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국민 '열에 아홉' 찬성…의사들 '결사 반대' 왜?[리뷰1]
의대 증원 발표 '초읽기'…의료계 반발 집단행동 예고
"고령화 등 의사 수 부족"…"숫자 아닌 배분의 문제"
- 유민주 기자,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박동해 기자 = "89.3% vs 86%"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다. 국민 10명중 9명은 '찬성'을 선택했고, 전공의 86%는 의대 정원 확대 시 집단행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르면 오는 1일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가 발표될 예정이지만 간극을 여전히 좁히지 못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의대 정원 확대를 의사들은 왜 이처럼 반대하는 것일까. 좀처럼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의대 정원 확대' 논쟁의 쟁점을 짚어보며 양측 주장을 점검해 봤다.
◇의대 정원 얼마나 늘리나…"고령화 등으로 의사 부족" vs "인구 감소, 지금 수준 충분"
2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정부와 의협 간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은 크게 2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은 현재 3058명으로 18년째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당시 3507명(정원 3253명·정원 외 140명·학사편입 114명)이던 의대 정원을 10% 감축해 2006년 3058명으로 줄였다.
당시 약사에 조제권을 넘겨주며 수익이 줄어든 것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요구를 정부가 들어준 것이다. 또 의협이 2006년 발간한 '주요 국가의 의사수급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의사인력 증가율을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의 증가율은 126%로, 미국 29%, 영국 57%, 일본 27% 등을 크게 앞질렀다. 명분이 있었던 셈이다.
이후 정부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의료계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유보됐다. 2012년 이명박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는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했지만 의사 단체들의 협조를 받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는 연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려 했지만 의사들의 총파업으로 무산됐다.
정부는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의사 인력 부족을 체감하면서 중증·필수진료과목 의사 양성 계획과 공공의대 등을 검토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 진행된 의료계 총파업으로 확대 논의는 중단됐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가 맺은 '9.4 의정 합의'에 따라 향후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회의를 이어가기로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앞으로 의사가 얼마나 더 필요한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의 권정현 박사는 저출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2만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 배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의 5%를 증원해야 2050년까지 필요한 의사 인력이 배출된다고 분석했다.
복지부가 의뢰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을 때 2030년 1만4334명, 2035년엔 2만7232명의 의사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
반면 의료계는 국내 의사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인구 감소 추이와 의사 증가율을 고려할 때 2047년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한편 의료계 일각에선 소폭 증원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9일 의대학장과 의전원장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입장문을 내고 "총증원 규모는 의학 교육 질 저하를 막고 교육 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2025학년도 입학 정원에 반영할 수 있는 증원 규모는 40개 의과대학에서 350명 수준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 '의사 부족' 문제 본질 따로 있다…피안성·정재영 '쏠림' 해결로 풀어야
또 다른 쟁점은 '어떻게 늘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현재 의협 측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필수·지역의료 확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한다. 단순히 의사 숫자를 늘릴 고민을 하기 전에 현재 의사들이 왜 필수·지역의료 분야를 기피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의대생들은 전공을 선택할 때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영상의학과·재활의학과)으로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에 의협은 현재 정원 안에서 의사를 비인기 진료과와 지방으로 유인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의대 교육과정이나 전공의 수련체계에서 의사를 지역이나 필수 진료 과목으로 유도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명 '지역의사제'는 비수도권 지역의 인재가 해당 지역 의대에 입학하고 졸업 후 그 지역 의료에 종사하는 선순환 구조를 의무화한 내용이다.
지난 2020년 7월 발의된 '지역 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에 따르면 기존 의대에서 지역의사 선발 전형을 따로 만들어 학생을 선발하고 국가가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지역 의료시설에 의무복무 해야 하는 기간을 10년으로 정했다.
이와 더불어 늘어난 의사가 개원가로 빠지지 않게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람의 노동력이 더 필요한 일부 과목에 대한 대가(수가)를 높이면 탈출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의료계 측에서는 이마저도 비현실적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현재 의료 비용은 '행위별 수가제'로 계산된다. 진료, 검사, 수술 등 의사들이 제공하는 행위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 건강보험에서 지불하는 제도다. 고된 근무 환경을 지닌 필수과의 수가를 올려 해당 과목 의사들의 이탈을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적이기에 전공 간의 양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의협 측은 정부가 필수과 지원 명목으로 특정 수가를 인상해도 결국 수가가 오른 대형병원 전문의가 개원가로 또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일부 필수과 의료진들은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 인상에 지금처럼 개원의를 포함하는 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의대 정원 확대 '핵심' 아니다…복지부 "필수·지역의료 확충" 대책 일부
정부는 의대 증원 문제가 을 위한 여러 정책 중에 한 부분일 뿐인데 의사 단체의 반발로 해당 이슈에 여론이 주목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의료 현장 개선을 위한 여러 정책을 묶어서 추진할 계획인데 의대 증원 문제에 의사 단체가 격렬히 반대하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됐다는 것이다 .
실제 복지부는 의료사고 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 필수의료 분야 집중적인 수가 보상, 전공의 근무 여건 개선 등을 담은 '정책 패키지'를 마련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르면 내달 1일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초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때 의대 정원 확대안도 함께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정부는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 부실화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 중이다. 복지부는 의학교육 점검반을 운영해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인지도 조사와 함께 국립대병원 육성, 보건의료 R&D(연구개발) 지원 등을 통해 역량 있는 교수 증원을 지원하고 평가인증 강화를 통해서 의학 교육의 질을 관리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정책 패키지와 함께 의대 정원 확대가 발표되면 의협 등의 의사 단체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의대 증원 정원 문제를 의사 단체와 반드시 합의해야만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가 정책 추진에 있어 특정 단체와 반드시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법적 근거도 없을뿐더러 이미 오랫동안 의료계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사 단체 등이 파업 등 집단행동에 나설 경우 대응할 예정이다. 실제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다면 정부는 업무복귀 명령을 발령하고 불응할 시 징계 및 사법처리 등의 조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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