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호날두조차…" 클린스만과 달랐던 '이 사람'[이승환의 노캡]

프랑스 축구 전설 지단은 무엇이 달랐나
명선수가 명감독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지네딘 지단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16일(현지시간) 마드리드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경기장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스타 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을 깬 사람은 지네딘 지단(52)이다. 알제리 출신에 프랑스 국적 소유자인 지단은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로 꼽힌다.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경기 조율 능력을 보여줬다. 현역 시절 지단은 프랑스를 1998년 월드컵 첫 우승으로, 2006년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감독' 지단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그는 스페인 프로축구팀 레알마드리드 감독이었다. 매년 열리는 챔피언스리그는 유럽 주요 프로리그 팀들이 출전해 최강팀을 가리는 대회로, 위상이 월드컵에 못지 않다. 챔피언스리그 연속 3회 우승을 일군 감독은 지단이 처음이었다.

◇천하의 호날두도 교체했던 지단

지단은 전술이 아닌 '팀 장악력'으로 승부하는 감독이었다. 그가 감독으로 있던 당시 레알마드리드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카림 벤제마·페페 등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다. 몸값이 국내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을 크게 웃돌고 콧대 높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선수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넘사벽'(높은 장벽) 같은 전설적인 현역 시절을 보낸 지단의 명성엔 눌릴 수밖에 없었다.

지단은 천하의 호날두조차 부진하면 경기 도중 예외 없이 교체해 벤치로 불러들였다. 승부욕이 강한 호날두는 교체되면 욕설을 하며 불편한 감정을 폭발하는 선수다. 지단은 "호날두가 경기를 계속 뛰고 싶어 하는 것을 알지만 다른 선수들도 생각해야 한다"며 "나는 언제든 그를 벤치로 불러들일 것"이라고 했다. 스타 선수 눈치를 보거나 편의를 봐줬던 레알마드리드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그는 '원칙'으로 선수들을 대했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2.8/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최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서 해임된 위르겐 클린스만(60)도 현역 시절 역대급 독일 공격수로 평가받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터닝슛'으로 한국팀 골망을 가른 클린스만의 활약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하고 있다.

선수시절 명성과 위상만 놓고 보면 그간의 한국 국가대표 감독들 가운데 클린스만을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개성 강한 어린 선수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축구협회가 클린스만을 선임하는 데 이런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결과는 '지단 감독 효과'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클린스만은 원칙으로 스타 선수를 대하기보다 그들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해줘 축구' 논란이 대표적이다. 손흥민, 이강인 등 슈퍼스타에게 승리할 수 있게 '경기를 알아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전술이나 팀 장악력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지난 아시안컵 때는 간판 선수인 이강인이 자신보다 9살 많은 주장 손흥민을 들이박는 '하극상' 논란까지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팀 고참들이 선발 출전 명단에서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클린스만은 듣지 않았다고 한다.

◇'싸가지 없는' 유능한 직원 교체 준비 됐는가

클린스만 감독 체제의 한국 국가대표팀은 지난 7일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유효 슈팅 한 번 날리지 못하고 0-2으로 참패했다. 상대는 국제축구연맹 순위 87위로 한국보다 64위 아래인 요르단이었다. 아시안컵 직전만 해도 역대 최강 전력으로 불렸던 한국팀이었다.

지단의 사례와 달리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속설이 입증된 요르단전이었다. 스타 선수 출신들이 훌륭한 감독이 되기 어려운 것은 역량이 평범하거나 부족한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떼'를 떠올리며 '왜 저것밖에 못 하지'라고 혀를 차다가 유능한 선수만 중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는 팀워크의 붕괴다. 요르단전 참패는 합리적이고 당연한 귀결이었다.

스포츠계뿐 아니라 산업계와 공직사회, 언론계에도 '일은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직원'이란 말이 있다. 이들은 단기성과를 내기는 하지만 오만 불손한 태도로 팀워크와 시스템을 흔들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앞으로 선임될 차기 국가대표 감독은, 사회 각 분야에 자리 잡은 리더들은 유능하더라도 팀워크를 위협하는 선수 또는 직원을 교체할 준비가 돼 있는가? 지단이 그랬던 것처럼 '능력이 출중한 직원 외 다른 직원들도 생각'해야 진정한 리더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