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 들었다" 소개팅 아웃?
연봉 알아내는 질문…"학자금 대출도 따져"
"'비정규직 시대' 불안 심리 작용한 결과"
재형저축에 가입하기 위해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종로세무서에 소득확인증명서를 발급받으로 온 대기인 수가 70명을 넘고 있다. /뉴스1 © News1 허경 기자
</figure>"요즘 뜬다는 재형저축이 미혼 여성에게 배우자감 선택의 기준이라고 하네요. 소개팅에서 재형저축 가입했냐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가입했다고 하면 차이는 거죠. 씁쓸합니다."
재형저축이 출시 1주일 만에 70만 계좌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재형저축 가입 여부를 둘러싼 사연이 퍼지며 쓴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1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와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 이 같은 글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재형저축 가입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면 연봉이 5000만원이 안 되는 것을 자백하는 꼴이라는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재형저축 가입 대상자는 연봉 5000만원 이하 직장인이나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의 자영업자다.
사회생활 1년차 직장인 장인숙씨(가명·29·여)는 "재형저축뿐 아니라 요즘은 학자금 대출 여부도 엄청 따진다"며 "연봉이 4000만원 이상 안 되는 친구는 소개팅에 소개하지도 못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층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 이전보다 현실적인 경향이 뚜렸하다"면서 "아버지 직업과 주거 등 부모의 후광보다 '본인의 재력'으로 기준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30대 중반의 결혼 적령기라면 '연봉 5000만원'이라는 기준은 상대방의 경제적 수준을 탐색하기 위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다수 직장인들은 재형저축 가입 여부로 연봉 수준을 가늠하는 세태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회사원 박정운씨(가명·29·남)는 "나도 재형저축 가입할 거다. 돈을 모으려는 의지가 더 가상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며 "취업도 어려운데 돈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연봉이 적다'고 기피하는 세태가 싫다"고 꼬집었다.
직장생활 3년차 공무원 김보람씨(31·여)는 "여자들이 이성 조건을 본다고는 하지만 은행 상품 가입 여부를 물어 연봉을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이른바 '88만원 세대'에게는 '재형저축 가입은 그림의 떡'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최대 월 100만원씩 7년 이상 납입하면 저축에 따른 소득세 15.4%가 면제된다고는 하지만 매달 일정 금액 이상을 7년 동안이나 저축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다.
트위터에는 "옛날엔 직장인들 필수라고 할 정도로 안들면 바보였대요...ㅋㅋ 근데 저축할 돈 없는 난 그냥 바보할래요."(@yj***)라는 등 재형저축 열풍이 남의 일 같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올라 왔다.
게다가 결혼을 앞둔 젊은층에게 재형저축은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재형저축이 7년 만기인 만큼 결혼 준비에 돈이 많이 들어갈 것을 감안하면 만기까지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형저축 가입 여부로 경제력을 판단한다는 것은 장래를 보고 상대방을 대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보고 판단하려는 불안 심리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며 "요즘엔 청년실업과 비정규 취업 문제 등이 일상화된 만큼 사회 전반에서 젊은층 고용이 불확실하다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4050세대에겐 향수…"금리는 실망"
1990년대 중반 막대한 재원에 대한 부담으로 폐지되기 전까지 한때 대부분 직장인들이 입사와 함께 가입했던 재형저축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40대 이상 직장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80년대 당시 이율과 비교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고 주어지는 최고 4.6% 정도의 금리에는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회사원 차영도(54)씨는 "80년대 회사에 들어가 처음 만든 통장이 재형저축이었다. 당시엔 이자가 최고 연 30%까지 오르기도 했는데 지금 금리를 보면 허탈할 정도"라며 "초저금리 시대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판매 첫날 28만명이 가입했던 초반 가입 열풍은 11일에는 7만5000명 정도로 줄어들며 다소 식어가는 양상이다.
pt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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