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 살릴 수 있을까요?"…'식집사' 구세주 반려식물병원 3040 최다

"자라는 과정서 감동·보람 느껴…지친 일상에 힐링"

1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반려식물병원을 찾은 A씨(27·여)의 파키라가 접수대 위에 올려졌다. ⓒ News1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이 친구 살 수 있을까요 선생님?"

지난 1일 서울 서초구의 반려식물병원 진료실에 만난 A씨(27·여)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깊은 한숨부터 쉬던 A씨는 자신이 데려온 '파키라'가 살 가망이 있는지 먼저 물었다.

A씨는 반려식물 '파키라'를 6개월 전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정성을 다했지만 "잎이 계속 누렇고 줄기가 힘없이 처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점점 막막해졌다"며 병원을 찾았다.

흰 가운을 입고 등장한 '의사 선생님' 주재천 식물병원장은 상담실 구석의 포대자루를 끌고 오더니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뿌리 상태를 살폈다. '겉'만 보고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병명은 과습으로 인한 생리 장애. 세균병으로 썩기 전 제때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A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주 원장은 "대부분의 식집사들이 여름에는 목마를까봐 물을 많이 주고, 겨울에는 건조해서 또 많이 물을 주다보니 과습으로 썩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겨울에 이미 잎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같은 양의 물을 주면 필요 이상을 주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물은 어떻게 줘야 적당할까. 주 원장은 "집집마다 키우는 환경이 다르다보니 같은 종류의 식물이라도 직접 흙에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를 넣어서 건조함에 따라 물을 주는 것이 좋다"며 "지금 파키라의 경우 화분도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식집사'는 A씨처럼 식물을 돌보며 애정을 쏟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코로나19 이후 반려식물 인구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화훼소비액은 2021년보다 11.1% 증가한 1만3764원을 기록해 3년 연속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2021년 시민 726명을 대상으로 식물 기르기에 대한 인식과 효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 대부분은 식물 기르기를 통해 공간이 아름답고 화사해지는 기분이 들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는 효과에 공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A씨가 반려식물병원 온실에서 분갈이 교육을 듣는 모습. ⓒ News1

◇상담 의뢰 건수 79%는 40대 이하…"식물보며 기분 환기"

지난 8개월간 이곳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상담 등 비대면 진료를 요청한 건수의 79%는 40대 이하의 식집사들이다. 전체 중 30대는 34%, 20대가 19%를 차지했다.

데스크에서 접수 업무를 맡은 B씨는 "씨앗부터 사서 키워오는 분들은 아무래도 애정이 남다르다"며 "강낭콩을 키우다 상태가 안좋아서 진료를 받았는데 '사망 선고'를 받고는 우는 청년도 있었는데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처음엔 4050분들이 많이 찾아주실 줄 알았는데 2030 청년들이 훨씬 많다"며 "식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식물병원 따르면 식집사들의 상담 요청은 의외로 봄에 가장 많았다. 주 원장은 겨울철 잘못된 관리로 상태가 심각해진 식물이 늘어났던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시 반려식물병원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개장 이후 월별 상담 건수는 △4월 212건 △5월 270건 △6월 231건 △7월 237건 △8월 176건 △9월 250건 △10월 175건 △11월 197건이다. 봄이 가장 많았고 여름도 주춤해지다가 날이 추워지면서 주춤해지는 추세다.

이에 대해 주 원장은 "아무래도 집마다 습기와 온도가 다르다 보니 사실 키우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며 "식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초보 집사들이라면 특히 추위에 취약한 식물들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진단을 받고 꾸준히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진료 이후 병원을 더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다는 A씨는 "몰랐으면 썩어 죽을 때까지 같은 화분에 키우고 있었을텐데 지금이라도 정확한 원인을 알아서 참 다행"이라며 "당장 화분부터 바꿔야겠다"고 말했다.

전문 치료센터도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경기도는 지난 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반려식물 활성화 및 산업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는 지난 4월10일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내에 반려식물병원을 개원했다. 병원은 이달 20일까지 진료를 받고 약 한달간의 휴식기에 들어간다.

이후 동대문구·종로구·양천구·은평구 등 4곳에 식물 클리닉이 생겼지만 입원 병동이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입원실은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온실에 마련됐다. 세균 감염 등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 입원한다.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내에 개원한 반려식물병원 입원실에서 식물의사가 입원한 식물을 살펴보고 있다. 상태가 심각한 식물은 최장 3개월간 입원실에서 집중 치료도 해준다. 1인당 월 1회, 최대 3개 화분까지 진료받을 수 있으며 이용료는 무료다. 2023.4.10/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지친 일상에 기분 전환, 출퇴근 힐링"

대부분의 식집사들은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동과 보람, 공간에 쾌적함을 선사하는 것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4년째 사무실에서 바질 등 허브 종류를 키우고 있다는 이모씨(27·여)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물을 키우게 됐다"며 "출근하고 텐션이 떨어질 때가 있는데 식물을 보면 힐링이 되고 커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뿌듯해 친구들한테도 화분 키트를 종종 선물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키울 때는 가지치기 하고 잘라낸 부분에서 새로운 줄기가 안나면 어떡하나 사소한 것까지 걱정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집안에서 뱅갈고무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김모씨(34·여)는 "최근 통풍을 잘 안해서 잎이 조금 탔다는 진단을 받고 환경을 바꿨다"며 "조금만 환경을 바꿔도 죽지 않고 충분히 잘 클 수 있다고 들으니 식물이 참 예민한 '생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식물이 크는 게 사실 매일 눈에 띄게 보이진 않지만 시간이 누적되면서 어느새 커버린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선물받은 금전수를 키운다는 이모씨(25·여)는 "2년 전 친구들이 겨울철 가습효과가 있다고 줬는데 사실 이 친구가 추위와 과습에 약해 난방을 안하면 겨울 넘기기가 어렵다"며 "자취생들도 사실 겨울나기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같은데 혼자 살면서 의지도 되고 책임감도 생겨서 무기력할 때 동기부여도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모씨(27·여)가 4년째 키우고 있다는 반려식물 사진. (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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