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깎는 구조조정 감내했는데…폐원이 목적이었나" [문 닫는 백병원]

[인터뷰]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 "우롱당한 느낌"
"뭐라도 해봐야지…이렇게까지 다급하게 닫을 이유가 있나"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이 지난 6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저동 서울백병원 건강검진센터 진료실에서 병원 폐원과 관련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박상휘 박동해 기자 = "(병원이) 어려운 건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문을 닫아야 되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백병원 건강증진센터 진료실에서 뉴스1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문을 닫는 것은 주변에 많은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다 따져보고 조치를 해가면서 적정한 시기에 폐원을 하든 말든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을 비롯한 다수 서울백병원 교수들과 의료노조는 재단인 인제학원 이사회의 폐원 결정에 반발해왔다. '병원을 살려보자'며 필수진료과와 대규모 인력 감축을 강행하고 2년간 리모델링 공사까지 추진한 나날이 무색하게도 리모델링이 끝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갑자기 폐원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뭐라도 시도라도 해보고 '이래도 안 된다'고 했으면 억울하지는 않다"며 "우롱당한 느낌"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 의사들 반대했지만…전공의 수련 포기하고 인력 대규모 감축

앞서 인제학원 이사회는 지난달 20일 재단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의결했다. 2016년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TFT(태스크포스팀)를 구성해 만성 적자를 타개할 방책을 찾아봤지만 폐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인제학원 이사회가 밝힌 누적 적자 규모는 2004년 이후 1745억원이다.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모습.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다만 조 회장은 이병두 백중앙의료원장이 대규모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을 직원들이 받아들일 경우 "한 달에 10억원 정도 적자가 나더라도 백병원 모태 병원임을 감안해 수용하고 (병원을) 유지하겠다"고 공언했다고 지적했다.

병원은 2019년 전공의 수련병원 자격을 자진 반납한 후 심장내과 및 신경외과 등 일부 필수진료과 규모를 축소했다. 조 회장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에는 원래 뇌 전문의 3명을 포함, 신경외과 의사 4명이 있었지만 현재는 척추를 전문으로 보는 신경외과의 1명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심장내과 의사 2명은 모두 다른 병원으로 전출됐다. 600~700명에 달했던 직원도 현재는 400명 정도로, 전체 인력의 약 3분의 1이 감축된 셈이다.

조 회장은 "사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진료과목 축소에) 반대했다. '이렇게 하면 수입이 더 줄 것이 아닌가' 반대했어도 병원에서는 강경하게 밀어붙였다"며 "전공의부터 응급센터, 전체적인 당직 구조,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을 다 갖췄었는데 필요한 모든 걸 싹 없애버렸다. 차 떼고 포 떼고 된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병원은 계약직 교원으로 페이닥터(봉직의사)를 채용했다. 조 회장은 "내보낸 전임 교원은 경력이 10년 된 사람이라면 비전임 교원은 이제 막 전문의를 따서 경력이 2~3년 수준"이라며 "그런데도 계약직 분들은 개원가 페이(봉급)을 주니까 전임 교원보다 연봉이 1.5배에서 2배 이상 높다. 결과적으로 인력은 많이 줄였지만 인건비는 별로 줄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이 같은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을 돌이켜볼 때 애초에 '폐원' 자체가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조 회장은 "단기적으로는 계약직 의사들이 페이가 더 높지만 계약이 끝나면 나갈 사람들이니까 (재단이) 책임을 안 져도 된다"며 "그런데 전임 교원들은 페이가 별로 높지 않더라도 폐원될 때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될 사람이다. 의도적으로 전임 교원을 계약직 교원으로 계속 바꿔가는 작업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당초 40명이 넘었던 서울백병원의 전임 교원 수는 현재 28명 수준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경찰 및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DB) ⓒ News1 장수영 기자

◇ 필수진료과 축소로 중증응급환자 못 받아…이태원 참사에 울분 터진 교수들

서울백병원이 일부 필수진료과를 포기하면서 응급의료센터 역시 축소됐다. 이 문제가 가장 크게 불거졌던 것은 지난해 10월29일 150여명이 사망한 이태원참사가 발생했을 때였다. 당시 서울백병원으로 이송된 중증응급환자 수는 '0명'. 사고 현장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3.4㎞ 떨어져 있지만 중증 외상을 진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응급실에 없다는 이유로 서울백병원은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약 14㎞ 정도 떨어져 있는 상계백병원에서 위급했던 중증 환자들을 받았다. 1분1초가 다급했던 그날, 서울을 벗어나 일산·의정부 등 경기도 권역까지 이송된 환자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사망했다.

이 사실은 교수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조 회장은 "아침 뉴스에 (이송병원 명단에) 서울백병원이 없어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노(老) 교수님들은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분을 (쏟아냈다)"고 떠올렸다.

조 회장은 "예전에는 교통사고가 나든 심장 환자가 발생하면 다 우리 병원으로 데려왔는데 (환자들을 못 받으니까) 구급대원들이 더 이상 안 데리고 온다"며 "이제 그나마도 (폐원해서)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태원참사 당시 응급실에 필수진료과 의료진이 없어서 중증환자가 와도 후속조치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며 "그래서 경증환자만 3명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구는 거주인구도 별로 없고 위치상 반경 3㎞ 이내에 국립중앙의료원이나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 5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중증환자들이 많이 간다. 대신 서울백병원은 경증환자 위주로 본다"며 "지난 7년간 경영정상화 TFT를 운영하면서 병상 수를 줄이고 경증환자에 집중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이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하연관에서 지난 6월12일 열린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 주최 이사회의 폐원 결정 철회 요구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장여구 인제의대 교수노조 서울백병원 지부장.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 국내 유일 섭식장애 클리닉도 위기…"급작스러운 폐원으로 당황"

종합병원으로서는 국내에 유일한 섭식장애 전문클리닉도 서울백병원에 있다. 조 회장은 "섭식장애는 치료가 어렵고 사망률도 굉장히 높은 질환"이라며 "국내 가장 큰 5개 병원에서도 섭식장애 환자는 우리 병원으로 보낼 정도"라고 말했다.

김율리 정신의학과 교수가 운영하는 서울백병원 섭식장애 클리닉은 전국의 섭식장애 환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조 회장은 "김율리 교수님이 우리 병원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KTX 서울역에서 가깝기 때문"이라며 "전국에서 다 몰려오기 좋은 위치다. 그분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면 이렇게까지 많이 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폐원에 대한 입장을 묻는 뉴스1 질문에 서면으로 "급작스러운 폐원 관련 상황으로 인해 섭식장애 환자들 진료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당황하고 염려하고 있다"며 "현재 병원 상황이 급변하고 예측이 안 되는 면이 많아 상황에 맞게 대처해 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도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는 대학 소속으로 섭식장애 치료법 개발 연구는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섭식장애 환자들에게 비약물적 회복프로그램을 시행하는 회복기관 모즐리회복센터의 대면·비대면 프로그램들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순형 인제대 백병원 이사장이 지난 6월20일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열린 폐원안에 대한 이사회를 마친 뒤 병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 일방적 폐원 일정 통보에 거취도 미정…답답한 의료진

서울백병원 의료진을 비롯해 서울백병원 동문들도 폐원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인제학원 이사회는 요지부동이다. 지난 7일 서울백병원은 8월31일부로 진료를 종료하겠다며 현재 수련 중인 인턴 7명은 형제백병원이나 타 병원으로 이동을 적극 지원하고 사업체 검진, 임상 연구 등 진행 중인 사업도 형제백병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병원 측은 "각 부속병원 의견을 수렴하고 내부 논의를 거쳤다"고 했지만 의료진들은 여전히 폐원 절차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지난 25일 병원 기획실이 의료진에 보낸 공지 문자를 보면 '7월31일부로 외래 신환(새 환자) 입원이 필요한 수술 등 진료를 종료하고 8월17일까지 입원 환자의 퇴원 및 전원을 완료한다'는 등 정해진 일정을 통보하는 식이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백병원 기획실이 의료진에 보낸 문자메시지 공지

조 회장은 "일반적으로 종합병원이 3개월 단위로 진료를 잡는다. 9월 이후에 진료예약이 잡힌 환자만 5500명"이라며 "최대한 일정을 앞으로 당겨도 일부 의사들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서 예약을 잡는 것이 쉽지 않고, 예약을 잡지 못한 환자들에게는 타 병원으로 의뢰서를 써 줄 수조차 없다"고 했다. 임상 연구 역시 어떤 보상이나 이관 절차에 대한 논의 한마디 없이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의료진의 거취도 불분명하다. 부산으로 발령을 통보받은 보건의료노조는 병원 측과 협상 중이고, 교수진은 그런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고 조 회장은 전했다. 그는 "그렇게까지 다급하게 병원을 닫아야 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라며 "이미 정해진 일정대로 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가정의학과 교수로서 17년간 서울백병원에서 고령 환자들의 건강을 맡아 온 조 회장은 폐원 소식에 우는 어르신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의료에서는 연속성이 가장 중요한데 새로운 병원에서 새롭게 의사와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다"며 "나를 아는 의사가 있다는 게 소중한 부분인데 그게 일단 깨지면 그분들은 건강관리에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단에 화가 나면서도 환자들만 생각하면 그는 떠날 수가 없다.

"마지막 환자 한 명까지도 다 보고 떠날 생각입니다. 떠나더라도 우리 병원에 오는 마지막 환자 한 명까지 제가 의뢰서를 다 써 드리고 떠나겠다, 그게 제 결심이죠."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이 지난 6월29일 오후 서울 중구 저동 서울백병원 건강검진센터 진료실에서 병원 폐원과 관련해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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