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비계 논란' 끝낼 수 있을까…"바람직하다" vs "가격 오를 수도"

"삼겹살 1㎝ 이하, 오겹살 1.5㎝ 이하" 정부 권고 소비자들 '환영'
비곗덩어리 삼겹살 개선 필요"…"소비자 취향 다양한데 굳이" 의견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삼겹살. 2024.1.9/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맨 위에만 좋은 고기를 넣고 아래에는 전부 비계였다. 이런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심모씨(33·여)는 정부의 '삼겹살 비계 매뉴얼'에 대해 이같은 평가를 내놨다. 그는 "작년 겨울에 친구들과 서울 근교에 있는 펜션에 놀러가면서 마트에서 팩으로 포장된 삼겹살을 샀는데 맨 위에 보이는 부분 외에는 전부 비계였다"며 "거의 3분의 2는 버렸는데 당시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비곗덩어리 삼겹살 유통을 막기 위해 '삼겹살 비계' 정부 매뉴얼을 재배포하면서 해묵은 비계 논쟁이 종식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매뉴얼에 따르면 '일반 삼겹살은 1㎝ 이하, 오겹살은 1.5㎝ 이하'로 비계를 손질해야 한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제공된 삼겹살이 대부분 비계로 이뤄져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자 정부가 매뉴얼을 재배포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해 3월3일 '삼겹살데이' 즈음 대대적인 돼지고기 할인 행사로 비계가 많은 삼겹살이 대량 유통되면서 6월에 축산업계에 매뉴얼을 1차로 배포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비곗덩어리 삼겹살에 '충격'…"구웠는데 기름만 남아"

1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소포장된 삼겹살을 구매했다가 과다한 비계 때문에 '낭패'를 봤다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삼겹살 비계 규제를 담은 정부 매뉴얼을 환영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김모씨(36·남)는 "작년 4월 '1등급 한돈'이라는 돼지고기를 마트에서 샀는데 지방이 절반이라 구워보니 기름만 남았던 적이 있다"며 "1등급 판정 기준을 보니 '지방이 적당한 것'이라고 돼 있어 모호했는데, 지켜야 할 수치가 생긴 게 다행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 매뉴얼이 배포되고 이틀이 지난 11일 대형마트를 찾아 삼겹살 매뉴얼이 지켜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봤다. 영등포구 소재 한 대형마트를 찾아 매대를 살펴보니 대다수 상품들은 양호한 수준으로 보였다. 2~3㎝ 수준으로 '매뉴얼'에 부합하지 않는 비계가 포함된 삼겹살이 일부 있었다.

신길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임현상씨(54·남)는 "작년에 뉴스가 나온 후로 (삼겹살 품질이) 많이 개선됐다"며 "예전에는 비계 부분이 큰 고기가 많았고 특히 세일할 때는 더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문래동에 거주하는 주부 박정옥씨(64·여)도 "마트에서 파는 고기가 요새 괜찮은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일부 비계가 조금 더 포함된 삼겹살에도 "이 정도 비계 없는 삼겹살이 어디 있느냐"며 후한 점수를 줬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 있는 삼겹살 /2024.1.11. ⓒ 뉴스1 박혜연 기자

◇ 삼겹살 또 오르면 어쩌지?…정육업계도 필요성 '인정'

다만 비계가 적어져 상품화할 수 있는 돼지고기양이 줄어들면 삼겹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소비자 취향이 다양한데 정부 매뉴얼이 상품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문도 제기됐다.

아이 셋을 먹일 고기를 사러 나왔다는 40대 가장 안모씨는 "특정 부위만 봤을 때는 비계가 조금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삼겹살 자체가 원래 지방이 조금 있어야 식감이 좋다"며 "쫄깃쫄깃한 살코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목살을 사면 된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런 비계 부위를 항정살이라고도 하는데 다 억지로 걷어내고 판매하면 결국 팔 수 있는 부위는 적어진다"며 "그러면 단가가 올라갈 테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겹살이 비싸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육업계나 육류 요식업계 일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과지방 삼겹살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자정 작용이 이뤄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60대 여성 A씨는 "비계를 잘라내게 하는 데 동의한다. 그래야 손님도 안심하고 찾는다"며 "저는 지방이 적당하고 식감이 좋은 70~80근 정도 어린 돼지 위주로 구입한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40대 남성 B씨는 "요새 건강에 신경 쓰는 손님이 많다보니 지방이 적은 삼겹살이 잘 팔린다"며 "정부가 그런 매뉴얼을 내놓았다는 건 알고 있었고 딱히 지키려는 건 아니지만 이미 저희는 그만큼 잘라내고 팔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영업에 다소 부담이 된다는 불만도 나왔다. 영등포구 소재 정육점 사장 C씨는 "왜 정부에서 이런 것까지 일일이 참견하느냐"며 "비계가 있으니까 삼겹살인 건데 이런 식으로 규제해서 가격이 올라가면 그땐 손님들이 비싸다고 불평할 것이 아닌가"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도 업계 사정을 고려해 '상품성에 손상이 없는 수준에서 지방 정선을 진행'하도록 매뉴얼에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소지가 다분하다. 소비자 측이 매뉴얼 기준을 들어 '왜 지방이 1㎝가 넘느냐'고 항의하면 판매자로서는 입장이 군색할 수밖에 없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매뉴얼이나 지침이 나오면 시장에 일정한 기준이 돼서 비계가 많은 삼겹살은 시장에 잘 안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매뉴얼이 나왔다는 건 한 단계 발전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다만 권고된 비계 부위 기준(1~1.5㎝)이 적정하느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제재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축산시장의 모습. 2023.12.1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 축평원, 삼겹살 부위별 특성정보 제공 검토…시범 행사서 만족도 높아

이번 매뉴얼은 가공업체들의 기준을 참고했다. 이왕열 축산물품질평가원(축평원) 소비지원본부 품질평가처 팀장은 "비계 1~1.5㎝ 기준은 이미 규모가 어느 정도 큰 브랜드 가공업체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는 자체 관리기준을 참작해서 마련한 것"이라며 "삼겹살 지방이 많고 적음은 소비자 기호가 원체 다양해서 일률적 기준으로 책정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축평원은 소비자가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삼겹살 부위별로 지방 특성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13~17일 농협 하나로마트 2개 지점(논산점, 계룡점)에서 축평원은 소비자 661명에게 삼겹살 부위별 지방 특성 정보를 제공하고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서는 척추뼈 위치의 구간에 따라 △가슴삼겹살 △배삼겹살 △허리삼겹살로 삼겹살을 분류해 각각의 지방 함유 정보를 표기했다. 보통 지방 함유량은 배삼겹살이 많고 허리삼겹살은 다소 적은 편이다. 여러 부위를 적절히 혼합해 판매하는 △혼합삼겹살도 따로 제공됐다.

만족도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9.4%(591명)가 "삼겹살 구입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들은 지방 정보가 제공된 삼겹살 100g당 50~300원 정도의 추가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팀장은 "지금까지는 지방이 많고 적은 부위를 골고루 섞어서 소포장 판매됐는데 삼겹살 부위별 지방 함량 정보를 판매 단계에서부터 제공하면 구매 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다"며 "업체들도 상대적으로 지방이 많은 부위를 그냥 버리기보다 그런 부위를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