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동의 눈물, 여의도의 게으름…헌재 마비 막아야[기자의눈]

이종석 소장 등 3인 재판관 곧 임기 끝…국회 몫 추천 '깜깜'
'헌재 마비' 장기화 우려…기본권 침해당한 국민만 '발 동동'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기후헌법소원 최종 선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8.29/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1988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정문 앞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전과는 다른 세상'의 실마리를 만들어 낸 헌법소원 사건의 청구인들과 이해당사자들은 하나같이 헌재 정문 앞에서 눈이 새빨개지도록 눈물을 쏟아내곤 했다.

대체복무제의 시행 근거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그리고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만을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르기까지 그 뒤에는 눈물이 뒤따랐다.

아시아 첫 '기후소송' 전 과정의 한 축을 맡아 신발 밑창이 닳도록 뛰어다녔을 활동가의 얼굴 역시 누가 봐도 눈물을 한 양동이쯤은 쏟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심지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기자회견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또 다른 활동가도 목소리에 묻어나는 물기를 걷어내기 힘들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위헌 확인 마지막 공개 변론에서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 양이 최후 진술을 연습하고 있다. 2024.5.2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헌법소원은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을 때 찾는 마지막 창구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후 위기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행동해 오던 사람들은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찾아왔다.

헌재 선고 직후 기후소송 청구인단이 발표한 공동성명은 시민들이 헌재에 갖고 있는 기대를 드러낸다. 이 사회를 규율해 온 법과 제도를 헌법의 정신, 그리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고자 하는 달라진 의식에 비춰 다시금 판단해 달라는 열망이다.

실제로 헌재를 찾는 국민들은 더 많아지고 있다. 사건 접수 건수는 꾸준히 늘어 2001년(1060건) 처음으로 1000건을 넘었다. 2017년(2626건) 처음으로 2000건을 돌파한 뒤 줄곧 2000건을 크게 웃돌고 있다. 가장 많은 사건이 접수된 해는 2020년(3241건)이었다. 최근 5년 월평균 접수 건수는 234건, 처리 건수는 232건이다. 일부에서는 사법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8월 31일 기준 접수 사건 총 5만 1501건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헌법소원 사건으로 5만 228건에 이르지만, 위헌성을 인정받은 헌법소원 사건은 고작 3.3%(1658건)뿐이다. 여기에는 '5수' 끝에 가까스로 위헌 결정된 간통죄 등도 포함된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위헌성 인정이 어려우니, 청구인 당사자들의 눈물에는 이유가 있던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의원 등 관계자들이 8일 오후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의 비위 의혹 관련 탄핵 심판 1회 변론기일이 진행되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용기 의원, 김성진 변호사, 민형배 의원. (공동 취재) 2024.5.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여기에 지난 27년 동안 집행되지 않은 사형 제도, '존엄사 제도화'에 대한 입법부작위 등 아직도 수많은 '뜨거운 감자'들이 헌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야당이 주도한 손준성 검사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심판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탄핵, 권한쟁의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문지방이 닳도록 헌재를 드나들던 국회는 정작 오는 17일 퇴임하는 헌법재판관들의 후임 인선은 미적대는 모습이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총 9명인 헌법재판관은 6명만 남는다. 사건 심리에 필요한 7명에도 못 미치게 된다. 그러나 국회 몫의 3인 중 몇 명을 누가 추천할 것인지를 두고 여야가 힘겨루기하고 있어 헌재 '기능 마비' 사태가 자칫 장기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쟁의 파도를 여의도에서 재동까지 수시로 몰고 오던 국회가 늑장을 부리면서 권리 구제를 기다리던 국민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 애타는 눈물과 함께 헌재 문을 두드리는 국민들과 게으름을 피우는 국회, 과연 사법 행정력을 낭비하는 쪽은 누구일까.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