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침침했던 신촌 토끼굴에 '낙서' 허용하자 생긴 일[알고보니]
그라피티는 예술인가 불법인가…허가된 곳에서 해야 '합법'
"예술적·사회적 가치도 있어…일탈로만 간주하지 말아야"
- 임윤지 기자
(서울=뉴스1) 임윤지 기자 = '예술인가? 불법인가?'
'낙서 벽화'라고 불리는 그라피티를 놓고 이런저런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엔 30대 미국인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공공장소에서 상습적으로 낙서하다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지방자치단체가 허용하지 않은 곳에서 그라피티를 선보일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허가된 곳'에서 그라피티를 그릴 경우 해당 공간을 명소로 탈바꿈시키기도 하는데요. '신촌 토끼굴'이 대표적입니다. 신촌 토끼굴은 원래 신촌과 이대 후문, 연세대를 잇는 굴다리로 어둡고 침침하다는 평을 받았지요. 그러나 일대에 '그라피티'를 허용한 후 예술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변신했습니다.
해외에서도 그라피티의 불법 여부는 논란이 되는 사안인데요. <뉴스1>은 그라피티의 법적 처벌부터 지역사회 공존까지 다양한 사례를 질문과 답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 그라피티는 무엇인가요?
▶ 그라피티는 주로 길거리나 벽면에 스프레이나 스티커 등을 이용해 캐릭터나 글자, 상징적인 문구를 그려낸 것을 뜻합니다. 그라피티는 가게의 철제 셔터나 지하철 역사 외벽, 주택가 담벼락 등이 주 무대입니다. 간단한 사인부터 채색을 마친 벽화까지 다양한 형태를 지닙니다.
- 우리나라는 그라피티가 불법이라는데 어떤 처벌을 받나요?
▶ 허가되지 않은 그라피티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입니다. 재물손괴죄,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처벌받지요. 재물손괴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건조물침입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됩니다.
그라피티 작가 정태용씨는 2018년 6월 서울 중구 청계천에 있는 베를린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렸다가 벌금을 물었습니다. 이 장벽은 독일 베를린시가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며 2005년 실제 베를린 장벽 일부를 서울시에 기증했던 것이어서 더욱 논란이 됐죠. 당시 정씨는 민사소송에서 1500만원의 벌금을, 형사소송(공용물건손상 혐의)에서 5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 해외에서는 그라피티가 합법인가요?
▶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그라피티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라피티가 가장 많이 있는 뉴욕에서도 그라피티는 여전히 불법입니다. 지금도 허가받지 않은 공간에서의 그라피티는 재물손괴죄,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해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반대로, 허가받고 그린 그라피티는 법적 문제 소지가 없나요?
▶ 그렇습니다. 시군구 지자체나 건물 소유주로부터 허가를 받고 그린 경우, 그라피티는 엄연한 작가의 작품이고 저작물이 됩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를 간과했다가 법적인 다툼이 일어난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14년 미국 뉴욕의 한 건물주가 고급 아파트 단지를 신축하겠다며 그라피티가 그려진 벽화와 그 건물을 모두 철거했습니다. 작가들은 유실된 그라피티 작품에 문제를 제기했고 연방법원은 2018년 2월 건물주가 작가들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며 작품당 15만 달러를 배상하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월 그라피티 작가 심찬양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자신의 동의 없이 그라피티 작품을 무대 배경으로 노출한 것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당시 법원은 "MBC와 김태포PD가 각각 심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고 영상에서 작품이 노출된 부분을 삭제하라"고 했습니다.
-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그라피티도 있나요?
▶ 허용된 곳에 그려진 그림이 혐오적이거나 퇴폐적이지 않으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옵니다. 서대문구 경의·중앙선 신촌역 옆 어두침침했던 '신촌 토끼굴'이 그라피티로 재탄생된 것이 대표적입니다.
드라마 '도깨비'와 여러 CF 촬영지로 알려진 신촌 토끼굴은 원래 조명이 어둡고 냄새가 나는 등 환경이 열악해 개선이 필요한 곳이었습니다. 서대문구는 지난 2017년 6월 '신촌 토끼굴 관광명소화 사업' 계획을 세웠고, 토끼굴 내부에 그라피티 작업을 할 수 있게 개방했죠.
먼저 토끼굴 진입부에 있는 창천가압장 벽면이 그라피티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습니다. 안산과 홍제천, 독립문 등 서대문구 랜드마크를 상징하는 스토리 벽화가 이곳에 그려진 것이지요.
그라피티 예술가 '레오다브'(본명 최성욱)는 유관순 열사와 윤동주 시인, 이한열 열사 등 역사적 인물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토끼굴에 선보였습니다. 레오다브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이 사람은 누구지'하면서 찾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그라피티를 보고 여전히 불편하다는 사람이 있는데요.
▶ 네, 그렇습니다. 그라피티는 개인이 소장하는 작품이 아니라 공공의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때문에 혐오감을 유발하는 작품을 그려선 안 됩니다. 일각에서는 그라피티 특유의 저항 정신이 제도권 안에서 대중적·상업적인 성격으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 그라피티 단속·규제를 강화하면 불법 논란이 해결될까요?
▶ 공공질서를 어지럽히고 개인의 사유재산을 훼손한다면 그건 엄연히 제약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불법으로 간주하고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그라피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전에 서울 마포구 홍익공원은 기존 외벽을 메우고 있던 그라피티와 낙서를 하얀 페인트로 덮고 방지 가림막을 설치했지만, 가림막이 설치돼 있지 않은 건물 뒤쪽으로 다시 그라피티가 등장했습니다. 단속 강화하고 막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이죠.
예술 장르로서의 그라피티가 사회에 주는 메시지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지역 사회와 함께 공존하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최병식 전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는 "그라피티 작가들 역시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기물이나 사유재산에 피해를 줘선 안 된다"면서 "지나치게 강한 표현으로 대중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림보다, 위트 있으면서도 때론 사회를 꼬집기도 하며 계속 보고 싶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대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공공미술 영역은 아직도 1970년대 또는 1980년대 시선에 머물러 있다"며 "대중도 그라피티를 부정적으로만 보기보단, 그라피티 그림의 예술적·사회적 가치를 발굴하려는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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