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후속대책' 1년…재난인력 체계 개선은 '숙제'

[국가재난안전시스템 개편-下]"과도한 책임 완화해야"
재난 일반직은 1년 내 떠나고, 전문직은 퇴직

서울 마포구 CCTV통합관제센터 통합관제실.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정부가 10·29 이태원 참사의 후속 대책격으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범정부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현장 대응을 위한 재난안전상황실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성과도 있었지만 과도한 책임에 따른 '기피 현상' 해소 등 근본적인 재난안전 인력 체계 개선은 과제로 남았다.

3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재난 '현장 대응'을 위한 핵심 조직인 재난안전상황실은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0곳(48%)에 설치됐다. 지난해 1월 49곳 대비 2.2배 증가한 수치다.

정부는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에 따라 전국 모든 시·군·구에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하기 위해 재난안전 전담 인력을 늘리고 있다.

재난안전상황실은 24시간 재난 전담 인력체제로 돌아가는 상황실이다. 이태원 참사 전에도 일선 시·군·구 상황실은 24시간 돌아갔지만 야간에는 일반직 공무원 등 당직자가 역할을 겸해 전문성 부족이 지적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통합활용정원제'를 적용해 지자체가 매년 공무원 정원의 1%를 감축해 수요가 높은 직무에 재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필요성이 낮아진 코로나19 조직을 축소해 재난안전 분야에 재배치하는 식이다.

또 재난안전 근무 경력에 대한 승진 가산점을 의무화하고 재난안전 업무자에 대한 월 8만원의 특수업무수당을 신설하는 등 공무원들을 유인하기 위한 '파격적인' 특전들을 도입했다.

그러나 현장 실무자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혜택들로는 근본적으로 재난안전 분야 '기피' 현상을 해소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재난인력의 평균 근무 기간을 늘려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과도한 책임의 완화가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안전 분야는 사고 때마다 과중한 책임이 부과되는 게 구조적 문제의 핵심"이라며 "이들은 정말 본인의 고의적 실수나 업무 실수가 없을 때도 인명사고가 났다는 사실만으로 과도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갖고 경찰 조사에 불려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재 전문직 채용을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들도 '이럴 바에야'라는 생각으로 결국 일반 직렬로 옮겨간다"며 "과도한 책임이라는 근본적 문제의 해소 없이는 재난안전 인력의 전문성 부족을 해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난안전상황실은 보직을 옮겨다니는 일반직렬 공무원과 방재·안전 부서 근무만 하도록 선발된 '방재 전문직'으로 구성된다. 방재 전문직은 단기간 내 퇴직하고 일반직은 부서를 떠나는 '기피 현상'이 문제로 거론돼왔다.

실제로 행안부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시·군·구는 103명의 방재 안전직을 신규 채용했으나 그 절반에 가까운 43명(신규·기존 포함)이 같은 해 조직을 떠나 '출혈'이 컸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도 "자연 재난은 추위, 더위, 비, 눈 등 사실상 일년 내내 계속되는 것이고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게 되지만 한 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실무자가 진다"며 "재난안전 부서는 오래 남을수록 연금·퇴직금이 언제 반토막이 될 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마저 드는 곳이라 수당과 휴가를 늘리는 수준의 조치는 의미가 없다"고 책임 완화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재난안전 분야 공무원은 인명 사고 등에 있어 과실이 인정될 경우 연금이나 퇴직금을 깎이고 '불명예 퇴직'하게 된다.

한 지자체 재난상황실장 A씨는 "우리끼리 '이 자리는 문제 생겼을 때 책임지고 옷 벗기 위해 오라고 하는 자리 같다'는 말까지 한다"고 털어놨다.

전국에 재난안전상황실이 구축돼도 현재의 방재 전문직 비율로는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재 전문직은 경찰과 소방만큼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어 오랜 업무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재난안전 조직에서 일반직렬 공무원은 모두 빼고 그 자리를 방재직으로 채우는 게 낫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박중배 대변인은 "지난해 오송 참사를 예로 들면 청주시 전체에서 관련 분야 방재 전문직이 1명이었다"며 "말하자면 전화를 받고 보고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두뇌'는 하나고 그 외 직원들은 현장 보고를 하는 것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더 강력하게 지자체에 재난안전 인력 확보를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광역지자체 상황실 관계자는 "현재의 인센티브 방식 통합활용정원제에서는 선출직인 지자체장이 주력 사업을 두고 재난에 인력을 투입할 동기가 크지 않다"며 "정부에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거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서 최소한 정원의 몇 %는 안전관리 인력으로 하라는 식으로 확실하게 규정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특별교부세 배분시 반영 등 인센티브를 앞세워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인력 체계를 조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alicemunr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