 부족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해 왔다. 의료 취약 지역은 의사가 더 모자란다. 2035년까지 1만 명을 확충해도 의사는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의사 확충은 "주 80시간 이상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해 달라"는 의료계의 요구와 대치하지 않는다. 소통과 논의를 통해 세부 내용을 잘 조정하면 인력 부족에 따른 의사들의 혹독한 근로 시간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의사들의 반론도 물론 살펴봐야 한다. 증원보다 인력의 효율적 배분 등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정부 안대로 의사를 대폭 늘려도 인력이 필수 의료 영역으로 유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의대 증원이 '집단 사직'을 불사하며 전공의들이 총력 투쟁할 일인가. 이들의 총력 투쟁에 "의사 부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를 전제로 돈을 더 벌겠다는 것"(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공의들은 주말 시위도 아닌 단체 업무 중단을 예고해 주요 병원들의 수술 일정이 밀리고 있다.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은 19일까지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 이후 근무를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죽음의 언저리에 있는 가족을 뜬눈으로 지켜보는 간병인들은 지금도 '별의별' 얘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단체 행동에 나선 의사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고 어떻게 파업을 하려 하느냐"는 호소를 말이다. 특권 의식에 빠져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의협 비대위)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를 솎아내기 위해서라도 병원에는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