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망 1순위 "살 빼고 영어 배워야지"…경기침체에 신년특수 실종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삼중고'에 지갑 닫은 소비자
"한 번에 큰돈 지출 부담…미래에 대한 희망 유독 많이 잃어"

서울 시내의 한 실내체육시설에서 시민들이 운동하는 모습 2022.1.3/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뉴스1) 한병찬 김예원 기자 = "새해 다짐의 성지도 옛말입니다. 지난해 연초에 비하면 매출이 반토막이죠."

10일 오전 11시쯤 서울 관악구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김모씨(41)가 새해맞이에 따른 변화가 생겼는지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신년 이벤트로 가격 할인을 하는데도 인근 헬스장 모두 회원 자체가 아예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연초에는 운동·공부·금연 등 새로운 다짐을 하며 소비심리가 가장 높게 일어나지만 코로나19 장기화와 고공행진하는 물가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며 '신년 특수'가 실종됐다.

전문가들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삼중고' 등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것이 이유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힘든 현실에 운동·교육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는 분석이다.

◇"이제 숨통 틔나 싶었는데…신년 특수 고사하고 생존 걱정"

헬스장은 새해에 회원이 가장 몰리는 업종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달랐다. 헬스장 입구에는 '헬스 월 2만원대, 새해맞이 특가 SALE'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지만 내부에는 회원 2명만이 러닝머신을 타고 있었다. 신규 회원 등록이 줄며 헬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었다.

김씨는 "신년 특수는 고사하고 기존 회원도 줄지 않을까 걱정이다"며 "코로나 3년 버티고 이제 숨통이 틔나 싶었는데 너무 속상하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성에서 19년째 헬스장을 운영한 이명곤 대표는 "헬스장은 보통 신년 특수로 명절·혹한기·혹서기 등의 비수기를 버티는데 코로나 이후부터 신년 특수가 없어 심각할 정도로 힘들다"며 "코로나 3년 동안 1년6개월을 국가에서 쉬라고 해서 문을 닫았는데 돌아온 것은 보상이 아닌 고금리였다"고 한탄했다.

헬스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강남구에서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는 박모씨(27·여)는 "지난 새해보다 절반 정도밖에 신규 회원 등록이 없었다"며 "명절 전에는 지갑을 잘 열지 않으셔서 설날 이후를 기대하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이들을 위해 금융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 본부장은 "코로나에 이어 신년특수도 사라진 소상공인들을 위해 사업장 임대 및 장비 투자로 인한 이자와 같은 금융권 지출 부담을 완화해주고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소상공인들에게 세금을 잠시 유예해주거나 6개월이 아닌 1년 분할로 납부 시기를 유연하게 해 부담을 완화해주는 것도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지갑 닫은 소비자, "월급 빼고 다 올랐는데 작심삼일도 사치"

시민들은 고물가와 경기침체 때문에 운동을 할 여유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초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임모씨(30)는 "붕어빵부터 대출 금리까지 안 오른 것이 없어 숨이 막힌다"며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는데 자기 계발도 돈이 들어 신년 목표를 세우기도 겁난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직장인 한모씨(31·여)는 "새해를 맞아 필라테스를 해보고 싶어 가격을 알아봤다가 너무 비싸 포기했다"며 "중고 거래로 남은 회원권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우울함에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는 시민도 있었다.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을 준비 중인 김수완씨(28)는 "이상하게 올해는 처져서 운동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등 계획을 세우기 싫었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등 목표를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침체와 지난해 반복된 사회적 참사가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경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운동이나 건강을 필수적 지출이 아닌 선택적 지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주로 회원권은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결제하다 보니 새해 이벤트를 해도 큰돈을 한 번에 쓸 여유가 없는 소비자에게는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가 오래 지속되고 이태원 참사, 방음터널 화재 그리고 이기영 사건까지 우울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국민들이 일을 추진하고 계획을 시작하는 데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며 "자신에 대한 우울, 환경에 대한 우울, 미래에 대한 우울 세 가지 중 유독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많이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좌절감과 무기력함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일에 성취감을 얻는 것"이라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bc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