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늘리리면 검사도 늘려야?"…정쟁·무관심에 재판 지연 해법 '낮잠'
[재판지연 해법 찾기]③ 정쟁에 막힌 법관 증원
'디스커버리'는 관심 밖으로…'서면 위주' 재판 개선도 시급
- 서한샘 기자, 이세현 기자,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이세현 정윤미 기자 = "판사 증원·처우 개선,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법조일원화 보완…"
재판 지연 문제가 거론될 때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해법들이다. 하지만 어느 방안도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있다. 법을 바꿔야 하는데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거나 예산에 발목이 잡힌 때문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15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강조한 것도 판사 증원 문제였다. 그는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취임 후 짧은 기간 동안 현재 사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은 일단 했지만 근본적으로 법관 수가 부족하다"며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와 다시 또 협상해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늦어진다"고 호소했다.
◇ '검사 증원'에 가로막힌 '법관 증원'…처우 개선도 요원
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 수를 늘려 업무량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현재 법관 정원은 2014년 3214명으로 370명 늘어난 뒤 10년간 유지되고 있다.
법관 증원을 위한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이번 21대 국회에서 두 차례 발의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6년까지 법관 정원을 4214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2021년 11월 발의했고, 이듬해 12월에는 2027년까지 3584명으로 늘리는 정부안이 발의됐다. 현재 정원보다 각각 1000명, 370명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두 법안 모두 22대 총선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뜻밖의 암초는 '검사 증원'에 있었다. 정부·여당은 '법원과 검찰청 조직은 대등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판사 증원에 검사 증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야당은 법관 정원만 늘리는 선에서의 개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당장 증원이 어렵다면 법관 처우라도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법원행정처가 개최한 '법조일원화의 성과와 과제' 심포지엄에서 박영재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법조일원화 제도를 시행하는 다른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법관 처우를 통해 우수한 능력과 자질의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유치한다"며 처우 개선을 주요 과제로 꼽기도 했다.
◇ '디스커버리'로 신속한 민사소송?…관심 밖 밀려나
민사재판의 경우 제도적 개선 방안으로 영미법권에서 채택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거론되지만 이 역시 답보 상태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변론 진행 전 양쪽이 가진 증거와 서류 등 사건 관련 정보를 교환하도록 하는 절차다. 이렇게 되면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쟁점이 명확해지고 법원 역시 모든 증거를 조사·심리하던 업무를 덜 수 있어 신속한 재판 진행이 가능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증거의 구조적 불균형이 불공정한 재판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증거수집 제도를 개선해 반칙과 거짓이 용납되지 않는 법정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시사했다.
관련된 입법 움직임도 있었다. 21대 국회에서 조응천 개혁신당(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6월 '소 제기 전 증거조사'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을,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10월 '증언 녹취'를 도입하는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국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법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이 늦어진다고 법원을 질타하지만 정쟁이 벌어질 때마다 가장 먼저 뒤로 미뤄지는 것이 사법제도 관련 법안"이라며 "재판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무관심"이라고 꼬집었다.
◇ 재판 공전 '서면 제출만 급급한 변호사, 쟁점 확인 의지 없는 판사' 합작품
제도·입법 외에 재판의 질적 개선이 동반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각종 서면에만 기대는 변호사와 법관도 재판 지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은 수사기관 진술을 재확인하느라, 민사사건은 변호인이 제출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읽어보는데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긴 시간을 할애하면서 쟁점 없이 변죽만 울리게 되는 식이다.
일부에서는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변호사의 역량 저하를 꼽는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시행 전(2008년 8월) 1만 174명이었던 변호사 수는 올해 1월 3만 4697명으로 16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늘었지만 핵심 쟁점을 단박에 제시하는 등 변호사의 역량 강화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한 부장판사는 법관의 의지 부족도 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사전에 쟁점을 파악해 재판에 임하려면 하나의 사건을 상당히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법관과 변호사들 모두에게 불편한 이야기이니 모른 척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sae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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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신속한 재판'을 약속하며 한 말이다. 취임 직후 주요 법원장들을 직접 재판에 투입했고 재판장과 배석 판사의 임기를 1년씩 늘렸다. 법원 행정처의 상근 법관도 10명에서 17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재판 지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뉴스1은 사법부의 최대 숙제가 된 재판 지연의 근본 원인과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짚어봤다.