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전도사‘ 정운찬 "동반성장, 있는 사람 것 뺏자는 거 아냐"
동반성장연구회로 실천력 높일 것…이익공유제도 여전히 관심
"尹 정부, 시대정신 따라야…동반성장 인식 안 보여"
- 송상현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동반성장은 시대정신입니다. 포용적 성장, ESG, CSR, CSV와 사촌 간이죠. 동반성장을 안 하면 세계적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게 됩니다."
동반성장에 대한 철학을 묻는 질문에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눈이 반짝거렸다. 서울대 교수, 총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 이사장이 아직도 한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많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정 이사장은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2012년 6월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 '동반성장 전도사'로 지난 10년간 많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은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기보다는 동반성장의 실천력을 높일 '동반성장연구회' 같은 새로운 계획들에 다시 힘을 쏟고 있었다. 10년 전 야심 차게 내놨다가 좌초됐던 '(초과)이익공유제'(이하 이익공유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힘줘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동반성장에 대한 철학의 부족에 대해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반성장, 있는 사람 것 뺏자는 거 아냐"…협력적 경쟁 추구해야
지난 19일 서울 관악구 도림천 옆에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정 이사장을 만났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에 대한 세간의 오해에 대해서 먼저 해명했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은 있는 사람 것을 뺏어서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다"며 "경제 전체의 파이를 크게 하되 좀 더 공정한 분배를 하자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정 이사장이 강조하는 동반성장은 '승자독식의 경쟁'을 배제하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협력적 경쟁'을 추구한다. 정 이사장은 "부자·빈자 모두 다 추가적 성장의 과실을 얻게 하되 양극화가 심한 현재 상황에서 빈자의 증분이 부자의 증분보다 조금 더 크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동반성장이 전 세계적으로 시대정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은 포용적 성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의 S,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창출) 등과 사촌 관계"라며 "어떤 용어를 쓰든지 간에 동반성장이 세계의 화두가 된 것이고, 세계는 동반성장으로 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이사장은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으로 활약하던 중 당시 이명박 정부 사람들과의 철학이 맞지 않아 사퇴하고 민간연구소인 동방성장연구소를 설립했다. 10년간 포럼을 90회 개최하고, 심포지엄, 대외강연, 외부기고 등을 통해 동반성장을 알리는데 집중했다. 최근엔 연구소 역사를 정리한 524페이지의 '동반성장연구소 10년사'라는 책도 발간했다.
하지만 이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의 조성과 확산에 다소 기여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었다"며 "적은 인력과 예산 속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려다 보니 아웃소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정 이사장은 앞으론 동반성장연구회를 만들어 '동반성장'의 이론적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연구회 멤버들이 중심이 돼 동반성장의 철학적 기초, 동반성장의 경제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며 "이론적 기초가 확실해지면 캠페인 등으로 세상에 알릴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두 번의 정부, 동반성장에 관심 없어"…윤 정부, 시대정신 알아야
정 이사장은 두 번의 정권을 지나는 동안 정부 차원에서 동반성장을 의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 이사장은 윤 정부의 동반성장 의지와 관련해 "어려운 사람, 재해를 겪은 사람을 위한 시책이 많이 보인다"면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등에 대한 관심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반성장은 시대정신인데 윤 정부가 이걸 못하면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지난 정부가 5년 동안 동반성장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전 없는' 윤 정부 실망…"규제 풀어도 투자 안한 사례 많아"
정 이사장은 이번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전이 없다"고 평가했다. 정 이사장은 "최고위 관료에 경제기획원(기획재정부의 전신) 출신들이 많은데도 한국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비전이 없어서 안타깝다"며 "장기·중기·단기 목표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한 자유만을 강조하는 윤 정부의 국정 철학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하는데 너무 시장, 시장만을 주장하다가 자유방임이 되면 미국이 겪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위기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원론만 배운 사람들은 규제만 풀면 다 될 것처럼 생각하는데 환경에 관한 규제, 금융 규제 등 꼭 필요한 규제도 많다"며 "경제계에서는 '지금 규제를 풀어달라. 그래야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규제를 풀어도 투자를 안한 과거의 사례가 아주 많다"고 했다.
◇"2048년 1인당 국민소득 3위, 강중국가 향해야"…동반성장 필연적
정 이사장은 국가의 비전을 세우는 일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조언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2048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세계 3위라는 목표를 가지고 강중국가(强中國家)를 향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우리나라가 2048년에 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그때까지 우리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할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등 과거의 지도자가 명시적·암묵적으로 가졌던 국가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5년 골드만삭스가 한국이 2025년엔 미국, 일본에 이어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넘어 세계 3위를 기록할 것이라 발표했다"며 "골드만삭스의 낙관적 전망을 2048년으로 바꿔보자"라고 제언했다.
정 이사장은 이런 우리나라의 모습을 '강중국가'로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강대국이 미국과 중국으로 분명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일본, 독일, 프랑스처럼 강중국가가 된다면 다른 나라가 우리 영토를 침범하거나 우리 역사에 손대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중국가로 향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 즉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정 이사장은 "중소기업은 약하고, 대기업만 강하다고 오랫동안 튼튼했던 나라는 없었다"며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우리 사회의 경제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속적 성장을 끌어내야 한다"라고 했다.
◇이건희 회장에 막힌 '이익공유제'…"자본주의 최전선 美도 이익 공유해"
그 연장선에서 정 이사장은 이익공유제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기도 했다. 이익공유제는 정 이사장의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다. 2011년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 정 이사장이 이익공유제를 추진하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사회주의 용어냐, 공산주의 용어냐"며 비판했고, 이후 동력을 잃었다. 정 이사장은 "이건희 회장의 발언 이후 언론의 반응이 냉담해졌다"며 "안타까웠다"고 기억했다.
정 이사장은 "대기업의 중소기업 불공정거래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초과 이익을 중소기업에 조금이라도 나눠줌으로써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해외진출, 고용창출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 튼튼해지면 대기업도 더 튼튼해진다"며 "이게 이익공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익공유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맞닿아있다는 세간의 평가에 답답함을 표현하며 "세계에서 제일 자본주의적인 미국, 그중에서도 더 자본주의적인 할리우드와 NFL(프로미식축구)이 이익을 공유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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