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로 만든 잼·슬러지 와인…세일즈 나선 청년 로컬 창업가
5년차 맞아 파격 선보인 서울시 '넥스트로컬 홈커밍데이'
네트워킹에 박람회 가미…라이브 커머스·가상마켓 열려
-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전국에서 각 지역만의 독특한 색깔을 창업 아이템에 담아내는 청년 로컬 창업가들의 특별한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단순히 창업에 대한 공감대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과 고객의 입장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서로 평가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케이브하우스에서 진행된 '넥스트로컬 홈커밍데이' 현장은 로컬 창업가들은 물론 상품 바이어와 창업 관계자 등으로 활기차게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넥스트로컬'은 지역에 연고가 없는 서울 청년에게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시가 2019년부터 협력 지자체와 함께하고 있는 사업이다.
그간 강원 영월, 전남 강진까지 누적 62개 지자체가 참여했으며, 총 5기에 걸쳐 195개개의 창업 기업·팀이 육성됐다.
통상 홈커밍데이는 사업 참가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교류하는 자리로 꾸려지지만 올해 행사는 사업 5년 차를 맞아 일종의 박람회 형식을 가미하는 등 '파격'을 시도했다.
특히 '미니 가상마켓'에서는 강원·충청·영남·호남권 등 전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총 33개 팀이 박람회 현장에서 직접 모객을 하는 것처럼 행사장에 부스를 차린 뒤 행사장을 찾은 동료 창업가와 바이어들에게 아이템을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창업가들이 부스를 잠시 비우고 다른 창업가들의 아이템을 살펴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이름표를 목에 건 로컬 창업가들이 그간 만날 기회가 없던 다른 창업가들의 아이템을 꼼꼼히 살피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이템은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식품과 음료, 주류 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는 현상을 반영하듯 반려동물용 사료와 간식, 소품 등을 판매하는 부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1기 참가사인 '다정한마켓'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품성이 떨어져 버리지만 맛이 좋은 '못난이 채소'로 만든 반려동물용 액상 간식이 최고 인기 제품으로 꼽힌다.
박상호 다정한마켓 공동대표는 "농부에게서 재료를 받아 반찬을 만드는 친환경 반찬가게를 했었다"며 "원래도 친환경 농가와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넥스트 로컬을 통해 새로운 농가와 많은 원료 생산지를 알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창업가들도 눈에 띄었다. 4기 참가자인 전하루 뉴뱅 대표는 10년간 소믈리에로 일하다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와인 개발에 나섰다. 소비자가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의 도수가 비교적 낮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원료는 사과즙을 만든 뒤 남는 껍질, 내용물, 씨앗 등의 '슬러지'였다. 전 대표는 "강원 영월의 청년 농부와 매칭이 된 뒤 '사과즙을 만든 뒤 슬러지 처리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러지 와인을 만들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넥스트로컬을 통해 몰랐던 지역 정보를 알 수 있던 것이 좋다"며 "영월이 좋아서 현재 이주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남 해남에서 난 고추와 김 등으로 요리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잼을 만드는 쨈(JJAM) 팀의 임정은 셰프는 외국에서 셰프로 일했다. 같은 팀원인 로컬콘텐츠기획자 정다솜씨도 해외에 거주하는 동안 베이컨 잼, 페스토, 퓨레 등의 독특한 식재료를 두루 맛봤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잼' 만들기에 뜻을 모은 이들은 현재 튜브 용기에 담긴 잼 생산을 위해 국내 OEM 업체와 논의 중이다. 정씨는 "지인으로부터 넥스트로컬 사업을 소개받아 아이디어만 갖고 지원했다"며 "레시피를 늘려가는 과도기 단계에 있으며 작업장에서 열심히 수제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찾아라! 판매왕'에서는 8개 팀이 직접 나서 '라이브 커머스' 형식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초조한 듯 발을 동동 구르던 창업가들은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환히 웃는 표정으로 상품을 들어 보였다.
주어진 시간이 10분 이내로 짧은 만큼 상품을 확실하게 각인하기 위한 퍼포먼스가 줄을 이었다. 술이 든 캔을 마이크 가까운 곳에 들이대 청량한 소리를 들려 주거나, 꽉 눌려 납작해졌던 베이글이 순식간에 다시 부풀어오르는 모습을 선보이는 식이었다. 발표 내내 심사위원 3명의 손이 노트북 위에서 점수를 매기느라 바삐 움직였다.
'미니 가상마켓'에서는 참석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스티커 투표'를 받은 홉씨드와 오엔앰스마일 등 2개 팀이 각각 슈퍼스타상(출시 아이템)과 슈퍼루키상(미출시 아이템)의 영예를 안았다.
'찾아라! 판매왕'에서는 지역색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은 클로빙이 '로컬 스타상'을 받았다. 평가위원·일반인 평가 1등은 '향이든'이, 2등은 '피키피커'가 받았다.
3기 참가자인 김하원 레알플렌트 대표는 "매년 행사가 체계화되고 (넥스트로컬에) 합격해 사업을 하는 분들의 수준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서울시가 넥스트로컬이 잘 되도록 지원해 선배 기수도 그 모습을 보고 함께 뿌듯해할 수 있는 시간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덕환 서울시 대외협력과장은 "서울시가 가장 핵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1~3단계 지원에서 끝나지 않고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라며 "내년도에 서울시 상설 판매장을 새단장해 '넥스트로컬관'을 별도로 만들어 우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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