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휴대전화 보면 1시간 '순삭'"…쾌락 호르몬 '도파민'의 덫

'도파민' 수집하는 신조어 '도파밍' 뭐기에…'숏폼' 시청 대표적
전문가 "자극 한 번 느끼면 더 큰 자극 원해…과하면 우울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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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서상혁 홍유진 기자 = 직장인 김모씨(33)는 최근 '루틴'(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이 하나 생겼다. 퇴근할 때 인스타그램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하고, 다음 날 출근할 때 다시 설치하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게 이뤄지는 '도파밍'에서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김씨는 "낮에는 업무 때문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해야 하니 출근할 때 설치하고, 집에서는 보지 않기 위해 퇴근 때 삭제한다"고 설명했다.

도파밍은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도파민'과 수집한다는 뜻의 영문자 '파밍(Farming)'을 합친 신조어다. 도파민은 이전보다 강한 자극 또는 기존의 패턴과 다른 새로운 자극이 들어올 때 더 많이 분비된다.

김씨는 퇴근 후 집에서 쉬던 중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1시간 이상 보다가 '도파밍'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다양한 영상과 글을 금방 볼 수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씻는 것도 잊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하던 게 '도파밍'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 '도파밍'을 올해 주요 열쇠말로 다뤘다. 실제로 'MZ세대'(1980년대~2000년 초반 출생자) 사이에서 도파밍이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과도한 도파밍은 우울증 같은 신경정신 질환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표적인 도파밍은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 짧은 영상을 포함한 '숏폼'(길이가 짧은 콘텐츠)을 찾는 행위다. 분량이 짧고 자신의 성향에 맞는 영상이 줄지어 재상돼 시청하는 식이다. 짧은 시간 새로운 자극에 노출되는 만큼, 도파민이 다량 생성된다고 한다. 한번 숏폼을 보기 시작하면 좀처럼 끊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TV를 보면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멀티태스킹'도 새로운 자극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도파밍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파밍이 '중독' 현상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도파민 중독'에 대한 의학적 정의는 존재하진 않지만, 계속해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만큼 중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이라는 건 계속 갈구한다는 의미인데, 도파민이 분비되면 전에 느꼈던 쾌락을 다시 얻으려 한다"며 "유튜브 쇼츠에 빠지는 것도 짧은 시간에 도파민이 다량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파민은 설탕 등 음식을 섭취했을 때도 분비된다. 단 음식을 먹는 행위도 일종의 도파밍인 셈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을 투약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최모씨(30·여)는 "식사 이후 바나나와 요거트, 과자를 계속 먹는 날이 있다"며 "의식하고 먹은 건 아닌데 계속 손이 갔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33)도 "탕후루를 집에서 만들어 먹을 정도로 중독 상태"라며 "과일을 보면 전부 탕후루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호기심이 드는데, 조만간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했다.

모든 중독 현상이 그렇듯 도파민도 장기간 지속하면 좋지 않다. 도파민이 과하게 분비되면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신경정신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집중력이 저하되거나 기억력 감퇴도 나타난다.

이금선 삼육대 대학원 중독과학과 교수는 "우리 몸에는 내성이 있어, 한 번 자극을 느끼면 다음에 더 큰 자극을 원한다"며 "도파민을 계속해서 많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뇌세포가 죽게 되는 것"이라고 경조했다.

이 교수는 "예컨대 전날 게임을 10시간 했다면 그다음 날에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식으로 '디톡스(해독)'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