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방해' 현대중 임직원 항소심서 징역형…1심 무죄 뒤집혀

"PC·하드 대거 교체하며 증거 인멸…고의 인정" 유죄
1심선 증거인멸 고의 인정 안 돼…하도급법상 과태료 처벌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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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1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HD현대중공업(HD현대) 임직원들에게 항소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불공정 하도급 현장 조사 당시 자료를 조직적으로 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2부(부장판사 강희석 조은아 곽정한)는 지난 25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기소된 HD현대 상무 A 씨에게 징역 1년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B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증거인멸 혐의로 같이 기소된 다른 임직원 C 씨에 대해선 원심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 의해 피고인들의 증거인멸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됨에도 피고인들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사실 오인 및 법리 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협력사 대표들이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갑질 행위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점 △공정위원장이 직접 지금까지와 다른 강력한 조사 및 제재 조치를 예고하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점 등 관련 법 위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 증거 인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결론내렸다.

이어 "현대중공업은 2015년과 2017년에도 공정위로부터 하도급법상 서면 발급 의무 위반을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았고, 이후에도 다른 협력사들이 공정위에 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위반 혐의에 대해 신고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현대중공업의 2017년 말쯤 교육자료에는 '공정위의 엄중한 법 적용 기조를 고려하면 향후 과징금, 형사처벌 등 강도 높은 처벌이 취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이라고 기재돼 있다"며 "내부에서도 형사처벌을 포함한 강력한 제재가 이뤄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증거인멸죄가 타인의 형사사건 및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는 점을 들어 하도급법 위반행위 업무 담당자인 C 씨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처벌 가능성을 염려해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는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을 인정하는 취지와 상충해 증거인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앞서 1심은 지난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공정위가 조사 대상을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현대중공업의 주된 관심사는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검찰 수사보다 중요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면서도 "고의가 없는 이상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하도급법상 조사방해행위를 과태료 대상으로만 본 법 체계상 부득이한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하도급법(30조의2 등)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한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는 2억 원 이하, 임직원 등은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을 뿐 별도로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이들은 2018년 7~8월 공정위 하도급법 위반 관련 직권조사 및 노동부의 파견법 위반 관련 수사에 대비해 회사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PC 102대와 하드디스크 273대를 교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법 위반 관련 증거를 대규모로 인멸한 혐의를 받았다.

공정위는 2019년 12월 HD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삭감하는 등 상습 '갑질'한 사실을 적발하고 과징금 208억 원을 부과하면서 검찰에 고발했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조선3사 하도급갑질피해하청업체대책위원회도 2020년 6월 HD현대중공업을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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