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손 들어준 법원 "의대 정원 증원 필요성 부정 못해…공공복리 우선"
서울고법, 교수·전공의·수험생 신청 각하…의대생은 기각
"당사자적격, 긴급 필요성 인정…의료개혁에 중대 영향"
- 이세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법원이 의료계가 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집행정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공공복리'를 더 우선시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의대 증원 절차에 문제가 있더라도 '의료개혁'이 더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원을 반대하고 파업에 나선 의료계가 명분을 잃게 됐다.
하지만 신청인들의 당사자적격을 모두 부정한 1심과 달리 의대생들에 대해서는 소송 자격과 교육권 침해 가능성을 인정한 대목은 눈에 띈다.
의료계는 즉각 재항고하겠다는 뜻을 밝혀 집행정지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나오게 됐다. 일부에서 대법 결론이 5월말까지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놨지만 '빨라야 6월말'에나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의대생들, '당사자적격' '긴급 필요성' 인정…집행정지 신청 건 중 처음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 배상원 최다은)는 16일 의대 교수와 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18명이 의대 증원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보건복지부·교육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의대생들이 낸 신청을 기각 결정했다.
재판부는 의대생 외에 교수와 전공의, 수험생들의 신청은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앞서 1심 재판부들은 그간 의대교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 다양한 신청인들 내세운 집행정지 신청을 줄줄이 각하해 왔다. 이들이 의대 증원 처분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2심 재판부도 "교수의 '교육을 할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전공의는 2025년도 신입생들과 함께 교육받을 일이 없으며, 의대 준비생은 의대 입학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며 이들의 신청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청인 중 '의대생'들에게는 집행정지를 신청할 자격이 있다고 봤다. 의대 증원과 관련된 논란이 불거진 소송전에서 당사자 적격이 인정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헌법,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시행령, 대학 설립· 운영 규정 등 관련 법령 등은 의대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증원 처분으로 인해 의대생들이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돼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한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만일 앞으로 의대생들이 과다하게 충원되어 의대 교육이 부실화되고 파행을 겪을 경우 의대생 신청인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성질이므로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며 집행정지 요건인 '긴급한 필요성'도 인정했다.
◇소 제기 요건 '허들' 넘었지만…'공공복리 영향'에 막혀
그러나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의대생들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의대 증원 처분의 집행이 정지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의 질 자체는 우수하지만,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필수 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이러한 상황을 단지 현재의 의사 인력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구체적인 규모나 속도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적어도 필수의료·지역의료의 회복·개선을 위한 기초 내지 전제로서 의대 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정부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되었는데, 비록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나 현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하여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해 이 사건 처분에 이르게 됐고, 현재의 증원 규모가 다소 과하다면 향후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필수 의료·지역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적 전제인 의대 정원 증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대생 신청인들의 학습권 침해 등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전자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후자를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집행정지 신청 시 제3자의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비교적 넓게 인정했다"며 "다만 집행을 정지할 경우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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