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행정망 장애…업계 "소프트웨어계의 '순살 아파트' 사태"
예산 고정됐는데 과업 계속 추가…"부실공사로 내몰려"
정부 사업 '마이너스' 인식…절반 넘게 시행사 못 구해
- 박우영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1주일 사이 정부 행정망 '마비' 사태가 4번 반복되면서 정부의 부실 관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17일 지방행정전산망 '새올' 마비 사태는 네트워크 장비 불량이 원인인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사업 예산·기한은 그대로 둔 채 끊임없이 추가 과업을 요구는 정부 사업 관행으로 인해 '부실공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확정계약방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예산 그대로인데 계속 추가 과업 요구…부실 못 피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27일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8월 정부와 '끝장 토론'을 벌였는데 협회 소속 기업들은 정부의 '확정계약방식'이 가장 해결이 시급한 과제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확정계약은 사업 시작 전에 예산안을 확정하는 계약 방식이다. 한번 예산이 확정되면 변경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정부는 대부분 공공 사업에서 확정계약방식을 사용한다. 미국, 일본 등은 더욱 유연한 계산계약방식을 확정계약방식과 함께 사용한다.
협회 관계자는 "소프트웨어는 과업이 눈에 보이지 않아 필연적으로 기획 단계 이후 구체화되면서 개발 규모가 늘어난다"며 "설문 결과 협회 임원사들은 건당 평균 20%씩 규모가 늘어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사업이 진행되며 과업은 늘어나는데 예산은 제자리인 셈이다.
협회 관계자는 "업체들은 한번 계약을 하면 손실을 자비로 메우더라도 사업을 기한까지 완료해야 하기에 결국 비교적 값싼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유지보수에도 공을 덜 들여 자체적으로 비용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발주자인 정부 측이 무리하게 '과업 끼워넣기'를 하면서 사업 규모가 급격히 불어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한 중견 소프트웨어업체 관계자는 "발주기관은 보통 계획서는 추상적으로 작성해놓고 사업 과정에서 필요해 보이는 기능들을 그때그때 과업에 추가한다"며 "예산 배정 당시 계획보다 900% 규모가 커진 사업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도 "공공 사업에서 공무원들이 당초 과업 범위를 벗어나 계속 추가적인 요구를 하는 건 업계 모두가 알고 있는 관행"이라며 "이처럼 경직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면 사업 결과물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업심의위원회 설치 의무화했지만 실효성 떨어져"
정부 또한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20년 소프트웨어진흥법을 개정해 현장에 '과업심의위원회'(과심위) 설치를 의무화했다. 과심위가 과업 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기간 조정을 심의하도록 했다.
그러나 과심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과심위를 개최하지 않아도 처벌 규정이 없고, 과업 변경으로 과심위를 열려면 '을'의 입장인 사업자가 정부에 이를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심위가 개최되더라도 발주기관이 결정 내용을 안 지키거나 일부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협회 관계자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은 현재 2층짜리 집을 지을 돈을 주면서 3층짜리 집을 지으라고 하고 있다"며 "잇따른 마비는 건축업계 '순살 아파트' 사태처럼 '부실 공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업계 구조 탓"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마이너스 수익'…정부 사업 유찰률 '56.1%'
업계는 지나치게 낮은 단가도 '부실 공사'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협회 관계자는 "건설 분야는 매년 물가를 조사해서 단가를 업데이트하는 표준 품셈 제도가 있는데 소프트웨어 업계엔 그런 게 없어 개발 단가가 몇 년에 한번씩 오른다"며 "단가는 달라지는 부분이 없는 가운데 IT업계 인건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CXO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매출 상위 IT업체의 인건비 비율은 11%대 수준으로 유통·상사업계(3%대)와 110대 대기업(7.2%)의 인건비율 지표를 크게 상회했다. 특히 1년 동안 인건비 비율이 1%P 이상 상승한 110대 대기업 12곳 가운데 절반이 IT기업이었다.
업계가 공공 사업을 사실상 '마이너스 사업'으로 인식하면서 정부 사업에서 사업자를 제때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사업 경험과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기업들만 수익을 포기하고 수주에 나서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 조달정보개방포털에 따르면 공공 소프트웨어 운영사업 유찰률은 2021년 기준 56.1%를 기록했다. 유찰률은 2019년 40.9%에서 2년 만에 15%P 넘게 뛰었다.
이에 정부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TF'도 지난 25일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며 '공공정보화사업의 사업대가 현실화'를 대책에 포함했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 절감 기조 속에서 실제 근본적인 변화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alicemunr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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