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시행 코앞인데 더 가열되는 찬반논쟁…험란한 여정 예고

병원 촬영거부 사유 포괄적, 수술 의료진 모두 동의해야 열람
의료계는 헌법소원…아직 설치 대상 파악도 안된 복지부

2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수술실에서 병원관계자들이 CCTV를 점검하고 있다. 2021.8.23/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오는 25일부터 병원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는 5일 해당 법안이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법 시행을 불과 20일 앞두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논쟁이 더욱 가열되면서 제도 안착까지 험난한 여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고(故) 권대희씨의 가족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집도의에게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21.9.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환자·보호자 요청시 수술장면 촬영…거부사유·열람절차·보관기간 '논란'

25살 대학생 권대희 씨는 2016년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49일간 연명치료 끝에 숨졌다. 유족은 당시 수술실 CCTV로 집도의가 다른 환자도 동시에 수술하러 가는 '공장식 수술' 정황을 파악했고 이후 '수술실 CCTV 의무화'가 공론화됐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의료사고 증명 책임 명확화, 대리 수술 등 불법행위 감시, 안전하게 수술받을 환자 권리 등을 이유로 지난 2021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그해 9월 공포돼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5일부터 시행된다.

우선 환자나 보호자 요청이 있을 때, 수술실에 설치된 CCTV로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의 수술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는 "전신마취 또는 수면마취 등 수술을 하는 동안 환자가 상황을 인지·기억하지 못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병원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수술하는 장면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환자가 알 수 있도록 안내문을 게시하는 등 설명해야 한다.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환자가 마취될 때부터 수술실을 나갈 때까지 촬영한다. 다만 촬영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가 6가지 마련됐다.

△응급환자 수술 △생명에 위협이 되거나 신체기능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자의 수술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진료질병군 수술 △전공의 수련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수술 직전 촬영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우 △천재지변 등의 불가항력적 사유로 촬영이 불가능한 경우다.

수술실 CCTV 촬영 거부 사유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촬영된 영상은 수사기관 요청 외에 환자가 영상을 제공받거나 열람하려면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 등 영상에 찍힌 모든 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1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병원은 동의하지 않은 이유를 열람 요청자에게 알려야 한다.

복지부는 영상을 30일 이상 보관하라고만 규정했고 구체적인 보관 기준은 병원이 정해야 한다. 이밖에 CCTV 설치 또는 촬영 의무를 위반한 의료기관은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촬영된 영상과 정보를 유출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복지부, 수술실 둔 의료기관 2091곳 추산…심기 불편한 의료계

시행을 불과 20일 앞두고 있지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의무화를 요구하는 측은 의료인의 촬영 거부 사유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고, 의료계는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시행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서다.

고(故) 권대희 씨 의료사고 사망사건 법률 대리인이었던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의 이정민 변호사는 뉴스1에 "촬영 거부 사유가 넓을수록 입법 취지는 몰각된다. 전문의 수련을 이유로 대학병원 대부분은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며 "영상정보 보관기준 30일도 지나치게 짧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수술실 CCTV 의무화가 의사 등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필수 의료 붕괴 현상을 가속할 것이라는 이유로 5일 헌법재판소에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서와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과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이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개정 의료법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 및 헌법소원심판청구서 제출을 위해 민원실로 들어서고 있다. 2023.9.5/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시행이 되더라도 수술실 CCTV가 실제 몇 군데에 설치됐는지 알기 힘들뿐더러 설치가 돼 있더라도 실제 촬영, 열람까진 쉽지 않아 보인다. 복지부는 CCTV를 달아야 할 수술실이 전국에 몇 곳 있는지 우선 알아보겠다는 원론적 입장이다.

복지부는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의료기관을 전국 2091곳으로 추산하고 지자체를 통해 설치비 명목으로 예산 일부를 지원한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행(25일) 전까지 2주간 설치 대상 기관을 파악할 예정이다. CCTV 설치 자체는 시일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촬영 거부 사유가 폭넓은 데 대해 "25일부로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이 이뤄질 수술실을 둔 의료기관은 모두 CCTV를 설치해야 한다. 우선 설치 대상 수술실의 수를 파악한 뒤 실제 설치 여부도 조사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