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동반자 '법적 권리' 첫 인정…'톨스토이' 소환한 대법관
김상환·오경미 대법관 "소수자 차별 시정 시급" 보충의견 제시
"동성 배우자 인정 타당성, 논증 대상" 대법관 3명 별개의견도
- 황두현 기자
(서울=뉴스1) 황두현 기자 = "쌍둥이 자매가 성장하여 동반자를 선택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각기 성적 지향에 따라 한 사람은 이성 동반자를 선택하고 한 사람은 동성 동반자를 선택하였다면, 이들이 받는 사회적 처우가 달라야 할 것인가"
지난 18일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인용해 반문했다. 13명의 대법관 중 김상환·오경미 대법관이 다수의견 판결에 제시한 보충의견이다.
소설은 신에게 버림받은 천사가 인간으로 살면서 겪는 경험을 통해 신이 내린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극 중 쌍둥이 자매는 부모를 잃고 이웃 양부모의 도움으로 성장하는데 두 대법관은 이들의 성적 지향점이 다르다고 가정했다.
만약 자매가 성정체성을 이유로 각각 동성·이성 배우자를 선택했다면 사회가 이들을 차별할 수 있냐는 게 김·오 대법관의 물음이다. 성별 구성과 무관하게 동일하게 존중받고 건강보험제도 피부양자 혜택을 받아야 공정하다는 것이다.
두 대법관은 "양부모나 쌍둥이 자매의 동반자 관계 모두 애정을 바탕으로 한 가정공동체"라며 "그 누구의 가정공동체도 타인이나 국가에 의해 폄훼되어도 괜찮은 것은 없다"고 짚었다. 판결문에서 동성 부부의 관계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성적 지향은) 인간 내밀한 영역에서 발현되는 영역으로 근본적 권리이자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룬다"며 "국가가 개입해 어떠한 가치 평가적 행동을 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시했다.
이같은 별도의 보충의견을 낸 것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간 대법원이 내놓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결정(2006년), 동성 군인 간 성행위 처벌 판결(2022년) 등의 판결도 이같은 노력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두 대법관은 "부당한 차별로 일어난 위헌적 상황을 시정하고자 노력했으나 아직도 여러 영역에는 편견과 배제를 용인하거나 때로는 조장하는 제도와 관행이 남아있다"면서 "쟁점에 관한 입장은 다르지만 다수·별개의견 모두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입법조치가 시급하다는 데 의견이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반면 다른 대법관들은 별개의견을 통해 엇갈린 시각을 내놨다. 현행법과 사회제도가 동성 배우자를 부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들 대법관은 "법제가 상정하는 '배우자'는 이성 간 결합을 전제하는 개념"이라며 "사회 변화에 따라 배우자의 의미가 동성 동반자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법률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회 관념상으로도 그러하다"고 판시했다.
실제 대법원은 앞서 '혼인은 남녀 간 육체적·정신적 결합', '민법상 이성 간 혼인만 허용' 등의 잇따라 내놓았고, 헌법재판소도 '배우자는 혼인에 의해 결합한 남녀'라는 등의 결정을 제시한 바 있다.
아울러 동성 배우자를 인정한 전제가 된 '혼인 또는 부부가 꼭 이성 관계일 필요가 없다'에 대해서도 "전제 타당성은 본격적으로 논증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법이나 위헌법률심판제도로 동성 동반자의 헌법상 평등원칙 위배 여부를 바로잡아야 할 뿐, 행정청 처분을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우회적인 법 형성'이라고 봤다.
추상적이고 우회적인 논리로 방향의 당위성만을 제시한 다수의견은 사회적 합의로 형성되는 법체계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방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방식"이라며 국회 법안 발의 등 사회적 논의를 거쳐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제언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는 전날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소 씨를 김용민 씨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소 씨와 김 씨는 동성 부부다. 일부지만 동성 부부의 법적 권리를 인정한 첫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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