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망 먹통 원인 발표에도 우려 여전…디지털강국 민낯
8일 만에 "장비 불량"…'L4스위치→라우터 포트 불량' 말 바꿔
장비 불량 원인은 불분명…매뉴얼 등 위기 대응 능력 도마에
- 정연주 기자
(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행정전산망 안전에 대한 의구심이 정부의 원인 발표에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먹통 사태 8일 만에야 '장비 불량'이 원인으로 지목됐으나 우왕좌왕했던 대응 과정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2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5일 전산망 먹통 원인을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일부 포트 불량'으로 밝혔다. 라우터는 각각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장치인데 라우터에 꽂는 포트 손상으로 패킷(데이터 묶음) 일부만 전송됐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먹통 사태 이후 8일이나 지나서야 처음 원인으로 지목했던 'L4 스위치'가 아닌 '라우터'로 말을 바꿨다. 또 왜 그 라우터가 불량이었는지에 대한 분석도 명확하지 않다. 라우터 사용 연한은 2025년까지였다.
송상효 숭실대 교수(TF 공동팀장)는 앞서 브리핑에서 원인 분석이 늦어진 것에 대해 "결과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검증 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밝힌 대책 또한 노후 장비 전수점검 등 하드웨어적 점검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공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기업 참여가 가능하도록 허들을 낮추는 등의 논의가 별도로 이뤄지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중구난방식으로 운영되는 국가전산망 전체의 매뉴얼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 17일 먹통 사태 이후에 22일 주민등록 발급 업무 20분 지연, 23일 조달청 나라장터 1시간 마비, 24일 모바일신분증 서비스 먹통 등 다양한 관리 주체하에 불분명한 여러 원인으로 연이어 전산망이 멈추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고 이후 드러난 '위기 대처 능력 부재'가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지목된다.
행안부는 17일 오류 발생 8시간 만에야 공식 입장을 냈다. 민원 대응 지침도 산발적이라 현장 혼선은 가중됐다. 안보 문제로 확전할 수 있는 국가전산망 마비를 재난으로 분류하지 않은 탓에 위기 대응 매뉴얼도 없었다.
뒤늦게 이를 사회 재난에 포함하기로 했으나 디지털강국이란 명성에 비해 정부의 현실 인식이 안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최우선 국정과제인 '디지털플랫폼정부' 달성을 연일 독려하고 있다. 지난 23~25일 부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의 주요 골자도 디지털정부였는데 마침 모바일신분증 발급 서비스 에러로 관리 주체인 한국조폐공사 부스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네 번째 먹통 사고 다음 날인 25일 "선진국 시장에도 디지털플랫폼정부가 진출하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장애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하다"며 "정부 설명을 들어보면 '이중화가 잘 돼 있는데 작동이 안됐다'는 등 업계 입장에서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jy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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