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통화 중 피해자 나체 녹화·저장…대법 "'불법 촬영' 아냐"

1·2심 징역 4년…대법 "신체 직접 촬영으로 보기 어려워"
영상통화 화면 녹화한 행위, 불법 촬영 조항 적용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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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영상통화 중 피해자의 나체 모습을 녹화해 저장하는 행위는 성폭력처벌법상 '신체를 직접 촬영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불법 촬영으로 볼 수 없어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반포 등)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외국인 A 씨는 러시아 국적의 B 씨와 2020년 8월부터 2023년 5월까지 교제했다. A 씨는 2023년 5월 자신의 휴대전화로 B 씨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B 씨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녹화해 저장했다.

그러다 헤어진 이후인 같은 해 6~7월 B 씨의 이름으로 생성한 틱톡 계정과 인스타그램 계정 등에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게시한 혐의를 받았다.

같은 해 6월 B 씨의 집 현관문을 두드리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침입하려 하는 등 총 7번에 걸쳐 스토킹한 혐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피해자의 승용차를 파손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승용차 타이어를 가위로 찢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B 씨의 지인에게 보내고 영상이 전달되도록 한 혐의 등도 있다.

A 씨는 결국 수원지법에서 스토킹 잠정조치 결정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B 씨에게 계속해서 접근하는가 하면 B 씨를 폭행하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A 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7년도 명령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 14조 1항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영상통화 화면을 녹화한 행위에 불법 촬영을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조항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조항은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은 촬영의 대상을 '사람의 신체'로 규정하고 있다"며 "사람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하는 행위만이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행위'에 해당하고, 사람의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한 행위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가 나체로 샤워하는 모습을 휴대폰 녹화 기능을 이용해 녹화·저장한 행위는 피해자의 신체 그 자체가 아니라 피고인의 휴대폰에 수신된 신체 이미지 영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이 조항이 정하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A 씨의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 부분이 파기되면서, 해당 혐의와 경합 관계에 있는 나머지 혐의도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판단을 받게 된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