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겨울]①소득 60만원, 생활비 10만원 더 들면…자영업자 日 147곳 '폐업'

등윳값 70% 올라 "보일러 끄고 전기장판"…경기침체·고물가 신음 커진다
자영업자·기업인도 "경기침체 실감"…빚투·영끌 직장인 "이자만 200만원"

편집자주 ...또 겨울이다. 없는 이들에게 겨울은 더 혹독하다. 경기는 바닥을 향하고 있는데 물가마저 치솟고 있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 빚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막막하다는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기침체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어쩌면 민생을 살펴야 할 이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되지 않을까.

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일대 백사마을의 모습. 2021.3.4/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1. 경기도 부천에서 홀로 거주하는 김모씨(72·여)는 겨울을 앞두고 부쩍 고민이 커졌다. 김씨의 소득은 기초생활수급 58만여원이 전부인데 물가 급등으로 식비 부담이 늘었고,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난방비를 걱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와서다. 김씨는 한달에 식비로 20만원, 등윳값으로만 20만원 이상이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작년과 이맘때와 비교하면 10만원이 더 드는 셈이다. 김씨는 "보일러를 최대한 덜 떼고 전기장판에 의지해 살고 있다"며 "외식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2. 충남 천안에서 IT설비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임모씨(61)는 환율급등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20% 정도 올라가면서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발주 물량까지 연초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경기침체를 몸소 체감하고 있다.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설비 투자를 위해 받아놓은 대출금 이자나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 임씨는 "이렇게 빨리 경기가 식을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 위기가 서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느끼는 위기감도 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보다 세심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9일 오전 대구 동구 평화시장에서 한 시민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채솟값 앞에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다. 2022.8.29/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식품비 등 올해만 8% 상승…1인가구 수급자 생활비 3만원 늘어

이번 겨울이 가장 두려운 이들은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이다.

24일 시민단체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올 초 기초생활수급자 22명(1인가구)을 대상으로 조사한 월평균 식품비는 20만5000원, 외식비는 5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올 1~9월 생활물가지수 내 식품비(8.24%)와 외식비(7.04%) 상승률을 반영하면 올해 들어 식비로 한달에 2만1000원을 더 쓰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대다수 주거비를 주거급여로 충당하지만, 전기·가스·수도 등 관리비는 직접 내야 한다. 올 초 기초생활수급자의 월평균 관리비는 6만9000원이었지만 9월까지 13.17% 상승해 7만8000원까지 오른 상황이다.

식비와 관리비 상승률을 반영하면 연초 대비 한달 생활비는 최소 3만원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초생활수급자 상당수가 추가 수입 없이 58만3444원의 생계급여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 넘게 먹고 자는데 쓰고 있는 셈이다.

생계급여로만 생활하는 영등포구 주민 이모씨(74·여)는 "장보러 갔다가 야채값에 놀라서 라면만 사서 돌아왔다"며 "전기료, 가스비 부담까지 커져서 올 겨울을 맞는 마음이 더 복잡하다"고 토로했다.

3일 오후 경북 칠곡군 5번 국도 옆 알뜰주유소 가격표에 휘발유 1517원·경유 1744원으로 표시돼 있다. 2022.10.3/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기름보일러 등윳값 70% 넘게 치솟아…"생계급여 5%론 턱없이 부족"

더군다나 김씨처럼 도시가스 생활권에 들지 않아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저소득층의 경우엔 물가상승의 타격을 더 크게 받는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보일러에 사용되는 등유 평균 판매가는 올해 9월 L(리터)당 1620원으로 전년 동월(943원)에 비해 71.8% 치솟았다. 한겨울 기름보일러에 등유 한 드럼(200L)을 사용하는 가정이라면 비용이 18만8000원에서 32만4000원으로 13만원 넘게 더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두차례 인상해 연간 18만5000원을 지원하지만 한달 치 기름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서울 관악구 주민 이모씨(68·여)는 "집 주인에게 어떻게든 도시가스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봤지만 안됐다"며 "한달에 등윳값으로만 30만원 이상이 들 것 같아 이사를 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같은 물가 인상 요인을 반영해 내년 1인 가구의 생계급여 월 수급액을 5.47% 인상한 62만3328원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올해 1~9월 누적 생활물가 상승률이 6.02% 달하고 올해 말까지는 7%대를 넘어설 수도 있는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이미 생계급여는 무척 빈약한 상태인데 내년에는 물가 상승분도 보전해 주지 못한다면 저소득층의 생활은 계속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12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 폐업한 음식점에서 구매한 중고 주방기구들이 쌓여있다. 2022.10.1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자영업자, 고물가에 수익성 악화 매출도 '뚝'…하루에 147곳 폐업

물가 인상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저소득층뿐만 아니다. 자영업자들은 식용유·밀가루·채소 등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에다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까지 인상되면서 장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손님의 발길이 끊길까 봐 섣불리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서 수익은 악화하고, 결국 버티지 못해 문을 닫는 가게도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지난 5~9월 5개월간 총 2만1761개의 일반 음식점이 폐업을 신고했다. 하루 평균 147개의 가게가 사라졌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장모씨(42)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났다고 기대가 컸지만, 물가 오르는 만큼 가격을 못 올리다 보니 수익성이 떨어졌다"며 "매출도 뚝 끊어지면서 경기침체가 이미 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전국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올 상반기 자영업자의 70.6%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상반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13.3% 줄었으며 같은기간 순이익은 평균 11.8% 감소했다.

1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안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도심 빌딩에 난방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1.2.1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기업인 침체 기정사실화…"금리인상에 이익으로 빚 갚기도 힘들다"

기업인들 역시 고물가 충격 속에 경기침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이달 전(全) 산업 업황 실적 BSI는 78포인트(p)로 지난달에 비해 3p 하락했다. BSI는 지난해 2월(76p)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BSI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판단과 전망을 조사해 수치화한 지수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작으면 업황이 나쁘다고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인력난, 인건비 상승 등이 기업인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고환율도 한계기업을 양산하는 모습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 고공행진마저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 4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1000대 제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 응답 기업 59%는 기준금리 3%가 되면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며칠 후 이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 절반이 좀비기업이 될 것이란 무서운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6일 서울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전단이 붙어있다. 2022.10.16/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빚투·영끌 가담한 직장인들 금리인상에 시련…"이자만 200만원 나가요"

직장인들 역시 추락을 거듭하는 부동산과 주식 때문에 이번 겨울이 더 혹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열풍에 가담했다면 이번 손실이 훨씬 더 뼈 아프다.

지난 21일 코스피 지수는 2213.12를 기록해 지난해 6월25일 최고점(3316.08)에 비해 33.3% 떨어졌다. 신저가 종목이 속출하면서 계좌 잔고에 마이너스 50%가 찍혔다는 사람들의 하소연도 잇따른다.

부동산 열기 역시 빠르게 식어간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가 발표한 지난달 전국 주택 매매시장 소비자심리지수는 90.1다. 2011년 3월 통계 집계 이후 최저를 기록했던 8월(89.9)보단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하강 국면을 뜻하는 95 아래에 있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주택담보대출 2억5000만원과, 신용대출 1억원을 받아서 집을 사고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한달에 이자만 200만원 넘게 나간다"며 "자산이 너무 떨어져서 이젠 팔 수조차 없는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다는 내년을 어떻게 버텨야 하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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