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성범죄 저질러" 유서 남겼지만…대법 "증거능력 없다"
1심 무죄→2심 징역 2년 6개월…대법은 '파기환송'
"고인 반대신문했다면 오류 드러났을 가능성 있어"
-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극단 선택 직전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성범죄를 저질렀다'며 고인이 남긴 유서 내용이 피해자의 진술 등과 맞지 않는다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 씨와 B 씨, C 씨의 상고심에서 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A 씨 등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06년 11월 같은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피해자를 서울 양천구 신정네거리 인근 놀이터로 불러내 술을 먹인 뒤, 만취해 정신을 잃은 피해자에게 유사성행위를 하거나 간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과 친구 사이였던 D 씨가 2021년 3월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에서 숨졌을 당시 발견된 유서를 계기로 수사가 시작됐다. 유서에는 친구들과 저지른 범행에 대한 반성과 함께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이후 피해자와 피해자 모친·친구 등의 진술을 토대로 A 씨 등을 기소했다.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재판의 쟁점이 됐다. 형사소송법은 조서나 서류의 원 진술자나 작성자가 사망하는 등 사유로 재판에서 진술할 수 없는 경우,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음이 증명되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한다고 정하고 있다.
A 씨 등은 이 유서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음이 증명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고, 사건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은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유서를 증거로 채택하고 A 씨 등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은 또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형사소송법 314조의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먼저 "망인이 자신의 범행을 참회할 의도로 이 사건 유서를 작성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사건 이후 14년 이상이 흐르기까지 D 씨가 주위 사람들에게 사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는 데다, 유서에 A 씨 등의 실명과 공소시효를 언급하는 등 반성보다는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억력의 한계로 기억에 과장·왜곡이 있을 수 있는 점, 유서에 범행에 대한 구체적·세부적 내용이 없는 점, 피해자가 술자리로 가게 된 경위에 대한 진술과 유서 내용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는 점 등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망인에 대한 반대신문이 가능했다면 그 과정에서 구체적, 세부적 진술이 드러남으로써 기억의 오류, 과장, 왜곡, 거짓 진술 등이 드러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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