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그 골목' 한 뼘도 넓어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1년] 해밀턴호텔 옆 내리막길 등 불법건축물 여전
서울만 8만5716개…이행 강제금 상향, 주민 등 반발로 지지부진
- 박우영 기자
(서울=뉴스1) 박우영 기자 = "참사 났던 이태원도 이런데 다른 곳은 어떻겠어요."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만난 A씨(61)는 자택 인근의 불법 건축물을 보며 우려의 마음을 표했다. 그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10.29 이태원 참사' 이전에 불법 건축물로 적발됐지만 여전히 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참사 내리막길 입구에 여전히 불법 건축물…해밀턴호텔 인근 80여개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둔 이태원동 곳곳에는 불법 건축물이 버티고 서 있었다.
참사 당시 불법 건축물이 보도 폭을 좁히면서 대형 인명피해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지만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참사가 발생했던 해밀턴호텔 골목 인근 상권에도 불법 건축물이 80개 넘게 있었다.
현장으로부터 2분 거리에 위치한 한 식당은 처음 건축허가를 받을 때 신고한 면적보다 넓게 건물을 지은 전형적인 불법 증축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 한 술집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허가받은 것보다 건물이 증축됐다.
두 곳 모두 지난 7월 용산구에 적발돼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았다.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해밀턴호텔 옆 내리막길 입구에도 불법 증축물이 서 있었다. 거듭된 이행 강제금 부과와 시정 요구에도 응하지 않자 용산구는 해당 건물을 경찰에 고발했다. 현재 검찰이 수사중이다.
문제의 건물은 2층을 무단 증축했다. 1층을 불법 증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도 폭을 좁혔다고 볼 수는 없다. 이 같은 논리는 불법 건축물 소유주 상당수가 시정 명령을 거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도 폭을 좁혔는지 아닌지 등 맥락을 고려할 필요 없이 불법 건축물에 대한 일괄적인 처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정을 봐가며 예외를 허락하기 시작하면 저건 되는데 이건 왜 안 되냐는 식으로 논의가 흘러가 끝이 없다"며 "안전 문제에 관해선 예외 규정을 적용하거나 당사자 간 타협을 할 것이 아니라 법을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서울 불법 건축물 8만5716개…1년 동안 전국서 6만여개 적발
불법 건축물은 비단 이태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시내 불법 건축물은 총 8만5716개였다.
유형별로 무허가·무신고(신축, 증축·개축, 재축), 무단 대수선, 무단 용도변경 등이었다. 이 가운데 불법 증축을 포함한 무허가·무신고가 8만2578개로 사실상 대부분(96%)을 차지했다.
매년 적발도 계속되는 상황이다. 서울에서는 2020년 한해 동안 불법 건축물 1만2921개가 적발됐다. 이 중에서도 무허가·무신고가 1만676건으로 83%를 차지했다.
전국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불법 건축물 6만330개가 적발됐다.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1만6810건의 불법 건축물이 적발됐다.
◇ 이행 강제금 상향은 주민 반발…"올리면 못 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유일한 해법인 이행 강제금을 올리려는 시도도 나와 서울시 발의안이 서울시의회에 계류된 상태다. 현재 불법 건축물 소유주의 상당수가 이행 강제금보다 불법 증축에 따른 이익이 크다는 이유로 강제금을 내가며 불법 건축물을 그대로 두고 있다.
다만 소상공인·주민 반발에 일부 시의원이 법안 상정에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소상공인·주민들은 영세한 소유주의 경우 사실상 상향된 이행 강제금 납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언젠가 시공·공사를 거쳐 불법 사항을 시정한다 하더라도 그 전에 강제금이 부과될 경우 낼 수 없다는 뜻이다. 불법 건축물 여부를 모르고 건물을 매입한 소유주를 보호해달라는 주장도 나온다.
◇ 한 뼘도 넓어지지 않은 이태원 참사 '그 골목'…대비 필요
불법 건축물 문제가 여전한 가운데 지난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해밀턴호텔 옆 내리막길은 한 뼘도 넓어지지 못 했다.
불법 증축 논란이 일었던 해밀턴호텔 측의 가벽 형태 에어콘 실외기 차폐시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밀턴호텔 측은 참사 후 3곳의 불법 시설물을 철거했으나 해당 차폐시설은 불법이 아니라며 남겨뒀다. 용산구도 해당 시설은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건축선도 넘지 않은 데다가 지붕이 있어야 증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붕이 없다"며 "해당 시설물은 불법도 증축도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안전 관리의 주체인 사람이 대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학생 때 매 핼러윈 이태원을 방문했다는 30대 B씨는 "골목이 그대로인 것을 보면 조금 두렵다"며 "안전관리를 맡은 기관들도 시민들도 올해 더 각별히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licemunr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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