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청첩장 모임에 웃을 수 없어"…결혼 못하는 사람들의 비애
청년들 10명 중 3명만 결혼에 긍정…"결혼 못하는 현실속 상대적 박탈감"
"가진게 없는데 지원도 못받아"…결혼 자금에 부담 느끼는 청년들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축하해줘야 하는데 표정관리를 못 했네요."
지난 주말 15년지기 고등학교 친구 8명이 모인 청첩장 모임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축하가 오갔고 결혼을 계획 중인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인지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로 흘렀다.
그러나 외곽에 따로 떨어져 앉은 한 사람만이 어두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김창희씨(33)였다.
김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도태되는 기분이 든다"며 "친구가 결혼한다고 하는데도 이런 기분이 드는 내 자신이 괴롭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8년째 변리사 자격증을 위해 공부 중이다. 그는 얼마 전 최종시험을 봤고 합격을 눈앞에 뒀지만 마냥 기쁘기만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어느새 나이가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나는 이제 시작"이라며 "전문직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결혼자금을 모으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막막하다"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하는데 나처럼 못하는 사람들의 합리화가 아닌가 싶다"며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격지심을 느끼는 스스로가 비참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청년 중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36%에 불과했다. 10년 전과 비교해 20%나 하락한 수치다.
실제 혼인 건수는 2019년부터 4년 연속 역대 최소치(19만7100건)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 다수가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씨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을 못 하는 경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가진 게 없는데 지원도 못받아"…결혼 자금에 부담 느끼는 청년들
김씨처럼 늦은 나이까지 취업을 못 한 경우에만 결혼으로 인한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이른 나이에 취업하더라도 결혼을 미루거나 선택지에서 결혼을 지우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결혼으로 인한 경제적인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 '결혼자금 부족(33.7%)' 문제를 제일 많이 꼽았다.
6년 차 직장인인 손모씨(35·서울 동작구 거주)는 최근 3년간 만났던 4살 연하 여자친구와 결혼 문제로 결별했다. 손씨는 "집 한채 마련할 돈이 없는 상황에서 결혼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며 "당장 결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 슬프지만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 지원도 못 받는 상황에서 결혼 시작을 마이너스로 하기는 두렵다"면서도 "솔직히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부담 없이 결혼을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 번째 이직을 준비하는 고모씨(33)도 결국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당분간은 결혼을 선택지에서 지웠다.
그는 "이른 나이에 취업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이직을 준비 중"이라며 "스스로도 불완전한 상태에서 어떻게 결혼을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직을 준비하며 나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돼야 결혼을 생각하는데 그런 상황이 언제가 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못 하는 청년층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최근 발표된 결혼자금 증여세 면제는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혼 부담을 줄일 목적이라면 정책 우선순위를 더 많은 계층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신혼부부 임대 주택 마련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ha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