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사진 합성물'일 뿐"…'딥페이크' 10건중 6건 '집행유예'
최근 3년간 '딥페이크' 1심 판결 분석…양형기준보다 낮은 형량도
양형 이유 "실제 성착취 없었고 영리 목적 없어"…피해자 동의 못해
-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1.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물 23개 제작하고 불법촬영물 1242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930개 구입'→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2. 약 1년 7개월간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물을 홍보·판매하는 텔레그램 채널 여러 개 직접 운영하며 미성년자·성인 여성 연예인의 사진을 합성한 다수의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배포→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1일 〈뉴스1〉이 최근 3년간 선고된 딥페이크 범죄 관련 1심 판결 10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6건에서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해 '실제 성 착취 행위가 수반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양형기준 하한보다 낮은 형이 선고됐다. 또 연령과 형사처벌 전력 등 다양한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 많았다.
피해자는 연예인이나 유튜버 등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인은 물론 지인, 같은 학교의 여학생, 친척 등 피고인의 주변 인물인 경우도 있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해 양형기준을 높이고 피해가 '제한적'이라는 법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딥페이크 제작하고 성착취물 수천개 소지해도…"영리 목적 아냐"
인천지법은 2021년 12월 2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소지등),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허위영상물편집·반포등, 카메라등이용촬영물소지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 씨는 △걸그룹 멤버의 얼굴 사진 등을 이용해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물 23개를 제작한 혐의 △불법촬영물 1242개를 구입한 혐의 △불법촬영물 1373개를 컴퓨터에 저장해 소지한 혐의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930개를 구입한 혐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6093개를 컴퓨터에 저장해 소지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입 및 소지 행위와 딥페이크 범죄의 폐해와 비난 가능성을 지적하면서도 "피고인은 아무런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범행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며 "피고인이 영리 목적으로 허위 영상물을 편집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하는 데 영리 목적이 없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셈이다. 피해자들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제작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제 어떻게 유포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한다. 제작 목적이 영리인지 비영리인지에 따라 공포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힘든 지점이다.
◇ 미성년자 연예인 얼굴 합성하고 '구독료' 챙겼는데…"실제 성착취 아냐"
피해자 중 아동·청소년이 있었고 수익까지 받아 챙긴 한 사건에서는 피고인에게는 권고형 하한보다 낮은 형이 선고됐다. 실제 성 착취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제주지법은 2022년 4월 28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제작·배포등),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허위영상물편집·반포등) 혐의로 기소된 B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B 씨는 2020년 7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물을 홍보·판매하는 텔레그램 채널 여러 개를 직접 운영하며 미성년자·성인 여성 연예인의 사진을 합성한 다수의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배포했다. 구독료 명목으로 인당 매달 10~30달러를 받아 약 661만 원을 챙겼다.
재판부는 딥페이크 범죄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이 사건 아동·청소년성착취물과 허위영상물은 모두 음란한 사진에 대상자들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어서, 제작 과정에서 실제 대상자에 대한 성 착취 행위가 수반되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아동·청소년 등 대상자를 직접 촬영한 사진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법익 침해의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B 씨가 △범행과 책임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 점 △수사 과정에서 다른 관련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협조한 점 △범죄수익이 모두 환수될 것으로 보이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여러 양형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의 하한보다 낮은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 하한은 징역 7년이었다.
◇ 신상정보 유포로 추가 피해…"법정형 낮아 수사 미온적" 지적도
그러나 딥페이크 성착취 합성물이 주로 공유되는 창구에는 피해자의 신상정보까지 함께 공유돼 더 큰 피해가 발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C 씨는 2023년 10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허위영상물편집·반포등)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는데, 피해자는 미성년자인 C 씨의 친척이었다.
C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 '음란한 메시지와 음성을 전송하면 보상을 주겠다'며 피해자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과 연락처, 피해자 부친의 연락처까지 공유했다. 해당 채널을 이용하는 회원 수는 2000~3000명에 이르렀다.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를 드러내는 등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 공론화에 힘쓰고 있는 추적단 불꽃의 원은지 활동가는 지난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사진에 있는 여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더 큰 자극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원 활동가는 여기에 "워낙 법정형이 낮다 보니 수사의 태도 자체가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며 "여죄를 조사해 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까지도 소지하거나 유포한 이력이 있는 가해자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딥페이크를 하는 자들이라면 성착취에도 분명히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mau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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