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마다 '전공의 모시기' 안간힘…빅5도 지자체도 팔 걷어붙였다
아산병원 응급·세브란스 외과도 내년 전공의 모집에 사활
강원·전북·제주 월 100만원 수당 지급…"효과는 글쎄"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소위 '빅5 병원'(수도권 대형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들이 이달 말 시작될 2024년도 전공의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공의 미달 사태를 겪어온 일부 필수의료 진료과 의국들에서 적극적이다.
비인기과는 전공의가 전문의로 되기까지의 수련을 고려해야 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필수의료 전공의 지원율이 수도권보다 떨어지는 비수도권 수련병원 사정은 더 절박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수당 지급까지 약속하고 나섰다.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세브란스병원 외과 의국은 수술을 앞둔 의사 모습과 "외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가오야"라는 내용의 신입 전공의 모집 포스터를 의국에 부착했다. '한우를 먹고 싶다면 연락주세요'라며 의국장 연락처도 기재했다.
병원 관계자는 "의국장은 '파급력이 이렇게 클지 몰라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다만 고난도 고위험 수술에 매진하는 외과 의사의 사명감은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모집에서 이 병원 외과는 모집 정원 15명에 9명만 지원해 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신 유행어를 담은 포스터, 20~30대 MZ 전공의를 겨냥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영상물도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공식 유튜브에 '산부인과 전공의 생활'이라는 브이로그 동영상도 올렸다.
해당 영상은 수술과 내과적 치료를 모두 배울 수 있다는 산부인과의 장점을 소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를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올해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78%(187명 모집에 145명 지원)에 그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전지적 전공의 시점 feat.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채용 홍보'라는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소아과 1년차 전공의 3인과 의료진 등이 출연해 "뜻깊고 가치 있는 일", "내과계에서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등 자부심을 적극 표현했다.
올해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25%(208명 모집에 53명 지원)까지 떨어져 소아 의료체계 붕괴 위기 등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소아과학회 등은 2024년도 지원율이 얼마나 더 내려갈지 염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의국은 신입 전공의 모집 공고문에 "진정한 중환을 만나고 싶은가? 세상의 모든 중환(중환자)은 여기 온다. 중환의 바다가 무엇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의국이 높은 업무강도 등을 담담하게 풀어낸 데 대해 누리꾼들은 "저런 자부심은 칭찬한다. 멋지다", "아산은 그럴 만도 하다. 다른 병원에서도 거절한 수술을 아산에서는 해줬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료계에서는 한목소리로 "빅5 병원에서도 필수진료과는 전공의 모으기 어렵다는 현실이 그대로 반영됐다"며 "필수진료 분야를 할지라도 빅5 또는 수도권에 갈 텐데, 지방 병원 사정은 더 안 좋다"고 털어놨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인기 필수과목 비수도권 지원율은 2014년 71.8%에서 올해 45.5%로 26.3%p(포인트) 하락했다. 여기서 비인기 필수과목은 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산부인과·외과를 지칭한다.
모집 인원의 절반도 못 채운 터라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위기감에 휩싸인 분위기다. 지방 의대를 졸업한 뒤 수도권 병원 근무를 선호하면서 인력 유출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전공의는 병원에서 수련하지만, 의사로서의 기본 업무도 병행하기 때문에 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방 병원 입장에선 한 명의 지원자도 아쉬운 실정이다.
따라서 전라북도·강원도·제주도는 도내 수련병원 전공의들에게 기초자치단체 또는 해당 병원과 일정 분담하는 방식으로 월 100만원씩 수당을 주고 있거나, 줄 예정이다. 정부 정책과 별도로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같은 재기발랄한 홍보 또는 수당 지급만으로 전공의 필수진료과 및 비수도권 기피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워라밸 보장은 다른 직업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인턴을 마치고 내년에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한 전공의는 "주위를 보면 워라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수당은 그다음"이라며 "돈 좀 적게 벌어도 수도권에 있고 싶지 않을까. 다른 직업처럼 마찬가지"라고 했다.
젊은 의사들을 회원으로 둔 한 의사 단체장은 "필수진료과 지원은 본인의 사명감 때문이다. 수당이 특정 과를 지원할 때 고려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며 "다만 동일한 진료과를 수당과 워라밸이 더 좋은 병원에서 수련하고 싶은 마음은 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방 병원들의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런데 전공의가 없다고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의대 증원을 통해 정부가 필수의료 인력을 유입하고, 절대적인 필수진료과 의사 수도 늘릴 수 있다는 낙수효과는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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