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반려 없이 바로 수리" 상사에 악감정…산골 노모 찾아 빗나간 복수

살해 후 4년여간 수사 실마리 못찾고 제자리 걸음 [사건속 오늘]
노모집서 발견된 편지 7통…우표 침 DNA, 용의자 대조끝 검거

ⓒ 뉴스1 DB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DNA 검사는 신뢰성 99.9999%에 이르는 과학수사의 꽃이다.

DNA 검사 결과 전혀 다른 두사람의 DNA가 같은 확률은 4.7조분의 1로, 지문이 같을 확률 870억분의 1보다 훨씬 낮다. 즉 DNA 검사가 '홍길동'이라며 '홍길동'으로 불러야 한다.

DNA 수사는 사람의 침, 머리카락, 손톱, 피부 각질, 점막 등에 들어 있는 DNA 정보를 찾아 동일인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DNA 수사로 인해 덜미를 잡힌 사람이 있다. 자신의 침이 아니라 풀을 구입해 우표를 붙였다면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었다.

◇ 강원도 화천 산골에 홀로 있던 노파를 찾아 아들 일 따졌다가 그만

2007년 10월 24일 밤 육군 0사단 00연대 본부가 있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OO리 A씨(여·당시 77세)집에 조모씨(당시 59세)가 찾아왔다.

조씨는 A씨에게 아들 B씨 행방을 물었지만 '없다'는 소리를 듣자 "내가 당신 아들로 인해 얼마나 억울한 삶을 살았는지 아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A씨가 '왜 내게 이러느냐'며 황당한 표정을 짓자 조씨는 '당신마저 이러느냐'며 격분, 주방에 있던 냄비로 머리를 가격하는 한편 집 주위에 있던 돌을 들고 와 얼굴을 가격,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한 뒤 빠져나갔다.

그날 늦은 밤 자식들은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이웃에게 안부를 물었고 이웃은 '불이 켜져 있다'며 안심시켰다.

할머니의 시신은 사건 다음 날인 10월 25일 맡겨뒀던 열쇠를 찾으려 온 심마니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은 CCTV가 있을 리 만무한 화천에서 일어난 사건인지라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다.

◇ 원한, 단순 강도 등을 놓고 수사하던 중 4년 3개월만에 드디어

경찰은 단순 강도와 원한에 얽힌 살인 등 여러 갈래로 수사를 펼졌지만 윤곽조차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강원경찰청이 2011년 11월 28일 미제사건 전담팀을 편성, 원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A씨 주변을 살피던 중 죽은 A씨 앞으로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월 사이에 온 7통의 편지에 주목했다.

아들 B씨(2012년 당시 65세)의 동의를 얻어 편지를 개봉한 결과 편지 안에는 군 관련 용어가 들어 있어 군 관계자임을 직감한 경찰은 '혹시 군 재직시절 원한 산 일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아들 B씨는 조씨의 일을 떠 올렸다.

경찰은 편지에 남아 있던 쪽지문과 함께 침으로 우표를 붙인 사실을 파악, 유전자 검사(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국과수가 침 속 DNA가 조씨의 것이라는 통보를 해 오자 경찰은 2012년 2월 15일 조씨를 자택에서 검거, 강원경찰청 강력계로 압송했다.

조씨는 "저녁식사를 함께한 뒤 나왔을 뿐이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이 DNA 분석 결과를 내밀자 2월 16일 '내가 그랬소'라고 자백했다.

◇ 1993년 1월 문책성 인사에 불만 사표 내는 척했는데 수리하자 원한

강원도 모 부대 상사로 있던 조씨는 1993년 1월 부대 지휘관 B씨가 업무와 관련해 문책성 인사를 했다고 생각, 이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던졌다.

내심 B씨가 달래면서 붙잡을 줄 알았는데 수리해 버리자 분노한 조씨는 '반드시 복수하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군복을 벗었다.

지나친 복수심에 사로잡힌 조씨는 과대망상증 등으로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나 '복수의 불꽃'만은 더욱 불태우면서 10여년에 걸쳐 B씨의 거처를 수소문했다.

결국 B씨의 주소가 강원도 화천읍 OO리라는 사실을 확인, 찾아갔다가 엉뚱하게 모친에게 화풀이했다.

◇ 1심 징역 10년, 2심 징역 7년과 치료감호

살인 및 사자명예훼손,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씨에 대해 2012년 9월 14일 1심은 징역 10년형에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하지만 2013년 1월 16일 항소심 재판부는 조씨 측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여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 사유를 적용하면 조씨 형량은 징역 2년 6월 이상 7년 6월이 적당하다"며 징역 7년 형으로 감형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