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매년 증가하는데 서비스 이용률 12.1%…"전주기적 관리 시급"

병상은 많은데 정신과 의사수 OECD 최하위
"보호의무자제도 폐지하고 외래 치료지원제 정상화 해야"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병상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과잉에 가깝지만, 정신과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다른 나라보다 턱없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10일 보건복지부가 OECD 건강 통계를 기반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2019년 인구 1000명당 정신병상 수는 1.24개로 OECD 회원국 중 일본(2.57개), 벨기에(1.41개), 독일(1.3개) 다음으로 많았다. 회원국 평균인 0.65개의 2배에 가까웠다.

정신건강 성과지표 추이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반면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2020년 기준 한국이 0.08명으로, 같은 해 통계가 있는 29개국 평균 0.18명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0.01명), 콜롬비아(0.02명), 터키(0.06명) 등 3곳뿐이었다. 의사 부족과 달리 병상수는 많은 편이다.

이는 수용·입원 위주의 환자 관리·치료 관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의사 부족이 의대생들 사이에서 정신과 인기가 없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 전국 48개 병원의 2023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정신과는 모집 정원 97명에 142명이 지원해 1.4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정부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1.9%(3158억원) 수준으로 매우 낮았다. 의사 수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정신과 전문의들이 처우가 나은 민간병원이나 개원을 선호하면서 중증 환자들이 찾는 국립정신병원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정신건강 성과지표 추이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국회 복지위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립정신병원 5곳의 정신과 전문의 충원율은 41.2%에 그쳤다. 반면, 서울시 정책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 새 서울 시내 정신과 병의원은 232곳(76.8%)이나 증가했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 의사 수가 외국에 비해 많이 적은 것은 아니다. 국내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이 심각해 진료를 덜 받는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 그 편견이 많이 줄고 있어 환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고 소개했다.

정신건강 예방과 조기 개입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낮은 편이다. 2021년 기준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2.1%로 캐나다(46.5%), 미국(43.1%)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본(20%)보다도 낮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2018년 302만명에서 2022년 385만명으로 83만명 증가했다. 다만 정신질환을 진료받다가 최근 1년 내 진료 이력이 없는 환자가 3명 중 1명에 달했다. 2021년 기준 정신질환 진료 환자 362만명 중 최근 1년 내 진료 이력이 없는 환자는 35.5%(128만명)나 됐다.

고혈압, 당뇨 환자가 꾸준히 규칙적으로 외래진료를 받듯이 정신질환자가 지역에서 생활하며 지원받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환자 가족들로부터 제기된다. 잇단 사회 범죄 문제를 환자와 결부시켜 편견을 갖는 행태도 자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정신질환자의 치료 및 요양과 사회 적응 훈련을 보호의무자에 맡기고 있어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도 개입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자 돌봄을 오롯이 환자 가족 등이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외래치료지원제가 운영 중지만, 활성화돼 있지 않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우선 보호의무자 제도가 폐지돼야 하고, 중증 환자를 위한 정신 응급 대응 시스템과 함께 환자의 임의적 치료 중단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한 실정"이라며 "유명무실한 외래 치료지원제가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정책위원장은 "지나치게 낮은 중증·응급 정신질환자 관련 수가를 현실화해 어디에 입원시켜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가족들의 부담을 국가가 덜어줘야 한다"면서 "장기 정신 입원환자에게 주거 및 생활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해 보살피는 일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이런 요구를 감안해, 이달 중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건강 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두고 마련 중"이라며 "정신질환 예방과 조기 발견, 치료 내실화, 일상 복귀·퇴원 후 체계적인 지원 등 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대책을 낼 것"이라고 전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