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잃어 진료가 두려웠던 정신과 권위자…그를 위로한 조현병 환자

[이승환의 클로즈업]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 교수
"환자 11명 극단선택 '트라우마'…근본적 해결 모색"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1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로 경희의료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8.16/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한병찬 기자 =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52)는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2008년 10월2일이었어요. 유명 배우 최진실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죠."

백 교수가 치료하던 환자는 며칠 뒤 최씨와 같은 방식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하면 이를 모방해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백 교수는 24년째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간 돌봤던 환자 중 11명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2년에 1명꼴이다. 이는 백 교수의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가 됐다.

그는 "무엇을 놓쳤기에 환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상처가 됐다"며 "진료실 안에만 있다가는 신경 중증정신질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대학 동기인 고(故) 임세원 교수와 예방 대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전문의였던 임 교수는 2018년 12월31일 작고했다. 임 교수는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백 교수는 가장 친한 동료였던 임 교수가 떠난 '그날'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임 교수 사건 후 조현병 환자를 진료하기 두려웠어요. 그러나 환자분들은 저의 손을 잡고 함께 가슴 아파했어요. 저를 가장 위로했던 사람은 환자분들이었습니다."

단단하고 냉철한 이성으로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정신과 전문의도 심적 고뇌를 느낀다. 지난달 16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의료원에서 백 교수를 만났다.

◇"최진실 사망 후 극단선택 1000명 늘어"

백 교수는 국내 정신건강의학계에서 권위자로 평가된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정신건강의학계의 주요 인사로 소개됐습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 등 권위 있는 기관의 장도 했지요. 원래 꿈이 정신과 전문의였는지요?

▶"아, 그렇진 않았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대학(고려대 의학과) 시절 환자들을 실습할 때였어요. 신장 투석 중인 환자의 사례를 발표해야 했지요. 환자의 애틋한 사연을 5시간 동안 듣다가 정작 내과적 증상은 하나도 묻지 못했어요. 다음날 선배들한테 엄청나게 깨졌죠.

이후 외과를 할까 내과를 할까 계속 진로를 고민하는데 친한 선배가 저 보고 '아직도 고민한다면 너는 딱 신경정신과'라고 하더군요. '신경정신과는 원래 고민하는 과'라면서요(웃음). 선배는 검사나 시술, 수술은 저보다 잘하는 의사가 많을 것이라 했어요. 하지만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제가 잘할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정신과로 진로를 결정했죠."

-정신과전문의가 예민하면 장점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야 환자의 예민한 상태를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백 교수는 어떤 성향인가요.

▶"맞는 말씀이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의 성향은 예민함과 완전히 반대에 있는 '둔감함'이거든요. 대학 시절 진로를 고민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어요. 사람들 얘기를 그대로 믿는 둔감한 성격으로 환자의 예민한 변화를 포착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어요.

이제 와 보면 둘 다 장점이 있습니다. 예민하거나 신경정신 질환이 있었던 전문의가 환자를 더 잘 볼 가능성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예민함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지요. 환자의 고통이 자신의 예민함 혹은 마음의 아픔을 건드릴 수 있거든요.

반면 둔감한 전문의는 심리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고 환자를 치료할 수 있어요. 그런 의사에게 환자가 더 의지할 수 있지요. 단점은 환자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는 거죠. 둔감한 의사라면 정신건강의학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단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교수님께선 우울증 등 신경정신 질환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허술한 사회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해왔습니다. 극단적인 선택 문제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었나요?

▶"당연히 있지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가장 큰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환자를 잃은 기억입니다. 환자가 극단적 선택으로 떠나면 왜 막지 못했을까, 무엇을 대체 놓쳤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큰 상처를 줍니다. 저는 신경정신과 의사 생활을 24년간 했는데 그동안 저의 환자 1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10년 이상 경력이 있는 정신과 전문의라면 대부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아무리 진료를 잘 본다고 해도 신경정신 질환이나 극단적 선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더군요. 편견과 차별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자살 예방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것을 치료와 지원으로 연결해야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백 교수는 "2008년 10월 2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느냐"고 물었다. 답이 떠오르지 않아 멈칫하자 그는 "최진실씨가 돌아가신 날입니다"라고 했다.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잊을 수 없죠. 그날 이후 한 달간 전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공통된 질문을 받았을 겁니다. 최진실처럼 예쁘고 성공한 분도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은 살아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저는 하루에만 여러 환자분한테 그런 질문들을 받았습니다.

최씨의 사망 후 한 달간 자살자 수는 그전보다 1000명 정도 늘었습니다. 저 역시 외래 환자를 잃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요. 우울증이 있던 환자였는데 최씨와 비슷한 또래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씨와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울증 등 신경정신 질환은 극단적 선택 원인의 1위 또는 2위를 차지하지요. 정신과 전문의로서 환자의 극단적 선택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임세원 교수라고 아시나요? 저의 대학 동기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제가 전문의 1년 차일 때, 그가 2년 차일 때 입원 환자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었지요.

임 교수와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극단적 선택 위기에 빠져도 진료실로 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요. 그의 옆에 누군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설령 주변인이나 가족이 있었다고 해도 자살 위기에 빠진 분들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사례가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시스템이 열악하거나 부족해 나타난 현상이지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먼저 편견과 차별 없이 필요할 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주변에 경고증상을 감지하는 자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의료 및 복지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자살 충동 위험군을 직접 찾아가 지원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의료계와 복지계는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입니다."

백 교수는 자살예방센터장 시절(2019년 2월~2021년 4월) 자살예방 재단 설립을 추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백 교수의 임기 종료 직후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심리부검센터를 통합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족했다.

백 교수는 "자살 예방에는 국가의 책무와 민관의 협력이 모두 중요한 만큼 재단을 만들어야 했다"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공공기관화는 올해 법제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8년부터 국회자살예방포럼이 출범해 릴레이 세미나를 열고 자살예방법 개정으로 법과 제도가 빠르게 개선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백 교수는 자살보도 권고기준도 적극 알린 센터장이었다. 2004년 발표해 두 차례 개정을 거친 자살보도 권고기준(3.0)의 취지는 언론보도에 따른 베르테르 효과를 억제하는 것이다.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단어를 대신해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쓰고 구체적인 자살방법이나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 등이 권고안에 담겼다.

ⓒ News1 DB

백 교수는 "기사 모니터링 결과를 토대로 권고 기준과 거리가 있는 기사를 보도한 기자에게 자살예방센터 직원들이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 권고기준을 설명했다"며 "직원들의 열정과 정성이 있었고 필요한 경우 제가 기자들에게 직접 연락했다"고 했다.

이어 "열의 있는 기자들이 권고기준 관련 교육도 직접 하고 있는데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율이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조현병 범죄는 아픈데 방치된 사람의 사건"

극단선택 문제를 담담하게 설명하던 백 교수는 '고 임세원 교수'를 언급하더니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임 교수는 자신이 진료하던 30대 남성 A씨의 공격으로 숨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머리에 소형폭탄을 심은 것을 놓고 논쟁하다가 이렇게 됐다"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경비를 불러서"라고 횡설수설했다. 법원은 A씨의 범행 동기를 정신질환에 따른 망상으로 판단했다.

4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임 교수는 백 교수와 달리 예민한 성향이었다. 임 교수는 지난 2016년 출간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저도 그 병(우울증), 잘 알아요"라고 썼다. 본인 역시 우울증으로 죽음을 생각한 적 있다는 고백이었다.

-임 교수는 어떤 분이셨나요?

▶"'독일병정'이란 얘기를 듣던 분이에요. 엄격하고 학구적이고 완벽주의자였어요. 반면 환자분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뜨거운 열정을 보였습니다. 임 교수 사건 당시 '조현병 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칠 게 쏟아졌으나 정작 유족은 그것과 결이 다른 고인의 유지를 발표했어요.

'고인의 유지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는 것'이라고 했지요. 가족분들은 임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임 교수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 가운데 5분의 1 정도는 그의 환자이거나 환자 가족이었다고 한다. '둔감한' 성향의 백 교수는 사건 2년 후 보건복지부가 임 교수를 의사자로 지정했을 때 원 없이 펑펑 울었다고 한다.

-임 교수 사후 추모 사업 등 관련 활동을 많이 하셨죠?

▶"지금도 임 교수 추모사업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어요. 그전에 국회 청문회나 토론회를 통해 이른바 '임세원법'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2019년 4월 법이 통과돼 시행되고 있지요.(임세원법의 핵심은 의료인 및 환자의 안전을 위해 보안 인력 배치와 비상벨을 의무적으로 의료기관 내에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임세원법 이후 중증 정신질환 치료 5년 이내인 저소득층에 정부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사업이나 급성기병원 수가 시범사업 등이 도입돼 시스템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임 교수를 2020년 9월 의사자로 지정해 오는 9월24일 임 교수를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는데 인간적으로 상심이 크셨겠습니다.

▶"임 교수 사건은 나쁜 사람이 저지른 범죄가 아닙니다. 아픈데 방치된 사람이 벌인 범죄였어요. 가해자를 비난하고 마구 손가락질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조현병 자체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임 교수 사건 후 저 역시 환자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그러나 사건 며칠 후 저를 가장 위로해주신 사람은 바로 환자분들이었어요."

-환자분들이 위로했다고요?

▶"언론 보도로 소식을 접은 환자분들이 제 손을 잡고 함께 가슴 아파했습니다. 임 교수가 보던 환자분들까지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들은 임 교수와 함께 자신이 치유됐던 순간을 말씀하시면서 저를 위로해주셨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조현병 또는 조울증 관련 범죄 보도가 이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환자 중엔 '선생님, 저도 살인자가 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었어요. 저는 '아니다'고 분명하게 답했지요. '조현병 범죄는 아픈데 도움받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지금 이렇게 직접 찾아오시거나 가족이 있는 분들과는 사례가 완전히 다르다'고요. 이렇게 답하면서 속으로는 다짐했어요. 이런 비극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변화를 꼭 가져와야 한다고."

미국 등 선진국들의 조현병 관리 프로그램은 환자의 증세 초기에 집중적으로 개입하는 형태로 변화해 왔다. 반면 한국은 오랜 기간 사회 복귀보다 장기입원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나라의 정신병상 수가 한국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배 이상 많은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필요시 입원해 짧은 기간 급성기 집중치료를 받고 이후 지역사회 서비스를 통해 사회에 복귀하는 '회복 체계'로 가야 한다는 게 백 교수의 지적이다. 그래야 조현병 환자의 범죄를 예방하고 그들의 일상 복귀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흉기를 휘둘러 정신과 전문의 임세원 교수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 씨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19.1.9/뉴스1 ⓒ News1 DB

-그간 많은 환자를 진료하셨습니다. 회복의 의미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회복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단지 증상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고립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행복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해요. 요컨대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지요. 그런 분들이 결국 마음의 고통을 잘 버티고 견디십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본 드라마 '우영우'

그는 인터뷰에 앞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라 놀랐지만 한편으론 궁금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여성 변호사 '우영우'를 정신과 전문의는 어떻게 봤을까.

"우리가 마주한 다양한 문제들은 대개 선악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결국 화해하지 못해 법원으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영우는 법대로 하자며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화해와 공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은 드라마였어요."

이 답변을 듣고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가장 큰 재능은 예민함도, 둔감함도 아닌 '따듯함'이라는 것을.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