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원으로 이틀 살아보니…1000원에 염치 잃었다[만원의 한숨]①
'자장면 7000원' 시대…'만원 챌린지' 생존투쟁
30분 만에 절반 지출…삼각김밥조차 '언감생심'
- 이기범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5000원. 이틀 동안 만원으로 버티기에 도전한 지 30분 만에 가진 돈의 절반이 날아갔다. 고물가 시대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시작한 '만원 챌린지'의 결과는 참담했다. 호기롭게 도전을 선언했지만 '무지출 챌린지'는 금세 '생존 투쟁'으로 돌변했다. 교통비 인상으로 출퇴근조차 버거웠고, 생존을 위해 버텨야 하는 삶으로 내몰렸다.
◇그날 따라 커피가 썼다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만원 챌린지'에 나섰다. 도전 첫날인 18일 평소 출근지 중 한 곳인 서울 영등포경찰서 기자실로 향했다. 만원짜리 지폐 한 장만 손에 쥔 채였다. 택시를 밥 먹듯이 타며 쾌락과 죄책감 사이에서 하루를 열거나 마치는 기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첫 지출 금액은 1500원이었다. 집 인근 역에서 영등포경찰서가 위치한 영등포구청역까지 찍힌 일회용 지하철 승차권 비용이다. 보증금 500원을 포함해 총 2000원을 기계에 넣었다. 보증금 반환기에서 500원이 나오는 순간은 짜릿했다.
비극은 출근지에 도착한 직후 벌어졌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를 외치고 말았다. 경찰서 로비에 위치한 카페에서 3500원 나갔고, 손에는 5000원이 남았다. 저가 커피라고 방심한 탓이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빨대로 한 모금 삼켰다. 그날따라 유난히 커피가 썼다.
이날 기자는 야간 근무자였다. 오후 3시 업무를 시작해 밤 12시에 일이 끝나는 일정이었다. 2~3시간이 지나자 저녁 시간대가 됐다. 이미 이틀을 버텨야 하는 금액의 절반을 날린 상태에서 편의점 삼각김밥도 언감생심이었다. 기자실 한편에 놓인 간식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 탕비실에서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을 한다는 직장인들의 마음이 와닿았다.
저녁은 기자실 컵라면으로 때웠다. 헛헛한 마음에 유튜브 먹방을 틀었다. 아무도 없는 기자실에서 영상을 보며 '너 한입, 나 한입'하는 사이 고독한 허기짐을 달랠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카페인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사가 안 써졌다. 하루 세 잔 마시던 커피를 한 잔으로 줄이니 금단 현상이 찾아왔다. 현기증이 났다.
◇집까지 1시간 걸었다
문제는 교통비였다. 퇴근 시간이 다가왔지만, 차마 지하철에 몸을 실을 수 없었다. 다음날까지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집까지 1시간 거리를 걸었다. 경찰서 외벽에 붙은 시계는 오후 11시30분을 가리켰다. 한밤중에 사건·사고가 터져 길거리 벤치에 앉아 기사도 하나 썼다. 12시45분. 집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뒤져 야식을 먹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지는 인천 송도였다. 경찰의 미래 치안 기술을 소개하는 '국제치안산업대전' 전시장을 찾았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데 든 비용은 2100원. 속수무책으로 나가는 교통비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하철 요금 인상이 체감되던 순간이다. 1250원이었던 기본요금은 지난 7일 1400원으로 12% 올랐다.
취재 일정을 마치고 갈 곳이 없었다. 카페를 간이 기자실처럼 써왔지만, 남은 금액은 2900원. 상행선에 몸을 싣기에도 빠듯한 비용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마음으로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강변을 바라보며 기사를 썼다. 그러나 자꾸만 줄어가는 노트북과 스마트폰 배터리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회사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날 저녁 일정이 종각역 인근 회사 근처에서 있었던 터였다. 부서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평기자는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기자 일의 몇 안 되는 장점이지만, 이날 생존을 위해 회사로 가야 했다.
2200원에 종각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배터리가 무사하길 빌며 노트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회사 인근인 종각역에 간신히 도착할 때쯤 노트북이 꺼졌다. 직전에 처리할 일이 생긴 뒤였다. "기사가 왜 안 올라오냐"고 배터리가 10%가량 남은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주머니에는 700원이 남았다. 밥은 굶은 상태였다.
이날 저녁에는 회사 동기들과 약속이 있었다. 함께 자리한 회사 임원이 밥을 샀다. 남몰래 속으로 눈물을 쏟으며 고기를 삼켰다. 군침이 싹 돌았다. 오겹살의 풍미가 겹겹이 느껴졌다. 저녁 자리가 끝나갈 때쯤 다시 현실이 엄습해 왔다.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도보로는 한강을 가로질러 약 3시간이 걸렸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고행의 길을 걷기엔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다.
결국 살면서 처음으로 구걸을 했다. 동기들 앞에서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동기 사랑이 나라 사랑'이라고 했던가. 1000원짜리 지폐가 손에 쥐어졌다. 일확천금을 얻은 기분이었다. 일회용 승차권에 돈을 넣는 순간 보증금 500원을 포함해 2000원을 내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300원이 모자랐다. 살면서 두 번째 구걸을 한 순간이다.
◇'만원의 행복' 꿈꿨지만 한숨만 남아
집 근처 역에 도착한 뒤 500원을 환급받았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고심 끝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다. 50% 이상 할인가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원이 모자라 메로나조차 먹을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어릴 적 코 묻은 돈을 갈취했던 '딸기맛 새콤달콤'만이 날 반겼다.
고물가 시대를 압축적으로 체험한 이틀이었다. 무엇보다 카드값으로 한꺼번에 나가는 탓에 인지하지 못했던 교통비 인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동이 힘들어지니 생활의 근간이 흔들렸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14년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보고서를 통해 노인 무임승차 제도가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해 2012년 기준 3361억원의 사회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낳는다고 추산한 바 있다.
과거 한 방송에서는 일주일 동안 만원을 쥐여주고 버티게 하는 내용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첫 방송은 2003년, 종영은 2008년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은 것일까. 15~20년 만에 만원의 가치는 이틀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폭락했다. 자장면 가격이 3000원대에서 7000원대로 오르는 사이 만원의 행복은 한숨으로 변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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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0년 '서민 음식의 대명사' 자장면 평균 가격은 2742원이었다. 만원이 있으면 세 끼를 먹고도 돈이 남았다. 그래서 한때 '만원의 행복'이란 신조어가 유행했으나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 됐다. 2023년 '자장면 7000원'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중에 있는 돈이 만원 뿐이라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고물가 시대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이 집중 진단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