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부 '프락치 강요' 피해…2심도 "9000만원씩 배상하라"

피해자 측 "국가 폭력으로 인생 짓밟아 참담…상고 검토"
법무부, 항소 포기 후 사과…피해자 "보여주기식 사과" 비판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강제 징집·프락치 강요 피해자 박만규 목사가 선고를 마친 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8.29/뉴스1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강제징집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도 일부 승소했다.

서울고법 민사8-1부(부장판사 김태호 김봉원 최승원)는 29일 박만규·고(故) 이종명 목사와 이 목사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정부는 원고들에게 9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이 목사는 1심 선고 이후인 지난해 12월 유명을 달리해 이번 2심 재판에는 유족들이 원고로 참여했다.

박 목사와 이 목사는 1970~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 시절 강제 징집으로 군대에 끌려가 고문·협박·회유를 받고 프락치로 활용됐다. 프락치는 특수 사명을 띠고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 본래 신분을 숨긴 채 활동하는 정보원이다.

특히 프락치 강요 공작은 전두환 정권이 '녹화 공작'을 추진하던 보안사 심사과 폐지 후에 '선도 업무'라는 명칭으로 1987년까지 지속됐다. 사건은 이후 보안사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2022년 조사에 착수해 강제징집과 녹화·선도공작 피해자 2921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이 중 182명을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했다. 또 특별법 제정과 피해 회복 절차를 마련해 이들에게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1심은 두 목사가 불법 구금과 폭행·협박, 사상 전향,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은 사실을 인정하며 정부가 두 사람에게 각 9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판결 뒤 원고들은 항소했지만, 이 목사는 지난해 1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이후 같은 달 14일 법무부는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곧바로 당일 항소포기서를 제출했다. 당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현 국민의힘 대표)은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 회복을 돕기 위해 항소 포기 결정을 하게 됐다"며 "피해자들께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도 국민의 억울한 피해가 있으면 진영논리와 무관하게 적극적으로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 뒤 원고들을 대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2심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위자료보다도 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항변에 대한 판단이었다"며 "재판부가 이를 용인한 것이므로 판결문을 확인해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위자료 액수에 대해서도 "공권력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은 국가 폭력 피해에 대해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가 9000만 원이라는 게 너무 참담하다"며 "한 사람이 입은 정신적 충격을 어떻게 이렇게 폄하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목사는 한 전 장관의 사과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 목사는 "진정한 사과를 약속한다면 피해자를 만나고 장관은 법적·행정적 권리와 의무 이행하라고 요구했으나 일절 반응이 없었다"며 "더 놀라운 것은 보도자료에서 사과한 법무부가 이후 소송에서도 똑같은 논리를 가지고 임했다는 것이다. 사과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